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추적)현재 진행형 '나발니의 노비촉 중독' 진실 공방 - 핵심 포인트 셋
(심층 추적)현재 진행형 '나발니의 노비촉 중독' 진실 공방 - 핵심 포인트 셋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0.10.11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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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 매개체인 호텔 물병 존재와 해독제 아트포핀 주사, 옴스크 공항 폭파설 진위
유럽 측에 푸틴 측근들에 대한 개별 제제 촉구 - 슈뢰더 전총리와는 소송전 비화

'반 푸틴' 투사격인 알렉세이 나발니(44)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 안정을 되찾으면서 작심한 듯이 푸틴 대통령과 그의 이너서클(핵심 인사) 등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외신들과 러시아 유명 블로거, 자신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자신의 중독 과정과 배후세력, 중독 은폐 음모 등을 폭로하며 크렘린과 첨예하게 각을 세웠다.

하지만, 나발니의 폭로에 대한 러시아 측 반격도 만만찮아 그의 중독을 둘러싼 '진실 공방'은 쉬 가라앉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현지 언론은 나발니의 기상천외한(?) 폭로와 러시아측 반박, 팩트 체크 등 다양한 각도에서 연일 사건을 되짚어보고 있다. 

나발니가 독일 베를린의 샤리테 병원에서 깨어난 것은 지난 9월 7일, 퇴원한 것은 같은 달 23일이다. 시베리아의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에서 쓰러져 비상착륙한 옴스크 병원에 실려간 지 한달 사흘만에 그는 퇴원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샤리테 병원에서 깨어난 뒤 처음으로 공개한 나발니 가족사진. 오른쪽이 부인 율리야, 왼쪽은 딸과 아들/사진출처:인스타그램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는 나발니 부부/사진출처:인스타그램

독성이 아주 강한 것으로 알려진 신경작용제 '노비촉' 계열 성분에 의한 중독이라면서 이토록 빨리 건강을 되찾은 게 의아할 정도다. 특히 인터뷰 영상을 보면 중독에서 갓 회복된 환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표정과 제스처를 내보인다. 러시아 독극물 전문가들이 노비촉 중독에 대해 근본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그가 깨어난 뒤 첫 인터뷰를 가진 매체는 독일 주간지 슈피겔. 지난 1일 공개된 인터뷰에서 그는 "건강을 회복한 뒤 러시아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발니는 "내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푸틴 대통령에게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만족감을 안겨줄 것"이라며 "그에게 (내가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는) 선물을 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 노비촉 중독 호텔 물병의 진위 공방

나발니는 "러시아로 돌아가면 지방을 계속 다니면서 호텔에 묵고 물을 마실 것"이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살인자에 대항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했다. 모스크바행 비행기 탑승 전, 톰스크에서 묵었던 호텔 객실의 물병으로부터 (노비촉에) 중독됐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비꼰 것으로 보인다.

톰스크 호텔 객실에 있었던 물병. 책상 위에 두병(위)과 침대옆 소탁자 위에 한병 등 모두 세병이 있었다/사진 출처:나발니 측이 올린 동영상 캡처

그러나, 러시아 당국은 톰스크 호텔 객실에서 수거해 갔다는 물병의 존재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나발니 측근들은 그가 옴스크에서 응급실로 실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호텔로 달려가 물병 3개를 수거하는 동영상을 올렸는데, 그 물병들이 진짜 독일 측에 전달된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나발니 측은 전달 과정을 대충 이렇게 설명했다. "자동차로 노보시비르스크로 달려가, 옴스크 행 비행기를 탔고, 나발니 가족을 통해 독일행 구급 비행기에 실었다"는 것.

러시아 당국은 노보시비르스크 공항의 CCTV 등을 확인한 결과, 옴스크행 비행기를 탄 측근의 수하물에는 문제의 물병 3개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보안 검색 당시, 측근의 수하물에는 100㎖도 안남은 물병 하나밖에 없었고, 오히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휴대용 물을 구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제의 물병은 어디에 있었느냐?"고 되물었다. 물병 등 호텔 수거 물품들을 미리 짐으로 부쳤을까? 이건 확인이 너무 쉽다. 

또 옴스크 공항 카페에서 홍차 2잔을 마시고 중독되었다는 당초의 주장은 쑥 들어갔다. 인터뷰 내용 중에 홍차 이야기는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호텔 객실에서 옷걸이를 만지거나, 물병, 손잡이 등 어떤 물건을 만져 중독되었는지 모르지만.."이란 표현 등으로 암살자가 호텔을 겨냥했다는 듯한 암시가 풍겼다.

## 중독 해독제 아트로핀 주사 여부

뒤이어 6일 나발니는 영국 BBC 방송과 러시아의 유명 블로거 두디 дудь 와 인터뷰를 가졌다. 퇴원 뒤 그의 모습을 처음으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는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에서 (내가) 정부의 위협이 되기 때문에 러시아 첩보기관이 독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푸틴 대통령이 있다고 했다.

나발니, 자신의 중독 뒤에는 권력이 있다고 주장/얀덱스 캡처
나발니, 중독 후 (유명 블로거)두디와 인터뷰/얀덱스 캡처
나발니의 두디 인터뷰(위)와 인터뷰 시작전 두디와 환담하는 부부/출처:인스타그램

그는 자신이 생명을 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탑승 여객기 조종사와 응급 차량 의사에게 거듭 감사를 표시했다. 조종사는 적기에 비상착륙을 결정했고, 응급 차량 의사는 한눈에 중독 상태임을 알아채고 아트로핀을 주사함으로써 (나발니에게는) '행운의 사슬'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아트로핀은 독일 샤리테 병원에서 중독을 해제하기 위해 처방한 약품이다.

이 주장은 그를 처음 치료한 옴스크 응급병원측의 반박에 부딪쳤다. 주치의 격인 알렉산드르 사바예프는 "아트로핀을 주사한 곳은 (응급 차량이 아니라) 옴스크 병원 중환자실"이라며 "그 투여량도 화학 물질 중독에 대한 해독제로 사용할 만한 양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나발니 생명을 구한 의사, 중독 자료에 대해 반박/얀덱스 캡처

그의 중독 여부에 대한 양측의 주장은 여전히 팽팽한 상태다. 나발니는 독일측 중독 발표를 근거로 "사바예프의 대사 장애 진단은 노골적인 거짓말"이라며 "그는 권력에 잘 보이기 위해 누구든지 죽일 수 있는 의사"라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사바예프는 나발니 몸에서 독성 물질을 검출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노비촉' 성분의 물질을 독일 샤리테 병원측이 아니라 독일군 화학연구소가 찾아냈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한다. 샤리테 병원, 역시 나빌니 몸에서 중독 물질을 찾아내기 못한 게 아닌가 라는 주장이다.

나발니의 공격은 자신의 독일 이송 결정까지 이어진다. 그는 "화학전 성분은 체내에서 빠르게 용해되며, 나중에 그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며 "옴스크 응급병원 측에서 독일 병원 이송을 거부한 것은 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독일 이송에 동의한 타이밍이 잘못 됐다"고 꼬집기도 했다. 당초 옴스크 병원측이 "(생명이) 너무 위험하다"며 독일 이송을 거부하다가, 독일 측의 보증 하에 이송에 동의한 것이 너무 일렀다는 것을 빗댄 것으로 보인다. 

## 옴스크 공항 폭파 위협설의 진위는?

나발니는 지난 8일 중독 후 처음으로 자체 유튜브 동영상을 제작, 공개했다. 그는 이 영상에서 푸틴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연방보안국(FSB) 혹은 해외정보국(SVR)의 장교들이 살인 작업을 수행했다고 주장했다. FSB와 SVR은 구 KGB의 후신 첩보기관들이다. 

나발니, 중독에 대한 푸틴 간여를 거듭 주장/얀덱스 캡처

그는 '노비촉과 같은 화학물질에 대한 접근 가능성과 옴스크 상황'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옴스크 상황의 핵심은 비상착륙한 옴스크 공항의 폭파 위협설이다. 나발니는 "암살자들이 비행중인 기내에선 필요한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 시간 계획을 짰다"며 "비상 착륙을 결심한 조종사에게 옴스크 공항의 폭발물 설치 위협 정보를 제공하며 비상착륙을 방해하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이 지역을 관할하는 시베리아연방관구 교통부측은 한마디로 "말도 안된다"는 반응이다.
세르게이 포타포프 교통부 차관은 샤리테 병원에 입원한 나발니에게 어떻게 그런 정보가 들어갔을까 의문을 제기하며 "정확하지 않은 정보"라고 반박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보안당국은 8월 20일 오전 7시 34분에 폭발물 설치 위협 e멜을 확인했는데, 나발니 탑승 여객기는 이미 7시 3분~17분 옴스크 비상착륙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지 경찰은 8시 23분부터 공항을 샅샅이 뒤졌지만, 문제의 폭발물은 찾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청사 근무자와 승객 등 238명이 긴급 대피했다. 하지만 활주로에선 이착륙 서비스가 중단되지 않았다고 했다. 

폭발물 설치 위협은 공항뿐만아니라 지방법원과 기차역, 우체국, 은행 등에도 e멜로 전달됐다. 문제의 e멜은 독일에 서버를 두고 있는 e멜 서비스를 통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검찰청은 폭발물 위협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독일 측에 사이버 협조를 요청했다고 한다.

## 슈뢰더 전 독일 총리와 공방

나발니는 또 독일 주간지 빌트와의 회견에서 "유럽 ​​연합(EU)은 러시아가 아니라 푸틴 대통령 측근들을 대상으로 엄격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뮌헨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발레리 게르기예프 수석 지휘자와 같은 각 분야의 (푸틴) 측근들을 꼭 집어 제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EU 입국을 막는다면, 본인과 푸틴 대통령에게 직접 타격이 된다는 논리다. 

나발니, 푸틴 측근들에게 제재를 가할 것을 EU측에 촉구/얀덱스 캡처

나아가 측근들이 유럽에 숨겨놓은 자산을 압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수십억 달러를 횡령해 베를린이나 런던에 비싼 아파트를 마련해 놓고 수시로 왕래하는데,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독일과 러시아를 잇는 해저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의 건설을 중단시켜 에너지 올리가르히(재벌)에게 타격을 가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의 독설은 독일의 유명 정치인에게 향하기도 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를 '살인자를 변호하는 (푸틴의) 심부름꾼"이라고 비난했다. 한국인 여성과 재혼한 슈뢰더 전총리는 러시아 국영에너지 회사 가스프롬, 국영석유회사 로스네프티에 적을 두기도 했다. 

발끈한 슈뢰더 부부는 빌트지와 나발니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기로 했다.

슈뢰더 전총리, 나발니 인터뷰 관련 빌트지 소송/얀덱스 캡처

## 나발니의 투병기

나발니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쓰러지고 깨어나는 과정에서 기억나는 대목들을 드문드문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5층까지 걸어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능력이 돌아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식을 잃어가던 순간을 “죽어가고 있었다”고 표현했다. “술에 취해 주변이 흔들리거나 흐릿해지지는 현상과는 달랐다. 또 공황 발작이나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경험하는 두려움도 아니었다. 고통은 느끼지 못했지만, 무언가 잘못되었으며 내가 죽어가고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는 또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소설 해리포터에 나오는 디멘터(검은 그림자 마법사)를 만난 것처럼 고통스럽지 않지만 떠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퇴원후 셀카를 찍는 나발니 부부/사진출처:인스타그램 

그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에도 몇번의 고비를 넘었다고 말했다. 매일 밤 찾아온 환각과 환청이었다. 나발니는 “한번은 아내와 의사, 동료들이 다가와 내가 다리를 잃었으니, 새 다리와 척추를 준다고 했다”며 “정신이 온전히 돌아올 때까지 난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여전히 수면제 없이는 잠을 잘 수 없고, 또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손 떨림 증상도 나타났다고 한다. 

그는 독일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지만 완전히 회복하기까지는 2개월이 더 걸릴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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