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인터넷 매체 한 여성 편집장의 안타까운 분신 사건 - 국제사회 분노?
러시아 인터넷 매체 한 여성 편집장의 안타까운 분신 사건 - 국제사회 분노?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0.10.05 0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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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즈니노보고로드 내무부 앞에서 몸에 불붙여, 당국의 언론 자유 탄압에 저항
새벽 6시 아파트 압수수색 - 남성들 앞에서 옷 갈아입는 수치심 등에 절망한듯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는 '분신'은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나 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러시아의 지역 인터넷 매체 여성 편집장이 2일 '언론 자유'를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인터넷 매체 '코자 프레스'의 편집장 이리나 슬라비나가 2일 러시아 남부 니즈니노브고르드 내무부 청사 앞에서 분신 자살했다. 니즈니노브고로드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대표팀이 스웨덴와 1차전을 벌인 곳이다.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지역 인터넷 매체 여성편집장이 (분신) 자살했다/얀덱스 캡처
슬라비나 편집장이 분신한 벤치. 뒤로 내무부 청사가 보인다/현지 TV 캡처 

내무부 청사 앞 작은 공원의 벤치에 앉은 그녀가 자신의 몸에 불을 댕기자, 한 남성이 급히 달려와 자신의 코트로 덮어 불을 끄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여러차례 밀쳐냈고, 곧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녀의 분신은 국내외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인권단체들은 즉각 슬라비나 편집장을 죽음으로 몬 수사당국에 형사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가 분신한 장소에는 현지 주민 150여명이 꽃과 양초를 갖고와 슬라비나 편집장의 죽음을 추모했고, 그녀의 딸은 3일부터 1인 시위에 들어갔다.

슬라비나 편집장의 딸 1인 시위. "엄마가 분신할 때 당신들은 침목했다"고 쓴 피켓을 들었다/현지 TV 캡처 

슬라비나 편집장은 분신에 앞서 페이스북에 "내 죽음에 러시아 연방의 책임을 묻고자 한다”고 적었다. 연방의 책임은 전날 그녀의 아파트에 대한 수사당국의 모욕적인(?) 압수수색을 뜻하는 것이라고 현지 언론은 해석했다. 압수수색에 격분, '분신'으로 맞섰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수사당국은 그녀가 민주화 단체인 '앗끄르이따야 라시야'(오픈 러시아 Открытая Россия)의 활동에 연루된 증거를 찾는다며 수사관 12명을 그녀의 아파트로 보내 압수수색했다. '오픈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에게 맞서다 8년간의 수감생활 뒤 해외로 도피한 '1세대 올리가르히'인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전 유코스(석유업체) 회장이 러시아 민주화를 위해 만든 단체다.

문제는 압수수색이 새벽 6시에 전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점. 수사관들은 자신들이 지켜보는 상태에서 슬라비나 모녀가 잠옷을 갈아입게 하고, 딸의 랩탑 컴퓨터는 물론, 남편의 휴대폰까지 압수해가는 등 평온한 한 가정을 하루 아침에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현지 인권단체는 "수사관들이 새벽 6시에 들어닥쳐 한 짓은 인간의 존엄성에 굴욕감을 안겨주고, 가족의 사생활을 박탈한 것"이라며 "직권 남용과 자살 강요 혐의로 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남성 수사관들 앞에서 모녀가 옷을 갈아 입도록 한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으며, 사법적 윤리 기준을 어긴 것"이라며 (중대사건을 담당하는) 연방수사위원회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니즈니노브고로드 주민들이 분신한 장소로 추모의 꽃과 양초를 바쳤다/얀덱스 캡처

이날 압수수색을 당한 사람들은 슬라비나 편집장외에 6명이 더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관들은 '오픈 러시아'의 유인물들과 관련 계정을 찾고 있었다고 한다. 그만한 동기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2016년 9.18 총선을 앞두고 발생한 '플라잉 스파게티 사건'의 연루 가능성이다. 야권인사가 '파스타 요리 강좌'를 명분으로 지역 주민들을 모아 총선 감시요원 교육을 실시하다 적발된 사건이다. 수사당국은 '오픈 러시아'가 이 행사에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보고, 참석한 슬라비나 편집장을 증인으로 채택한 바 있다. 

그녀는 또 지난해 4월에 열린 '자유인' 포럼에 참가한 뒤 이를 보도했다가 5,000 루블(7만4000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이 포럼 행사 뒤에도 역시, '오픈 러시아'가 있다는 의혹을 수사당국으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슬라비나는 '오픈 러시아'와는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고 했다. 

코자 프레스 인터넷 페이지. 머릿기사가 이리나 슬라비나 추모 기사다/캡처

슬라비나는 '검열 금지'를 내세운 작은 인터넷 매체 '코자 프레스'의 편집장을 맡고 있었다. 코자 프레스는 4일 현재 그녀의 추모 기사를 머릿기사로 올려두고 있다. 제목은 '그녀는 피부가 없는(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이었다. 이리나 슬라비나를 추모하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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