[전망] 벨라루스 시위 정국, 어디로 가나? 시나리오 셋
[전망] 벨라루스 시위 정국, 어디로 가나? 시나리오 셋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8.20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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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식 위기 돌파, 제2의 우크라이나 사태, 예상치 못한 제3의 길

벨라루스의 대선 부정선거 규탄및 불복 시위는 당초 예상을 크게 엇나갔다. 2010년 대선 직후처럼 야권 시위가 그동안 억눌린 민심을 폭발하는 선에서 끝날 줄 알았다. 무려 20만명에 이르는 군중이 한자리에 모여 '루카셴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지난 주말, 대대적인 가두 시위를 계기로 벨라루스 정국은 권력의 분점이냐, 정권이양이냐, 또 다른 제3의 길이냐의 갈림길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된다. 루카셴코 집권세력은 야당에게 일정한 권력을 나눠줄테니, 대선 결과를 인정하라는 속셈을 드러낸 반면, 야권 강경파는 '루카셴코 대통령의 퇴진을', 온건파는 '재선거'쪽에 힘을 싣고 있다.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를 가득메운 반정부 시위대/현장 동영상 캡처

아직은 서로 팽팽한 힘겨루기를 벌이는 상황에서 섣불리 어느 쪽으로 힘이 쏠릴 것이라고 예측하기 힘들다. 러시아와 유럽, 특히 벨라루스와 국경을 접하는 폴란드, 우크라이나, 발트3국 등의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 

구 소련이 해체(1991년 12월)된 지 올해로 30년째. 독립국가로 새로 출범한 러시아 등 15개국이 비교적 순탄하게 정치적 안정을 얻은 국가는 많지 않다. 체제의 문제든, 민족 종교적 문제든, 한두차례씩 혼란의 소용돌이를 건너왔다. 벨라루스도 뒤늦게 그 소용돌이속으로 빠져든 것은 아닐까 싶다.

가장 큰 혼란을 겪은 곳은 역시 우크라이나다. 2차례의 시민혁명에 친러, 친서방 정권이 서로 다투더니, 결국 사실상 내전 상태에 빠져 있다. 국제사회도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도 '쉽지 않는 과정'을 거쳐왔다. 옐친 전대통령 시대의 혼란 시대를 거쳐 체첸전쟁, 대 그루지야 전쟁, 야권 지도자들의 암살사건,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등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내부 진통이 적지 않았다.

카프카스의 소국 그루지야(조지야)의 '장미혁명', 아르메니아의 '시민혁명', 중앙아시아 일부 국가들의 내전, 총을 든 '권력 투쟁' 장면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벨라루스는 앞서 간 형제국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길로 갈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중의 하나와 비슷한 길을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

몇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 보자.
우선 루카셴코 대통령의 선택. 루카셴코 현 집권세력의 속셈은 '러시아와 같은 길'을 겨냥하고 있는 것 같다.

엊그제 '셀프 개헌'으로 장기 집권의 문을 연 푸틴 대통령이 가장 큰 정치적 위기를 맞은 것은 2011년 12월 총선 직후다. 루카셴코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총선 부정선거 규탄 시위와 맞딱뜨렸다. 당시 러시아 야권은 총리 4년을 채우고 다시 크렘린 주인으로 되돌아오려는 푸틴을 막기 위해 '부정선거' 프레임을 앞세웠다.

하지만, 푸틴은 당시 시위대의 요구 조건을 상당부분 수용하는 척하면서 성난 민심을 잠재우고, 이듬해 3월 4일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물론, 대선 직후에도 모스크바에선 '푸틴없는 러시아'를 외치며 '무조건 퇴진'을 요구했다. 대선 직전까지 '반 푸틴' 시위를 방관해온 러시아 당국은 대선이 끝나자 바로 시위 가담자 100여 명을 연행하는 등 강경 대처로 돌아섰다.

시위에 대한 푸틴의 '강온 전략'이 먹힌 것은 러시아는 워낙 넓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등 대도시 중심의 시위는 지리적으로 한계가 분명했다. 전국적으로 '반 푸틴' 분위기를 만들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모스크바에서 반정부 시위를 이야기하는 젊은이들이 사라졌다"며 "1년만에 이렇게 분위기가 완전히 변한 러시아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살인자 떠나라!"고 쓴 플래카드를 펼친 벨라루스 시위대/동영상 캡처

벨라루스는 러시아와 다르다. 땅도 좁고, 인구가 1천만명도 안된다. 벨라루스의 이번 대규모 시위는 모스크바에서 벌어진 '반 푸틴' 시위와 다를 바 없다. 모스크바외 다른 지역의 민심도 살펴야 하는 러시아 시위 지도부와는 다르다.

지난 주말 20만명이 민스크의 '영웅도시 오벨리스크 광장'으로 몰려들자 벨라루스 집권세력도 크게 놀란 기색이다. 무려 26년간 다져온 집권층 내부에서도 일부 이탈세력이 나오는 등 이미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국영기업 노조의 잇딴 파업 돌입과 함께 여론을 좌우하는 국영 TV라디오 방송국 직원들도 이탈하고 있다. 이들은 중앙선관위 위원장의 사퇴와 정치범 석방, 자유로운 재선거를 요구하며 시위대에 합류하고 있다. 그동안 TV화면에 잡히지 않았던 야권 시위 모습도 지난 주말 이후 안방으로 전달되기 시작했다. 야권 시위대가 국영TV라디오 방송국 앞으로 몰려간 게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여성 대선후보 티하노프스카야 측이 총파업 촉구/얀덱스 캡처

급기야 루카셴코 대통령은 17일 국영 대기업 노조 앞에서 양보안을 내놓았다. 이날 민스크의 트랙터 공장을 방문, "내가 죽기 전까지 재선거는 있을 수 없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권력을 (야권과) 나눌 용의가 있다. 이를 위해 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친 뒤 새 헌법에 따라 (국민이 원한다면) 총선은 물론 대선, 지방선거도 다시 치를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루카센코 대통령은 이날 체면을 심하게 구겼다고 한다. 연설을 듣기보다 그의 모습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으려는 노조원에게 호통을 쳐야 했고, 노조원들의 "떠나라"는 야유와 고함소리에 연설을 중단해야 했다. 이후 루카셴코 대통령은 국영 '벨라루스24' 방송과 인터뷰에서 정식으로 "개헌후 다시 선거하자"고 야권에 제안했다.

그의 제안을 보면 일단 '현 위기를 넘기고 보자'는 속셈을 읽을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이 2011년 말 시위대의 정치적 요구를 수용하면서 사태를 진정시킨 뒤, 대선을 통해 정국 흐름을 완전히 바꾼 바로 그 전략이다.

개헌은 아마 대통령의 권한을 의회와 나누는 이중집정부제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벨라루스는 지난 1994년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하는 헌법안을 추진했으나, 같은 해 집권한 루카셴코 대통령이 1996년 거꾸로 강력한 대통령제를 밀어붙여 지금에 이르렀다. 개헌은 국가체제를 26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루카셴코 대통령, 야당측의 조정 협의체 출범을 정권 찬탈 의도라고 비난/얀덱스 캡처

루카셴코 대통령은 또 야권이 대선 직후부터 요구한 '대선 투표 재검표'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거부되자 국가안보회의에서 야권의 '정권 이양 조정협의체' 출범을 권력 찬탈 시도라 규정하고, 협의체 멤버들을 법률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식 출범한 야당의 '정권 이양 조정협의체'는 19일 첫 회의를 가진 뒤 루카셴코 측에 지난 8월 9일 대선을 무효화하고, 재선거를 실시하자고 요구했다. 동시에 전국의 노동자들에게 총파업을 요청했다.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그 길은 곧 '제2의 우크라이나 사태', 혹은 '아르메니아 사태'로 향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지난 2014년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친러시아 성향의 야누코비치 당시 대통령이 야권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밀려 러시아로 도피한 '혁명적 사건'이다. 수도 키예프에서는 시위대와 진압군 사이에 유혈충돌(마이단 사태)이 벌어졌고, 집권세력은 손을 들었다. 그 과정에서 시위참가자 104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친서방 성향의 야권 세력이 권력을 장악해 원하던 정권 교체는 일궜으나, 러시아인이 다수 거주하는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이에 저항하는 무장 투쟁이 벌어지면서, '러시아의 크림합병'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카프카스 지역의 아르메니아에서도 반정부 시위가 권력을 바꿨다. '장기 집권'을 꿈꾸던 세르쥐 사르키샨 전 대통령에 저항하는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야권의 니콜 파시냔 의원은 집권세력이 응한 조기 총선에서 승리, 2018년 5월 총리에 취임했다.

파시냔 총리는 비록 대규모 시위로 정권을 교체했지만, 푸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러시아 남부 휴양도시 소치를 찾았다. 우크라이나, 그루지야(조지야) 등 구 소련권서 이뤄진 '혁명적 사건' 이후 집권한 새 권력자가 러시아측 권력자(푸틴 대통령)과 만난 것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웃 아제르바이잔과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나고르노 카라바흐' 출신인 파시냔 새 총리에게는 영토 문제 해결에 러시아측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벨라루스 야당, 러시아와의 향후 관계 평가/얀덱스 캡처

벨라루스 야권이 향하는 길은 '아르메니아식'이라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야권 핵심인사들도 '반 러시아 흐름'을 경계했다. 러시아가 벨라루스 상품 수출의 50%를 점하는 최대 시장이고, 벨라루스의 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원을 책임지는 상황에서 '반 러시아 노선'을 겨냥하기는 힘들다. 자칫 러시아의 심기를 잘못 건드릴 경우, 정권교체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러시아에게는 벨라루스가 '제2의 우크라이나 사태'로 번지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벨라루스는 지정학적으로 진짜 중요한 곳. 동서 냉전시절 동유럽의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이 서방과 소련간의 완충지대였다면, 구소련 붕괴후에는 서방과 바로 맞닿는 곳이 옛 소련공화국인 발트3국,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였다. 그중 발트3국은 EU와 나토에 편입되고, 우크라이나의 '반러 친서방' 노선도 한계 수위를 넘어섰다.

그나마 유일하게 남아 있는 형제국 벨라루스가 친서방으로 돌아선다면, 러시아는 완충지대없이 바로 서방세력과 맞서야 한다. 특히 러시아의 발트해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와 벨라루스 사이에 있는 '수바우키 회랑'은 서방과 러시아의 역사적 대결 요충지이기도 하다. 벨라루스가 우크라이나처럼 서방 쪽으로 기운다면, 러시아는 칼리닌그라드뿐만 아니라 발트해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될 판이다.

그런 면에서 러시아는 내심 루카센코 대통령이 이번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연쇄 전화 통화를 하면서 벨라루스 사태에 개입하지 말라고 요구한 이유다.

사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서방측으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야권의 공세에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루카셴코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게 SOS를 치는 경우다. 러시아의 적극적인 내정 개입을 상정해볼 수 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양국 국경의 폐쇄조치를 해제하기로 합의/얀덱스 캡처

양국은 19일 총리 회담을 통해 신종 코로나(COVID 19) 사태로 폐쇄했던 국경을 다시 열기로 합의했다. 러시아가 벨라루스인들에게 분노를 해소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막심 사모루코프 모스크바 카네기센터 연구원은 "러시아의 최우선 과제는 벨라루스가 서방으로 편입되는 것을 막는 것이고, 루카셴코 대통령이 그걸 막을 수 있는 인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루카셴코측이 SOS를 보낼 경우, 러시아가 즉각 움직일 것이라고 서방측이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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