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도바, 너마저?" 친서방 대통령 당선으로 고민에 빠진 러시아
"몰도바, 너마저?" 친서방 대통령 당선으로 고민에 빠진 러시아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0.12.03 0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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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서방 산두 당선자, 러시아군 철수 요구에 분리주의자 지역 재통합 의지 확고
친러시아계 반발로 '제 2의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우려도 고조 - 러시아 고민중

최근 치러진 대선에서 친서방 여성 대통령을 선택한 옛 소련의 작은 나라 몰도바가 '제 2의 우크라이나 사태'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몰도바는 지난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인구 350만 명의 소국이다. 그러나 러시아계 주민이 30%를 차지하는 동부 '트란스니스트리아' (러시아명 프리드녜스트로비예) 지역은 몰도바 정부의 탈러시아에 불만을 품고, 1992년 독립을 선언했다. 그 과정에서 유혈 충돌이 발생했고, 이를 막기 위해 러시아 평화유지군 수천명이 30년 가까이 주둔중이다. 

러시아군에 의해 지탱된 몰도바의 안정이 깨칠 조짐을 보인다. 친러시아 정권이 친서방 정권으로 교체됐기 때문이다.

러시아 매체 rbc와 회견하는 산두 당선자/동영상 캡처

오는 24일 취임하는 마이야 산두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이 확정된 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재통합과 러시아 평화유지군의 철수를 주장하고 나섰다. 내치는 총리, 외교안보는 대통령이 책임지는 '이원집정부제' 권력 구조를 갖고 있는 몰도바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 문제는 대통령의 권한에 속한다.

산두 당선자의 외교 노선은 한마디로 친서방이다. 지정학적 위치상 유럽과 러시아의 영향권에 속할 수 밖에 없는 몰도바는 어떤 성향의 정권(대통령)이 나오느냐에 따라 정책 방향이 바뀌게 되어 있다.

지금까지는 친러 성향의 도돈 대통령이 2014년 6월 우크라이나, 그루지야(조지아) 등과 함께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포함한 포괄적 협력 협정을 체결하는 등 유럽을 배제하지 않는 친러시아 정책으로 균형을 잡아왔지만, 산두 당선자는 결이 다르다.

산두 대통령 당선자/인스타그램 캡처

몰도바 대학에서 경제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뒤 2010년 미 하버드 대학의 '케네디 스쿨'을 나온 산두 당선자는 2010~2012년 워싱턴 소재 세계은행 본부에서 집행이사 고문으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녀는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당선되면 유럽연합(EU)로부터 더 많은 재정 지원을 받아올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궁극적으로는 발트 3국이나 우크라이나 처럼 러시아권에서 떨어져나가 EU가입을 겨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그녀의 취임과 동시에 몰도바의 외교 노선은 친서방 일변도로 전환될 게 분명하다. 그 기조는 이미 러시아 평화유지군의 철수 주장으로 가시화하고 있다. 그녀는 최근 우크라이나 방송과의 회견에서 "역대 대통령들이 트란스니트리아 문제에 너무 유연하게 대처해 왔다"며 강경한 노선을 천명한 바 있다. 

당장 '트란스니스트리아' 측이 산두 당선자의 강경 노선에 반발하고 나섰다. 국제사회에 독립국가로 인정받지는 못하지만,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돈바스'와 비슷한 '독립 국가'체제를 갖추고 있는 트란스니스트리아 측은 러시아 평화유지군 철수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자칫하면 1992년과 같은 유혈충돌, '제 2의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비극이 재현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산두 당선자, 러시아평화유지군 철수 요구/얀덱스 캡처
 프리드녜스트로비예 수장, 산두 당선자의 평화유지군 철수에 (부정적) 반응/얀덱스 캡처

그녀와 대선에서 맞붙은 친러 성향의 도돈 대통령은 "'프리드녜스트로비예' 분쟁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고 전체 국민의 35~40%가 러시아어 사용 인구인 국가에서 대통령 당선인의 주장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이는 심각한 실수다"라고 비판했다

산두 당선자의 잇딴 러시아 평화유지군 철수 주장에 러시아도 발끈했다. 이 문제로 자칫 몰도바-러시아간 외교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장관은 1일 현지 TV 방송과 회견에서 "산두 당선인이 평화유지군 철수의 필요성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과의 관계 증진에 우선 순위를 두면서도, 러시아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산두 당선자의 발언을 상기시키며 "평화유지군의 주둔이 유혈분쟁의 재개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산두 당선자가 철수 제1 목표로 겨냥한 탄약고 경비 병력에 대해서도 협상을 통한 해결을 시사했다.

하지만, 산두 당선자의 정책 의지는 확보해 보인다. 그녀는 러시아 TV와의 회견에서 "탄약고 경비 병력은 몰도바 정부의 승인 없이 무단으로 주둔 중"이라며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도 지난해 탄약고를 철수하거나, 폐기하는데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콜바스나 지역에는 러시아군 탄약 2만톤 이상이 저장되어 있으며, 러시아군 약 1천여명이 경비를 서고 있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산두 당선자의 평화유지군 철수 주장에 답변/얀덱스 캡처

그녀는 또 러시아 평화유지군 임무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산하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이상 적대행위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철수 이유다. 

이 또한, 러시아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다. 평화유지군 철수 후, 몰도바 정부가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 통합 군사작전을 펼 경우, 러시아계 주민들을 보호할 방법을 찾기 힘들어진다. 러시아 군병력의 몰도바 진입은 미국과 EU측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수도 있다. 평화유지군의 주둔은 급격한 몰도바의 친서방 노선을 제어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여성으로선 첫 대통령(임기 4년)에 당선된 산두 당선자는 취임 후 도돈 전 대통령의 지지 정당인 '사회주의자당'이 장악한 현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원집정부제'로 운영되는 몰도바의 권력 구조상, 의회를 장악하지 못하면 자신의 공약 실행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권력을 장악하고, 공약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친러 세력의 강한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러시아계 주민들이 주둔중인 러시아 평화유지군을 믿고 다시 무기를 들 수도 있다. '제 2의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을 우려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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