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집정부제 아르메니아의 고민은 깊어간다 - 패전 수습에 진영 대립 격화
이원집정부제 아르메니아의 고민은 깊어간다 - 패전 수습에 진영 대립 격화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0.11.19 0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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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사퇴-조기총선 주장 대통령에 '독자 수습방안' 내놓고 버티는 총리
파쉬냔 총리, 패전 책임론에 정면돌파, 푸틴 대통령 파쉬냔 책임론 제기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에서 진 니콜 파쉬냔 아르메니아 총리 내각이 안팎에서 전쟁 책임에 대한 공격을 받고 있다. 파쉬냔 총리는 그러나 전쟁 이후 '국가안정' 방안을 페이스북을 통해 발표하는 등 권력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는 아르메니아에서는 총리와 의회가 대통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권한을 갖고 있어 야당측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외에는 파쉬냔 총리를 실각시킬 뾰족한 묘안이 없는 것으로 분석된다.

아르메니아 대통령, 내각 사퇴와 조기 총선의 불가피성 주장/얀덱스 캡처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아르멘 사르키샨 Армен Саркисян 아르메니아 대통령은 17일 조기 총선과 파쉬냔 내각의 사임을 촉구했다. 사르키샨 대통령은 이날 “지난 며칠 동안 의회를 비롯해 나라 안팎의 다양한 정치세력과 비정부 조직 등과 논의한 결과, 총리의 사임과 조기 총선이 (아제르바이잔과의 평화협정 체결 후) 혼란에 빠진 국정을 수습하는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내각이 사퇴하고, 새로운 총선 전까지 국민합의로 추대된 과도정부가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국 수습을 위해서는 국가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앞으로 10일내에 어떤 형태로든 합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했다. 수도 예레반에서는 평화협정 내용이 알려진 뒤 파쉬냔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야권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2018년 4월 아르메니아 대통령에 취임한 사르키샨 대통령은 "파쉬냔 총리가 서명한 러시아, 아제르바이잔과의 3국 평화협정에 대해 사전에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며 자신의 풍부한 외교 협상 능력을 무시한 파쉬냔 내각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물리학및 수학 박사 출신인 사르키샨 대통령은 소련시절 1세대 컴퓨터 게임인 '테트리스' 개발에 참여했으며, 1991년 아르메니아 독립 후에는 오랫동안 주영 대사를 지낸 외교통이다. 1996~97년에는 총리를 역임했다. 

파쉬냔 총리,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후 정국 수습방안 제시/얀덱스 캡처 
파쉬냔 아르메니아 총리, 슈시 통제권 이전 거부 문제로 외무장관 해임/얀덱스 캡처 

그러나 파쉬냔 총리는 18일 군 개혁과 나고르노-카라바흐 난민에 대한 지원및 복구, 부패척결 조치 등을 포함한 정국 수습 방안을 발표하고, 내년 6월 실행 결과를 보고하겠다고 약속하며 스스로 퇴진한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했다. 파쉬냔 내각의 진퇴를 놓고 집권세력과 야권 시위세력간에 팽팽한 힘겨루기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파쉬냔 총리는 또 평화협정에 불만을 표시한 조그랍 므나짜카냔 Зограб Мнацаканян 외무장관을 해임했다. 당초에는 지난 10월 러시아, 아제르바이잔과 휴전협상을 진행한 므나짜카냔 외무장관이 파쉬냔 총리의 독단에 불만을 품고 사임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내각 내부에서 평화협정에 대한 불협화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 이유다.

총리와 외무장관의 대립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최고 전략요충지인 '슈시'의 통제권 논란에서 비롯된 것으로 관측된다. 파쉬냔 총리는 러시아측의 휴전 중재안을 뿌리치고 전쟁을 계속하다 슈시를 아제르바이잔군에 빼앗긴 뒤 이틀 만에 평화협정을 받아들였는데, 외무장관 측은 "(자신의) 휴전 제안을 일찍 받아들였으면, 슈시를 아제르바이잔측에 넘겨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파쉬냔 총리는 그러나 러시아의 중재안에는 이미 슈시의 아제르바이잔 이전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강변했다. 

푸틴 대통령,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과 협상이 파쉬냔 총리의 거부로 깨졌다고 말했다. 사진은 전략요충지 슈시(슈사)/얀덱스 캡처

푸틴 대통령도 17일 이 논란에 개입했다. 그는 러시아 TV와의 인터뷰에서 "10월 19~20일 이 참혹한 전쟁을 끝낼 기회가 있었다"며 "파쉬냔 총리가 중재안을 거부하는 바람에 깨졌다"고 파쉬냔 총리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푸틴 대통령은 슈시 지역에 대한 아르메니아 통제권을 인정하는 선에서 난민(아제르바이잔측 무슬림)의 복귀와 평화유지군 파견을 전제로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의 휴전 동의를 받아냈는데, 파쉬냔 총리가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파쉬냔 총리가 '이 중재안이 아르메니아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이익에 위협이 된다'며 내쳤는데, 무슨 위협을 뜻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아르메니아측은 최종 평화협정으로 슈시를 완전히 아제르바이잔측에 넘겨주고 말았다. 슈시 진입 길목에는 이제 아제바이잔 군의 검문소가 설치되고, 터키 국기가 게양된 동영상이 SNS를 통해 나돌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정상과 전화협상을 통해 평화협정을 성사시킨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푸틴 대통령의 설명에 따르면 슈시에 관한 한 조그랍 므나짜카냔 전 외무장관의 주장이 맞고, 논란의 확대를 우려한 파쉬냔 총리가 무나짜카냔 장관을 미리 해임한 것으로 보인다. 

승전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파괴된 인프라에 대한 배상을 아르메니아측에 요구할 것이라며 파쉬냔 총리를 압박했다. 알리예프 대통령은 17일 아제르바이잔의 통제하에 들어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돌아보면서, "아르메니아인들이 떠나기 전에 학교와 집, 건물등 인프라를 파괴했다"며 "국제 구조 전문가들을 참여시킨 상태에서 피해액을 계산한 뒤 국제중재법원을 통해 아르메니아측에 배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이번 평화협정으로 아제르바이잔측에 넘겨줘야 하는 켈바자르 등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수십년간 가꿔온 삶의 터전을 불태우고 떠나는 행동에 대한 경고로 들린다.

평화협정에 따르면 아르메니아는 켈바자르 지역을 시작으로, 가자흐와 아그담, 라친 지역 등 지금까지 통제해온 지역들을 아제르바이잔에게 넘겨줘야 한다. 아르메니아 군대도 철수하고,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이 지역의 안전을 보장하기로 했다.

슈시의 아제르바이잔 군 검문소에 걸려 있는 터키 국기/동영상 캡처  
터키 코만도 특수부대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단도. 뒷면에 터키 국기가 새겨져 있다/캡처
터키 특수부대원들이 종전 직전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선에서 빠져나갔다/얀덱스 캡처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이번 아제르-아르메니아 (6주) 전쟁에는 터키의 특수 부대 '코만도 여단'이 아제르바이잔측에, 러시아의 용병부대 '와그너 PMC' 군이 아르메니아측에 참전한 것으로 부분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두 부대의 참전은 외신을 통해 몇차례 거론됐는데, 전쟁이 끝나자 그 참전 흔적들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텔레그램의 WarGonzo채널은 "평화협정 체결 직전 아제르바이잔군이 마르투니 전선에 배치한 병력을 빼내 전략 요충지 '슈시'의 총공격 작전에 투입했다"며 "그 현장에서 터키의 '코만도 여단' 부대원들이 사용하는 단도를 지닌 시신이 발견됐다"고 사진과 함께 전했다. 

또 아제르바이잔군이 터키의 지원과 군사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나고르노-카라바흐 북부 방어선을 뚫지 못한 것은 그 지역에 러시아의 용병 '와그너 PMC'가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터키 언론은 개전 초기부터 와그너 PMC군의 참전을 제기했고, 평화협정 체결 직전(11월 초)에는 북부 전선에 약 500명이 배치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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