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죽겠다'는 소리에도 충격요법 피하는 크렘린, 러시아 코로나는 지금..
지방의 '죽겠다'는 소리에도 충격요법 피하는 크렘린, 러시아 코로나는 지금..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0.11.04 0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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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전 학습효과로 모스크바시, 확진자 급증에 임시시설 확충 등 여유
준비 미비 지방엔 '의료 대란' 조짐, 병실과 치료제, 의료용 산소 등 부족

우리 정부가 엊그제 '사회적 격리두기' 단계를 확대 개편하면서 지자체별로 방역 단계가 서로 다른 '지역 맞춤형 방역'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정밀 방역' '맞춤 방역'이란 용어가 새로 나오기 시작하니 기대도 크다. 땅덩어리가 비교적 적은 편에 속하는 우리는 수준높은 의료 시설및 기술, IT 인프라를 잘 활용하면 새 방역 정책이 의외로 큰 효과를 거둘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에 비해 땅덩어리가 크도 너무 크고, 인구 밀집도가 느슨한(모스크바 등 대도시 제외) 러시아는 지난 4, 5월의 2달간 '전국민 유급 휴직및 자가 격리'(봉쇄)라는 충격적 조치 이후 세부적인 방역 대책을 각 지자체에게 맡겼다. 푸틴 대통령은 당시 화상으로 열린 각급 신종 코로나 대책 회의를 주재하면서 각 지역 수장들에게 "지역 상황에 맞춰 제한 조치를 강화하거나, 해제해 국민 안전에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했다.

10월 들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신종 코로나 하루 신규 확진자가 1만8천명을 넘어서는 등 연일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러시아 정부는 각 지역에 위임한 자율적인 방역 대책 권한을 회수하지 않고 있다. 푸틴 대통령도 지난 봄과 같은 전국적 봉쇄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긴급히 확충된 모스크바 임시 코로나 병동/사진출처:모스크바 시 mos.ru

그 이유는 분명하다. 6개월 전의 '학습효과'로 모든 여건이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유럽 방문자들을 통해 유입되기 시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무서운 기세로 확산된 지난 3월에는 일단 과격한 '봉쇄조치'로 불길을 잡는데 급급했지만, 이제는 한결 여유로워졌다.

모스크바시의 경우, 신종 코로나의 감염 경로 확인과 접촉자에 대한 '핀셋 검진', 경증과 중증 환자의 분리, 적절한 중증환자 치료 등이 가능해졌다. 모스크바시는 조만간 신종 코로나 백신 접종도 시작할 전망이다. 지난 봄과 같은 전국적 '봉쇄조치'는 모든 면에서 득보다 실이 큰 것으로 러시아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 무라슈코 보건장관과 화상 회의를 갖고 있는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위)/현지 TV 캡처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지역별 대책의 후유증이 하나씩 나타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 감염의 지방 확산과 그에 따른 지역 의료체계의 붕괴 조짐이다. 지난 봄, 대혼란을 겪은 모스크바와 수도권은 가을 환절기의 2차 파동에 대비, 꾸준히 병상및 치료제 확보 등에 힘써왔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지방은 2차 파동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는 신규 확진자 급증으로 전국의 코로나 전문 병동 80%가 소진됐다. 모스크바 시는 지금도 임시 병동 개설을 준비 중이다. 반면 지방은 넘쳐나는 환자로 이미 '병실 부족' 상태에 직면했다. 평균 95% 소진율이라고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입원할 병실이 없어 환자들이 떠돌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구급차량/사진출처:모스크바 시 mos.ru

'반푸틴'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긴급 후송으로 우리에게 낯익은 시베리아 옴스크에선 지난달 27일, 70세 이상 노인 2명을 실은 구급차가 현지 보건부 건물 앞에서 항의 주차 시위를 벌였다. 병상 부족으로 입원을 거절당하자 대책을 마련해 달라며 보건부로 온 것. 옴스크 지역에는 최근 하루 200명 안팎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병상이 부족해졌다. 

알렉산드르 부르코프 옴스크 주지사는 뒤늦게 지역 보건부를 질책하면서 조속한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옴스크에선 확진자 급증으로 코로나 검사 결과를 무려 5일이 지난 뒤에야 받아볼 수 있다고 하니, 위·중환자에게는 치명적이다.

제2, 제3의 옴스크 가능성이 높은 곳이 10월 말 기준으로 16개 지역에 이른다고 한다. 

수사당국(CK), 첼랴빈스크 산소통 폭발사건 후 과실 문제 제기/얀덱스 캡처
첼랴빈스크 의료용 산소통 폭파현장/ 사진출처: espreso.tv

또 지난달 31일 첼랴빈스크에서는 인공호흡기에 연결된 의료용 산소저장소가 폭발해 입원환자 200여명이 대피하는 소동을 벌였다. 병원 복구에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고 하니, 최악의 상황이다.

또다른 20여개 지역에서는 중앙정부에 의료용 산소 공급을 긴급 요청했다. 인공호흡기에 연결한 산소가 모자란다는 호소다. 러시아 정부는 기존의 의료용 산소 생산 114개 업체에 생산 확충을 요구하고 일부 업체에 신규 면허를 발급하기도 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는 2일 '의료대란'에 시달리는 지역으로 의료진을 파견하고, 의료 시설 보완을 위해 160억 루블(2,500억원)을 추가로 할당했다. 노보시비르스크와 이르쿠츠크 등 시베리아 핵심도시들이 그 혜택을 볼 전망이다. 

크렘린/사진출처:rbk 동영상 캡처

푸틴 대통령과 크렘린은 지역 곳곳에서 "죽겠다"고 아우성이지만, 적극 개입을 꺼리고 있다. 미슈스틴 총리와 방역당국 측에 코로나 방역에 관한 한 많은 권한이 넘어가 있다. 외신은 이를 "푸틴 대통령이 또다시 봉쇄조치로 인한 비난을 피하고, 코로나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라고 비판하지만,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간다'는 우리의 방역 정책에 비춰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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