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푸틴' 나발니도 그 '노비촉' 신경가스에 당했다 - 신출귀몰한 '공격자'는 누구?
'반 푸틴' 나발니도 그 '노비촉' 신경가스에 당했다 - 신출귀몰한 '공격자'는 누구?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9.03 0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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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총리, 중독 물질 확인후 "러시아가 답할 차례" 압박 - 러시아는?
동행자 있는 나발니에게만 '노비촉' 공격? 특성상 '불가능하다'는 개발자
EU, 대러 제제조치 확실시 - 러독 해저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제재 유력

우려했던 일이 실제로 발생한 것 같다. 독일 베를린의 샤리테 병원으로 이송된 '반 푸틴' 캠페인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신경작용제(가스)인 '노비촉'에 중독됐다고 독일 총리실이 2일 발표했다.

페스코프 대변인:크렘린은 나발니의 노비촉 중독 조사에 대해 통보받은 바 없다/얀덱스 캡처 
나발니, 샤리테 병원 중환자실서 집중치료중/얀덱스 캡처

'노비촉'은 지난 2018년 영국에서 발생한 러시아 출신의 이중간첩 '세르게이 스크리팔 대령' 부녀에 대한 독살 미수 사건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신경가스제 독극물이다. 당시 영국 경찰당국은 러시아군 정찰국(GRU)소속 요원들이 스크리팔 대령을 겨냥해 노비촉을 그의 현관 문 손잡이 등에 뿌려 독살을 시도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발니를 "독극물을 사용한 살인공격의 희생자"라고 지칭하며 "이에 대해 러시아 정부가 답을 해야 한다"고 크렘린을 압박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이 문제에 관해 독일측과 정보 교환을 포함해 모든 협력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독일 병원은 나발니의 검진 결과를 공유하자는 우리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고, 옴스크 병원측이 관련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사실상 거절했다"고 밝혔다. 

독일 정부는 이번 검사 결과를 유럽연합(EU)와 나토 회원국과 공유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EU는 이 사건에 대한 보복 조치로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나설 것으로 확실시된다. 

스크리팔 부녀 독살기도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GRU 요원의 영국내 행적. 영국 경시청은 CCTV를 통해 두 사람의 행적을 추적했다

러시아 일간 코스몰카야 프라우다는 "유럽측이 2년전 스크리팔 사건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 대한 제재조치를 나설 것"이라며 "올해 말로 준공 예정인 독-러 해저 가스관 프로젝트인 '노르트스트림-2'이 제재 대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르트스트림-2'는 유럽이 러시아 가스의 인질이 될 것이라며 미 트럼프 행정부가 공사 협력업체에 대한 제재조치까지 내린 가스관 연결 사업이다.

독일은 그동안 이를 내정간섭이라며 반발했지만, 나발니 중독사건으로 미국 측에 적극 협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같은 관측으로 이날 러시아 외환시장에서는 루블화 환율이 달러당 2%이상 오른 75.14루블을 기록하고, 증시도 출렁거렸다. 

독일 샤리테병원으로 이송된 나발니/러시아 NTV 캡처

러시아 언론의 반응은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것 같다. 노비촉은 신경가스여서 나발니만 꼭 집어 공격할 수 없다는 게 주요 이유다. 동행자와 늘 붙어 다니고, 공항이나 항공기내에 주변 사람이 적지 않는데, 무슨 수로 나발니만 공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북한 김정남의 말레이시아 독살 사건을 보면, 여성 2명이 대놓고 김정남의 얼굴에 독극물을 뿌렸고, 영국 스크리팔 대령 독살 기도 사건도 한적한 주택 현관 문이 '노비촉' 공격의 표적이었다. 나중에 현장에 갔던 영국 경찰관도 중독 증세를 보였고, 범인이 버린 '노비촉 병'을 우연히 만진 이웃 주민도 중독을 피해가지 못했다.   

냉전 말기에 '노비촉' 개발에 참여한 블라디미르 우글레프는 2일 인테르팍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나발니가 노비촉에 중독됐을 수가 없다"며 "그럴 경우 주변에 있던 사람도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노비촉을 포함한 '유기인산염' 독극물은 섭씨 20도 이상의 기온에서 흡입 독성이 매우 높아 주변 사람들도 피해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개발 참여자 레오니드 린크는 "노비촉은 아주 소량으로 사람을 혼수 상태에 빠뜨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 당국이 나발니에 대한 '노비촉' 공격의 배후세력이라면, 과연 그를 독일 병원으로 보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톰스크 공항에서 차를 마시는 나발니(위)와 공항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지지자들과/사진출처:소셜 미디어(SNS)

러시아 시베리아 톰스크공항 카페에서 차 2잔을 마신 뒤 탑승한 S7 여객기 내에서 혼수상태에 빠진 나발니는 비상착륙한 옴스크의 응급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독일 샤리테 병원으로 이송됐다. 샤리테 병원은 지난달 24일 발표한 첫 임상 진단에서 나발니가 '콜린에스테라아제 억제제' 물질에 중독됐다고 밝혔다. 당시에는 중독을 일으킨 구체적인 물질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으나, 9일만에 중독 물질이 '노비촉'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콜린에스테라아제 억제제'는 살충제뿐만 아니라 노비촉, 사린가스, VX 같은 화학무기에도 사용된다.

그의 '노비촉' 중독 가능성은 이미 며칠 전 독일 주간지 슈피겔 등에 의해 간파된 바 있다. 슈피겔은 샤리테병원 측이 뮌헨에 있는 '분데스베르 연구소'의 독극물 및 화학전 물질 전문가와, 스크리팔 대령 부녀의 '노비촉' 중독 사건을 맡았던 영국 '포턴 다운 연구소'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며 노비촉 중독 가능성을 보도했다. '노비촉' 물질의 확인은 '분데르베르 연구소'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슈피겔은 또 독일 의료진이 지난 2015년 불가리아에서 중독 증세로 쓰러진 현지 방산사업자 예멜리안 게브레브의 치료 병원에도 자료를 요청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그루지야(조지야) 전쟁(2008년) 당시, 그루지야 측에 무기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게브레브는 2015년 4월 28일 수도 소피아에서 한 비즈니스 리셉션에 참석했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불가리아 방산업자 게브레브/사진출처:유튜브
더 인사이드가 불가리아 방산업자 게브레브 중독사건에 관여한 인물로 러시아 군정찰국 소속 요원 8명을 지목, SNS에 올렸다/2019년 11월 트윗 캡처

그의 사무실에서 회의를 함께 했던 아들과 이사급 인사 한명도 비슷한 중독 증상을 보였다. 서방 언론은 게브레브 사무실에서 사달이 난 것으로 추정했는데, 나발니 사건에서는 주변 인물 누구도 중독 증세를 보이지 않는 게 오히려 '노비촉 중독' 발표를 믿지 못하게 한다.

'노비촉' 개발자 주장에 따른다면 항공기 기내에서 '노비촉' 공격이 이뤄졌다면 승무원 등 적지 않는 승객이 중독 증세를 호소해야 하고, 나발니가 마신 차에 독극물을 탔다면, 소량으로는 혼수상태로까지 빠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남처럼 공항에서? 나발니 당사자마저도 노비촉 공격을 인식하지 못했으니, 범인은 신출귀몰한 능력을 가졌다고 할 수 밖에 없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검찰은 나발니의 '콜린에스테라아제 억제제' 중독 발표이후 독일 사법기관에 샤리테 병원이 확보한 나발니의 생체조직(혈액 소변 타액 모발 손톱일부, 구강내 세포 등)의 일부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나발니 측이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집요하게 촉구하면서 알려진 사실이다.

또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이 "독일 병원이 나발니의 검진 결과를 공유하자는 우리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유감을 표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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