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차카 해안 해양생물 떼죽음의 대반전 - '유해한 물꽃'이 원인?
캄차카 해안 해양생물 떼죽음의 대반전 - '유해한 물꽃'이 원인?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0.12.29 0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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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아카데미 조사 결과 발표, "인간의 오염이 아닌 자연의 섭리에 따른 떼죽음"
현지서 '해로운 물꽃'으로 불리는 적조로 수심 10m이하 저생동물 거의 폐사 확인

'청정 지역'으로 유명한 러시아 캄차카(반도)가 지난 9월 지역내 유명 해변을 새까맣게 덮은 해양 생물체의 떼죽음으로 충격을 안겨줬다. 그 원인이 뭐였을까?

캄차카 악몽이 채 잊혀지기기도 전에, 러시아 남부 카스피해 연안에서는 멸종위기 종인 물범 수백 마리가 또 떼죽음을 당한 채 발견됐다. 그 원인은 또 뭘까? 

세계에서 최대 '내륙해'인 카스피해는 오래 전에 석유및 가스 매장지가 대거 발견돼 지난 10여년간 개발 봄이 본격화한 곳. 카스피해물범 수백 마리가 지난 6~10일 죽은 사체로 속속 발견된 원인을 추정하기는 어렵지 않다. 에너지 개발에 따른 오염이다.

카스피해 연안(다게스탄공화국)서 발견된 물범 사체는 305개로 늘어났다/얀덱스 캡처
죽은 카스피해물범/출처:SNS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남부 카스피해 연안에서 지난 6일부터 지금까지 총 300여 마리의 카스피해물범이 사체로 발견됐다. 카스피해물범은 몸 길이 150㎝ 전후로 물범 중 가장 작은 종에 속하며 현재는 약 7만여 마리만 남아 멸종위기 종을 지정됐다. 20세기 초와 비교하면, 개체수가 무려 100만 마리 가량 줄었다고 한다.  

러시아 당국은 카스피해물범의 사인으로 자체 감염과 외부 원인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조사에 나선 상태다. 러시아 당국의 1차 발표는 지난 12일 나왔다. "지난 6~10일 총 272마리의 물범이 카스피해 여러 지역에서 사체로 발견됐으며 일부는 임신한 상태였다"는 것. 물범 사체는 이후 더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카스피해물범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이 살고 있는 카스피해는 지난 수십 년간 석유및 가스전 개발로 인해 환경 오염이 심해졌으니 물범의 떼죽음도 인간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게다가 기후변화로 수위마저 줄어드니, 카스피해물범이 죽어나가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캄차카 반도의 해변가에 수천마리의 해양생물 사체들이 밀려 올라왔다는 지난 9월 현지 언론 보도/얀덱스 캡처 

그러나 캄차카 해안의 떼죽음은 다르다. 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청정지역이다. 캄카차 여행객 모집에 쓰이는 문구가 바로 '자연이 살아숨쉬는 땅'이다. 화산활동이 아직 진행중이라는 뜻도 있지만, 자연의 민낯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또 태평양에 접한 바닷가는 여름철 한때 세계 최고의 '서핑(파도타기) 해변'으로 꼽힌다.

그런 지역에서 각종 해양생물들이 떼죽음을 당했으니, 충격적이다. 현지 정부와 중앙정부 측이 서둘러 긴급 조사에 나선 이유다.

사건 발생 초기에는 인근 해역에서 훈련한 해군 군함이나 대형 유조선에서 유출된 오염 물질이 그 원인일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으나,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측의 조사및 분석 결과는 달랐다.

과학자들, 캄차카 해양생물 떼죽음의 원인으로 '카레니야' 조류의 확산을 지목/현지 언론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측은 지난 18일 열린 웨비나(온라인 세미나)에서 캄차카 해안의 떼죽음이 그 곳 특유의 '조류'(Карения, 일종의 적조 현상)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웨비나에는 러시아와 한국, 일본 등 관련 전문가 40명이 참석했다.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극동지부 해양생물학 연구소의 타티아나 오를로바 부소장은 이날 발표에서 "캄차카 떼죽음은 이 곳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카레니야 조류'의 독성을 피하지 못한 '저생동물'(바다 밑바닥에서 사는 생물체) 폐사로 나타난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가 속한 해양생물학 연구소는 이미 지난 10월 이같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안드레이 아드리아노프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부위원장 겸 해양생물학 연구소장은 기자회견에서 다소 뜻밖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적조 현상에 의한 폐사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설명했다. 

아드리아노프 소장은 기자회견에서 "인위적 요인과 자연적 요인이라는 두 가지 가설을 갖고 해양생물 떼죽음 사건을 조사한 결과, 화산 활동과 관련된 것으로 판단된다"며 "지진과 같은 일시적인 자연 요인이 아니라, 화산활동의 영향으로 인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캄차카 특유의 카레니야 조류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캄차카 해안의 적조 현상은 오래전 부터 '해로운 물꽃'이라고 불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캄차카 해안 바닷물 표본 채취 모습/사진출처:수사위원회

그는 "현지에서 채취한 바닷물 분석에서 확인된 독성물질로는 해양생물들에게 그만한 피해를 주기 어렵다"며 "주변의 군사기지에서 유출된 로켓연료나 원유의 유출 등으로 인한 인위적인 원인 가설은 의미가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대신, "위성 사진등을 통해 미세한 조류의 발전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9월 초에 시작된 조류(적조 현상)가 일시적으로 약화됐다가 10월 초에 '해로운 물꽃' 수준으로 발전된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지난해에도 캄차카 해안에서 유사한 적조 사진이 관찰되었지만, 비거주 지역이어서 그 피해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고도 했다.

독성 조류 현상으로 죽어나간 해양생물들이 바다 폭풍에 의해 해변으로 옮겨지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라고 그는 설명했다. "해변에서 발견된 사체들은 9월 말 태풍 '마이삭'에 의해 옮겨진 것이고, 10m 깊이의 바닷속에는 여전히 죽은 생물체들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캄차카 해안에서 발견된 사체들/출처:SNS

이같은 사실은 현지 과학자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가 수심 10∼15m 수중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는 게 아드리아노프 소장의 주장이다. "큰 물고기나 새우 등을 제외한 '저생동물' 대다수가 폐사한 상태로 발견됐다"는 것이다. 해변에서 발견된 사체들은 비록 그 수가 적지 않으나, 화산활동 영향 →적조로 이어진 '대자연의 섭리'로 인한 떼죽음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결론이다. 

잘 알다시피, 적조와 같은 독성 조류는 해양생물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유해한 현상이다. 바닷물 색깔이 바뀌고 노란색 거품은 인체의 눈과 피부 등을 자극한다. 서핑족이 '눈이 따갑다'고 불편함을 호소한 이유라고 그는 설명했다. "다행히 날씨가 차가워지면서 조류 현상및 독성 농도가 줄어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캄차카 반도(캄차카 주)의 주도인 '페트로파블로프스크-캄차트스키'에서 25㎞ 떨어진 '할락티르스키 해변'이 지난 9월 말 수많은 해양생물들의 사체로 뒤덮였다. 현지에서 올린 동영상을 보면, 해변에는 물고기와 게, 불가사리, 성게 뿐만 아니라 대형 문어와 바다사자의 사체까지 널려 있었다. 

과학자들은 캄차카 반도와 알래스카를 잇는 베링해에서 진행된 러시아 해군의 대대적인 '해양 방패 훈련' 과정에서 기름 등이 유출됐거나, 인근 아바차만을 지나는 대형 유조선 등에서 페놀과 원유물질이 새어나갔을 가능성을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조사 결과, 인간에 의한 오염 때문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가 만들어낸 또다른 자연현상으로 나타났으니, '대반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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