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커 '빅토르 초이' 영화 '초이' 러시아서 개봉 불발 - 뭐가 문제인가?
로커 '빅토르 초이' 영화 '초이' 러시아서 개봉 불발 - 뭐가 문제인가?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9.04 0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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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자 "빅토르가 주인공 아닌 창작물. 관련 영상도 저작권에 문제없다"
가족들 "그의 교통사고를 둘러싼 사실과 다른 이야기. 제목을 바꾸든지"

3일 개봉하기로 했던 고려인 출신 소련 로커의 전설 '빅토르 초이(최)'의 영화 '초이 Цой' (최)'가 끝내 러시아 극장가에는 걸리지 않았다. 빅토르 초이 측(아버지와 아들)의 호소가 먹힌 것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는 것 같다.

죽은 초이:새로운 주검을 둘러싼 스캔들 뒤에는 뭐가 숨어 있나?

현지 일간지 이즈베스티야에 따르면 영화 '초이'의 개봉 불발은 푸틴 대통령에게 발송했다는 빅토르 측의 개봉 금지 호소 편지와는 관련이 없다. 신종 코로나(COVID 19) 상황을 감안해 개봉 1주일전에 이미 무제한 연기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두어달간 문을 닫았던 영화관들이 다시 문을 열었지만, 관객들의 발길이 뚝 떨어진 탓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영화 개봉을 며칠 앞두고 현지 언론들이 왜 난리를 쳤을까? 짐작한대로 '노이즈 마게팅'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 신문의 분석이다. 개봉을 둘러싼 논란과 법정 싸움은 '초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 문화부, 빅토르 초이 상속자들에 개봉금지 요청에 (법정으로 가라고) 답했다/얀덱스 캡처

영화 한편의 개봉 여부를 놓고 현지 언론이 이렇게 뒤엉켜 "편지를 보냈다", "아니다, 가짜뉴스다"라고 다툰 적도 별로 없다. 논란이 커지자, 크렘린 대변인이 "대통령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고, 올가 류비모바 문화부 장관이 나서 "문화부는 영화 개봉을 불허할 이유가 없었으니, 문제가 있다면 법정으로 갈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빅토르 초이 측과 영화제작자가 개봉을 놓고 다투는 쟁점이 궁금해진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영화는 '초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2018년 칸 영화제에 초청된 영화 '레또'(여름)처럼 로커 '빅토르 초이'가 주인공은 아니다.

영화 주인공은 빅토르 초이의 승용차와 충돌한 버스의 운전사 파벨 쉴레스트다. 빅토르 초이는 역할 자체가 없다. 그는 주검으로 '관' 속에 들어 있을 뿐이다. 주인공은 빅토르 초이의 관을 그의 친인척들과 함께 공동묘지로 운반하는데, 그 과정에서 일어난 열성팬들과의 이야기다.

영화 '초이'가 1980년대 전설적인 로커 빅토르 초이에 관한 이야기라고 알려주는 것은 버스와의 교통사고(빅토르 초이는 30년 전 버스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와 삽입된 과거 영상들이다. 그 영상도 이 영화의 감독인 알렉세이 우치텔이 오래 전에 만든 다큐멘터리 '로커' 중에서 갖고왔다. 물론 빅토르 초이와 그의 그룹 '키노'의 영상들이다. 

빅토르 초이의 아들, 영화의 개봉 금지를 요청했다/얀덱스 캡처 

빅토르 초이 측은 이 영화가 자신의 명예와 권리를 침해하는 '저속한 창작물'이라고 규정했지만, 법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한다. 현지 로펌들도 "법정 다툼에서 빅토르 초이측이 승소할 가능성은 낮다"고 언론에 전했다.

그러나 빅토르 초이측은 2017년에 이 영화의 대본을 읽고, 제작하지 말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의 영상들이 영화에 삽입되어 있으니, 빅토르 초이의 장례식을 떠올릴텐데, 그게 사실과 다르다는 것. 또 빅토르 초이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면, 제목을 '(버스) 운전사' 혹은 '(로커의) 교통사고'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객들에게 빅토르 초이의 사망사건을 떠올리게 하면서 전체 이야기가 허구이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 '초이' 속 교통사고 장면/캡처

이 논란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도 제목을 바꾸든가, 키노의 이미지와 음악을 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가세했다. 

알렉세이 우치텔 감독은 "예술 작품을 삶 그 자체로 보면 안된다"며 "모든 예술가는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작품을 만든다. 이를 막는다는 것은 예술 자체를 막는 것이다. 이 영화는 한 로커의 전기가 아니라, 그 당시의 젊은이들,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분위기, 음악적 풍토 등을 28세에 요절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비유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반박했다. 

빅토르 초이와 관련있는 버스를 뒤따라가는 영화속 레닌그라드 젊은이들/캡처 

논란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그만큼 빅토르 초이가 엄혹한 소련 시절에 저항적인 이미지의 로커로 남긴 족적이 크고 깊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영화는 전에도 만들어졌고, 앞으로 또 만들어질 것이다. 짧은 삶을 살다가다 보니, 그를 조명하는 시각에 다양성을 부여하기는 쉽지 않다. 그의 초상권에 대한 가족(아버지와 아들)의 집착도 걸림돌이다.

"빅토르 초이의 삶은 교통사고외에는 너무 평범하다"는 현지 한 영화평론가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빅토르 초이 가족과의 분쟁은 상업적 수익도 감안해야 하는 영화제작자 입장에서게 거쳐야 할 과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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