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책) 새로 나온 번역서 '탄생', 여행 에세이 '러시아의 시민들' 그리고..
(러시아 책) 새로 나온 번역서 '탄생', 여행 에세이 '러시아의 시민들' 그리고..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1.16 0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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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0월 모스크바 시내에는 다시 탱크가 진주했다. 구소련의 붕괴를 앞당긴 강경보수파의 쿠데타가 발생한지 2년 2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진주한 탱크의 앞과 뒤에는 늘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었다. 쿠데타 당시에는 다가오는 탱크에 맨주먹으로 맞섰고, 10월 사태에는 군통수권자의 자격으로 탱크 부대에 의사당 포격 명령을 내렸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의사당을 향해 사격 명령을 내린 1993년 10월은 러시아 역사에서, 또 국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남았다. 옐친 대통령은 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면서 신생 러시아의 국가 체제와 권력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시가전'(?)의 충격 여운이 오랫동안 남았다.

◆러시아 소설 '탄생(РОЖДЕНИЕ)'

최근 번역 발간된 러시아 소설 '탄생' РОЖДЕНИЕ (라리사 피사레바·전성희 옮김. '상상'출판, 200P, 1만5천원)은 10월 사태를 모티브로 삼았다. 역사적 사건이 소설의 근간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소설의 작가는 러시아 고리키문학대학 총장이자 소설가인 알렉세이 바를라모프. 모스크바국립대학(엠게우)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1987년 단편 '바퀴벌레'로 등단한 주목받는 글쟁이다. '바보'와 '침몰한 방주' 등 소설은 물론, 평론에도 재능을 보였다.

소설 '탄생'은 1993년 10월 사건의 충격에 의해 조산한 산모와 미숙아의 출생을 다뤘지만, 사실은 미숙아나 다름없었던 신생 러시아의 위태로운 생존 과정을 대비시킨다. 현실(미숙아)와 상징(러시아)을 얼마나 잘 버물려 독자들을 소설속으로 빠뜨릴 수 있느냐는 바로 작가의 능력과 맞물려 있다.

바를라모프의 작가적 능력은 "이 소설에는 푸시킨, 체호프, 부닌의 향기가 흘러넘친다"는 석영중 고려대 교수의 추천사에서 엿볼 수 있다. 

소설은 서른다섯 살에 첫 임신을 한 주인공이 '10월 사건'을 겪을 충격과 불안감으로 7개월만에 미숙아를 출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미숙아는 엄마의 조산 후유증과 겹쳐 생명의 끈이 늘 위협을 받는 상태에서 인큐베이터속 생활을 이어간다.

책은 이 아이가 온전히 세상에 나오기까지 주변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절망, 사랑과 희망을 손에 잡힐 듯이 그렸다. 언제 꺼질지 모를 아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부모의 애절한 모습에서 진정한 사랑을 곱씹게 된다.

아기는 숱한 고비 속에서도 질긴 생명력은 꺼지지 않고 살아남아 또 한번의 10달을 지내고 건강하게 퇴원한다. 그 사이 러시아 정국도 험난한 길 위에서 넘어지고 또 쓰러졌지만, 미래와 희망을 향해 한발자국씩 나아간다. 

바를라모프는 이 소설로 ‘안티부커상’을 시작으로 2006년 ‘솔제니친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차례 문학상 시상대에 올랐다. 

◆러시아 여행 에세이 '러시아의 시민들'
소설가 백민석이 광활한 러시아를 3개월한 홀로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감상들과 사진들로 꾸민 여행 에세이(산문)집 '러시아의 시민들'(백민석 글·사진, 열린책 발간, 301P, 14,800원)이 나왔다. 3개월이라는 긴 시간 여행에서 관찰한 러시아 사람들을 80여 편의 짧은 단상속에 120여 장의 사진으로 녹여 기록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러시아 시민들'에 대해 할리우드 영화나 냉전속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었다는 작가는, "러시아는 직접 가보지 않으면, 영영 그 실체를 알지 못하고 지나가 버릴 수도 있는 나라"라고 적었다. 하지만 고작 3개월로 실체를 알 수 있는 러시아인가?

그래서 작가는 여행을 할 것인가? 관광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나는 지금 여행 에세이를 쓰고 있어요"라고 고백한다. 여행 에세이의 기원을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인 '이탈리아 여행'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열차와 버스와 도보로 러시아를 짧지 않게 여행한 뒤 쓴 책이지만, 기존의 러시아 여행기와는 좀 결이 다르다. 배낭 여행객을 위한 '가이드 북'도 아니다. △혼자하는 여행은 결국 마음과 함께 하게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스보이와 브녜, 그리고 버스킹 △시베리아횡단열차 △어째서 도스토옙스키의 동상은 늘 구부정한지 △모스크바 △횡단과 실종 등 7개 소제목만 봐도 그렇다.

작가는 지리적으로 일본의 도쿄나 중국의 베이징보다 가까운 블라디보스토크가 우리에게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과거의 남루한 편견들'이 하나식 벗겨져 나가는 경험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그 곳에도 어딜 가나 잘 웃고, 외국인에게 친절하고, 주변을 잘 꾸미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했다.

책속의 사진들/캡처

사진도 유명 관광지의 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도시의 풍경 속에 잘 스며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살벌한 KGB나 혁명, 레닌과 같은 '과거의 기억'들은 이 책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이 것이야말로 러시아의 현실이요 실체라고 말하려는 것 같다.

아직도 러시아에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을 지닌 사람들에게 '러시아에 가고 싶다'는 감흥을 이 책이 일으켜 주기를 기대한다.

◆구소련의 핵무기 폐기 가이드북 '용기와 인내로' 
구 소련 붕괴이후 핵무기의 불법 유출을 막기 위해 미국이 추진한 '협력적 위협감소(CTR)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을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에 남은 소련의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성공적으로 폐기했다. 구 소련의 WMD 폐기 과정을 정리한 역사서 '용기와 인내로'(With Courage and Persistence)가 번역 발간됐다.

국방부 군비통제검증단의 주도로 발간된 이 책은 러시아 등 4개국이 CTR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20여 년 동안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방지하고 폐기한 과정을 담은 단행본이다. 이 책은 CTR 프로그램을 기획 추진해온 미 국방위협감소국(DTRA)이 전하는 프로그램의 태동 배경과 적용 과정, 업무 추진 중 발생한 제반 문제와 그 해결 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이 책은 소련의 급속한 붕괴 과정에서 미국의 선제적인 외교정책이 어떻게 WMD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지켜나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추진과정에서 서로 다른 체제와 문화, 주민들의 반대를 극복하는 과정은 물론, WMD 폐기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도 상세히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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