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추적) 삼성중공업의 쇄빙 LNG선 최대 수주 발표 공시를 추적해 보니..
(공시추적) 삼성중공업의 쇄빙 LNG선 최대 수주 발표 공시를 추적해 보니..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0.11.30 0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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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TIC LNG-2 프로젝트’ 관련 발주처를 왜 공개하지 않을까? 의문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를 통한 우회 발주? 대우조선해양과 다르다

삼성중공업은 유럽 지역의 선주로부터 25억달러(약 2조8072억원) 규모의 대형수주 계약을 따냈다고 지난 23일 공시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언론에 "현재 체결된 선박 건조의향서(LOI)와 추가 옵션 안건들을 올해 안에 실제 계약으로 연결시킬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계약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는 설명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고 발주처가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삼성중공업이 공개하지 않을 이유로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언론들은 삼성중공업의 이번 계약이 러시아의 ‘북극(ARCTIC) LNG-2 프로젝트’에 투입될 LNG(액화천연가스) 쇄빙 운반선 건조와 관련된 것으로 일제히 보도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기단반도 (Гыда́нский полуо́стров) 인근에서 LNG를 생산하기 위한 대형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 즉 'ARCTIC LNG-2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2025년까지 연간 1천980만t의 LNG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개발 추진 법인 역시, 'ARCTIC LNG-2 프로젝트'다. 러시아 민영 가스 회사 노바텍이 60%의 지분을 갖고, 프랑스 에너지업체 토탈과 중국 국영석유회사 CNPC, 일본의 미쓰이 컨소시엄 등이 각각 10%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2조8천억원대의 이번 수주는 삼성중공업이 체결한 단일 선박 계약으로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라고 언론들은 전했다. 중형 자동차 10만대 분에 해당한다고도 했다. 조선·해운경기가 몇년째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들려온 호재중의 호재다. 

그런데, 왜 삼성중공업은 초대형 수주처를 공개하지 않았을까? 단순히 "선박 건조의향서(LOI)와 추가 옵션 안건들을 실제 계약으로 연결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이기 위해서" 일까? 이 정도 '대박 수주'라면, 대대적인 홍보 과정에서 발주처를 밝히는 게 상식적으로 맞다.

국내 언론의 보도와 관련 업계의 추정을 근거로, 그 내막을 러시아 언론을 통해 추적해 보기로 했다. 요즘이야 인터넷 서핑이 핵심이다. 

우선 러시아 포탈사이트 얀덱스(yandex.ru)에 영어와 러시아어로 'ARCTIC LNG-2 프로젝트'와 '삼성중공업'을 검색해 봤다. 노바텍과 LNG탱커 등 관련 검색어도 넣었다. 

안타깝게도 LNG 쇄빙선 건조와 관련된 최근 기사는 겨우 몇 건에 불과했다.

러시아 매체 '글라브빨루바'의 삼성중공업 수주 관련 기사/캡처

조선·해운 전문 매체인 '글라브빨루바' (ГлавПалуба, https://glavpaluba.ru)는 지난 24일 '삼성중공업, 즈베즈다 조선소와 (그리스 해운회사인) 센트로핀 매니지먼트와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Samsung Heavy заключила крупные контракты с ССЗ «Звезда» и Centrofin Management)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삼성중공업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즈베즈다 조선소와 일련의 쇄빙 가스 운반선 공동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중공업이 모 선주로부터 25억 달러 규모의 선박 블록및 기자재 수주 계약을 따냈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즈베즈다 조선소에서는 러시아 SCF그룹이 'ARCTIC LNG-2 프로젝트' 용으로 주문한 쇄빙 LNG선박 15척 중 첫 번째 선박의 건조를 위한 강재 절단식이 열렸다" 등으로 구성됐다. SCF그룹은 러시아의 최대 해운사 '소브콤플로트' (Совкомфлот)의 모기업이다.

단 '3개의 팩트'로 이뤄진 이 기사의 문맥을 잘 이어보면, '삼성중공업이 쇄빙 LNG 선박 건조를 시작한 즈베즈다 조선소로 25억달러 어치의 선박 부품을 공급하고, 함께 조립에 들어갈 것'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해외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방식의 하나인 '반조립제품(CKD) 공정'과 흡사하다.

자동차 업체가 언론에 공개해온 'CKD 방식'의 자동차 수출과 유사한 계약을, 조선업계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일단 조선산업의 재건과 선진 조선 기술의 도입 등을 겨냥한 러시아의 정부 정책에 따른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고급 기술이 필요한 LNG 운반선 건조에는 즈베즈다 조선소를 통한 우회 발주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즈베즈다 조선소와 기술협력을 체결한 (한국의 조선 3사를 포함한) 해외업체가 선박의 블록을 제작·공급하고, 이를 즈베즈다 조선소에서 최종 조립하는, 소위 '선박의 CKD 방식'이다. 선박 건조 수주에 목이 타는 우리 조선업체로서는, 특히 중국 측과 수주 경쟁을 벌이는 우리로서는 러시아 측의 어떤 건조 옵션도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ARCTIC LNG-2 프로젝트'(이하 북극 프로젝트) 측이 러시아 국적 해운사와 용선 계약을 체결하면, 해운사는 자국의 즈베즈다 조선소에 LNG 쇄빙선 건조를 발주하고, 즈베즈다 조선소는 한국 조선업체에 블록 제작및 인도, 공동 조립을 요구한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삼성중공업은 유럽 지역의 선주 측과 건조 계약이 아니라, 즈베즈다 조선소와 선박 부품의 납품 계약을 맺은 것이다. 

이같은 추정은 대우조선해양이 지난달 중순에 따낸 '북극 프로젝트' LNG 쇄빙선 건조 계약 (보도)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일본 MOL 해운사가 대우조선해양에 쇄빙LNG 건조 발주한 코라벨.ru 기사(11월 4일자)/캡처
러시아 유력 경제지 '코메르산트' 10월 15일자 "노바텍, 한국으로부터 (LNG) 운반선 인도받는다"는 제목의 기사. 대우조선해양이 소브콤플로트와 (일본의) MOL로부터 6척의 건조를 발주받았다고 되어 있다/캡처

현지 해운 전문 매체 코라벨(KORABEL, https://www.korabel.ru)은 지난 4일 "일본 TOKYO-Mitsui OSK Lines, Ltd. (MOL)이 'ARCTIC LNG-2 프로젝트’ 측과 LNG 쇄빙선 3척의 용선 계약을 체결하고, 대우조선해양에 선박 건조를 맡겼다"고 보도했다.

발주처인 MOL은 '북극 프로젝트’의 지분 10%를 지닌 일본의 미쓰이 컨소시엄 업체다. 이 업체는 용선 계약을 따낸 뒤, 직접 대우조선해양에 LNG 쇄빙선 건조를 발주한 것이다.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가 중간에 끼어 있지 않는 건조 계약이다. 

이와 관련, 대우조선해양은 지난달 12일 “유럽 선사와 LNG 운반선 6척에 대한 2조274억원 규모의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는데(**러시아 언론 코메르산트 보도 참조), MOL 발주 물량도 이 계약 속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대우조선해양도 구체적인 발주처를 공개하지 않았다. 일본 해운회사를 거론하기가 껄끄러웠을 수 있다. MOL측은 지난 2014년 러시아 LNG 프로젝트에서 쇄빙 LNG선 15척을 수주한 대우조선해양의 건조 기술력을 믿고 발주했을 것이다.

노바텍, 북극 LNG-2 용선 계약/러시아 매체 kdpconsulting.ru 캡처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북극 프로젝트'의 최대 투자자인 '노바텍'과 해운사 '소브콤플로트'의 합작사인 스마트LNG (Smart LNG)는 지난 9월 초 '북극 프로젝트'로부터 쇄빙 LNG운반선 14척의 용선 계약을 따냈다. 이 물량은 즈베즈다 조선소로 할당될 게 분명하다. 즈베즈다 조선소는 지난해 10월에도 15척의 건조 물량을 따냈다. 이 조선소는 '북극 프로젝트'와 관련해 이미 29척 이상의 물량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9월 즈베즈다 조선소로부터 '북극 프로젝트'에 투입될 쇄빙 LNG운반선 건조의 기술파트너로 선정됐다. 고난도의 쇄빙LNG선 설계는 물론, 블록 제작및 납품사로 자격을 확보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해 11월 쇄빙LNG선 5척에 대한 공동건조 계약을 즈베즈다 조선소와 체결했다. 이번 초대박 수주에 앞서, 이같은 사전 정지작업이 있었다.  

삼성중공업의 높은 쇄빙 기술력은 러시아 측이 이미 인정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소브콤플로트' 해운사로부터 세계 최초의 양방향 쇄빙 유조선 3척을 수주해 2009년까지 성공적으로 인도한 바 있다. 삼성중공업의 쇄빙유조선은 최대 두께 1.4m의 얼음을 깨고 시속 3.5노트의 속도로 항해할 수 있으며, 영하 45도의 혹한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삼성중공업이 2007년 건조한 세계 최초의 양방향 쇄빙유조선 '바실리 딘코프'호 /사진출처:삼성중공업

그 기술력을 바탕으로 삼성중공업은 '북극 프로젝트'의 쇄빙LNG선 수주에 나섰고,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쇄빙LNG선은 3억 달러(약 3340억원) 수준의 고부가가치 선박이다. 2억 달러 수준인 일반 LNG선보다 40% 가까이 더 비싸고, 쇄빙유조선보다도 단가가 높다. 다만, 쇄빙유조선과 달리, LNG쇄빙선 수주는 선주(소브콤플리트, 혹은 스마트LNG)의 직접 발주가 아니라, 즈베즈다 조선소의 부품 납품및 공동 건조로 이뤄진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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