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나발니 폭로 '푸틴 궁전'이 러시아서 관심을 끈 진짜 이유
(조명) 나발니 폭로 '푸틴 궁전'이 러시아서 관심을 끈 진짜 이유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1.27 0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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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들, 호화 시설물을 바탕으로 숱한 '밈' 콘텐츠 쏟아내며 확산 또 확산
생소한 러시아어 용어들, "영어 단어를 엉뚱하게 번역" "아니다" 갑론을박도

러시아의 대표적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가 직접 나레이션을 맡은 '푸틴 궁전' 동영상이 던진 파문은 엄청나다. 유튜브에 올라온 그 영상은 이미 조회수가 9천만 회를 향해 달려가고, 푸틴 대통령이 직접 해명에 나설 만큼 파급력이 컸다.

러시아 네티즌들은 또 '푸틴 궁전'에 설치된 신기한(?) 시설물 하나하나에 빗댄 밈(Meme, 재미있게 재가공한 디지털 콘텐츠)을 만들어 트위터 등 SNS에 올렸고, 수백 수천회 리트윗됐다. 신종 코로나(COVID 19)로 답답한 일상에 지친 러시아인들에게는 아주 재미있는 '놀이감' 하나가 생긴 듯하다. 영상 제작 전문가마저 영상물 자체를 "잘 만든 것"이라고 평가하니, 현지에서 관심이 폭발할 수밖에 없다.

비탈리 만스키 감독, '푸틴 궁전'제작자들이 '키노 사유즈' 클럽에 초청될 수도/얀덱스 캡처
트위터에 올라온 푸틴 궁전 '밈' 이미지들. 아쿠아디스코텍과 비디오 댄스 춤/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다큐멘터리의 거장 비탈리 만스키 감독은 24일 '푸틴 궁전'을 만든 영상 제작자들을 칭찬하고 나섰다. "비록 영화라는 목표를 설정하지는 않았지만, 영화 감독의 관점에서 볼 때 시청자들에게 매우 이해하기 쉽게 제작했다"는 것이다.

만스크 감독은 "이 영상물이 관객, 즉 대통령과 국민 대표를 뽑는 유권자들의 관심을 끄는 게 목적이라면, 그 목적을 100% 달성한 것으로 믿는다"면서 "(러시아 영화제작자들의 모임인) '키노 사유즈'(КиноСоюз)에도 초대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만스키 감독은 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의 다큐, 북한 다큐 '태양 아래' 등으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또다른 분석에 의하면, '푸틴 궁전' 영상이 인기를 끈 것은 흑해 연안의 호화 리조트(궁전)와 푸틴 대통령간의 연결 고리를 찾아내 폭로하고, 리조트내 호화 시설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3D로 시각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들이 처음 접하는 호화 시설에 대한 시각화는 수많은 디지털 '밈'을 만드는 근거가 됐고, 이름도 처음 듣는 시설물들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드리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이 이 영상물을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품질좋은 체리'라고 부른 이유다. 

나발니 측이 영상에서 강조한 시설은 △(스트립 바에서나 볼 수 있는) 기둥이 있는 물 담배 바 △룰렛 테이블과 슬롯머신 시설을 갖춘 카지노 △수영장, 사우나, 스파, 호화 욕조, 마사지실, 아쿠아디스코텍 △홈 시어터(극장)과 독서실 △비디오 댄스 플로어 △(지하의) 아이스링크 △원형극장 △진흙 창고 △(경치 좋은) 카페로 연결되는 80m 다리 등이다.

'푸틴 궁전'의 시설들. 위로부터 (스트립 바에서나 볼 수 있는) 기둥이 있는 물 담배 바, (룰렛 테이블과 슬롯머신 시설을 갖춘) 카지노, 비디오 댄스 플로어, 헬기착륙장과 아이스링크(지하), 수영장/출처:푸틴 궁전 영상 

이 모든 것은 2000년대 초에 러시아에서 유행한 생활 시뮬레이션 비디오 게임인 '심즈'(Sims)를 보는 듯하다는 게 네티즌들의 평가다. 비디오 게임에서 상상 속의 집을 짓고 내부를 꾸미듯이 (푸틴 대통령은) 그렇게 궁전을 지었다고 비꼬기도 했다. 

나발니도 영상 나레이션에서 "시설물은 물론, 가구의 배치, 심지어 소켓 위치까지 철저하게 설계되고, 3D로 형상화한 뒤 (오케이를 받고) 건립된 궁전"이라며 도면과 함께 시설물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또 공개된 사진은 100% 원본이라며 '팩트'를 강조하기도 했다. 

비디오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얀덱스 캡처

이런 분위기에서 '젤렌쥐크의 리조트'(푸틴 궁전)은 이미 10년 전부터 알려진 곳"이라는 크렘린의 해명이 먹혀들어갈 여지는 적어 보인다. 오히려 재건축 과정에서 사용된 호화로운 시설들과 인테리어 덕분에 푸틴 대통령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사치 성향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비판적 SNS글과 밈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물담배 바와 카지노, 아쿠아디스코텍, 진흙 창고 등등. 

이 영상물이 폭발적인 관심을 끈 만큼, 러시아 당국도 발빠르게 대처에 나서는 모양새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해명에 나선 것도 이례적이다.

푸틴 대통령,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겔렌쥐크의 궁전 폭로영상에 대해 해명/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5일 화상으로 열린 대학생들과의 대화에서 "'푸틴 궁전' 영상의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지루한 2시간짜리 영상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리조트가) 나나 가까운 친척의 것이 아니다. 난 그런 사업을 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또 "이 자료는 이미 10년 전부터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라며 "필요할 때, 짜깁기해서 사람들을 세뇌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영상에 나오는 수영 사진은 지난 2016년 예니세이 강 사진을 편집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날(26일)에는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이 푸틴 대통령의 해명을 보충 설명하기 위해 나섰다. 이 영상 해명을 위해 그가 나선 게 무려 5번째. 최근 몇년 동안 그만한 국내 이슈가 있었던가 싶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26일 “나발니에 대해 무시 정책을 써온 푸틴 측이 침묵을 깨고 반응을 내놓은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했다. “푸틴 측이 나발니에 얼마나 부글부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도 했다. 

크렘린 측의 해명은 한결같다. 그런 시설물이 있지만, 푸틴 대통령의 소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26일 "'푸틴 궁전'을 폭로한 측(나발니)도 푸틴 대통령이나 그 측근이 법률적 소유주라고 말하지 않았다"면서 "누군가의 명의로 등록돼 있는 그 시설물의 실제 소유자가 푸틴 대통령이라는 주장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귀국 공항에서 체포된 알렉세이 나발니의 '푸틴 대통령을 향한 반격'이라는 정치공학적 구도만으로는 폭발적인 조회수를 설명하기에는 2% 모자란다. 현지 매체와 SNS에서 확산되는 '밈' 현상과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을 불러 모은 뭔가가 부족한 2%를 채웠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아쿠아디스코텍 '밈' 오른쪽에 올라 있는 새로운 글 목록. '나발니는 누구인가?' '나발니는 왜 체포됐나?'등의 제목이 보인다.

예컨데 이런 것이다. '밈' 현상을 다루는 기사에 붙어 있는 관련 기사 꼭지들, "푸틴 브러시"는 얼마냐?" (Сколько стоит «ёршик Путина»?), "아쿠아디스코텍은 도대체 뭔가?" (Что такое аквадискотека?), "나발니는 왜 구금됐고, 재판을 받느냐?" (За что задержали и будут судить Навального?), "나발니는 누군가?" (Кто такой Навальный?) 등이 대표적이다.  

네티즌들의 관심을 크게 끌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킨 시설물은 '아쿠아디스코텍' (аквадискотекa)과 진흙 창고 (склад грязи)다. 페스코프 대변인도 аквадискотекa 와 склад грязи는 영어 'aquadiskoteka'와 'mud room'을 단어 그 자체로 번역하다 보니, 잘못된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실이라면, "왜 영어에서 번역했지?"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든다.

'아쿠아디스코텍'을 러시아 포탈사이트 얀덱스(yandex.ru)에서 검색하면 '푸틴 궁전'의 '밈' 영상물이 가장 먼저 뜨고, 텍스트 역시 관련 글이 맨 위에 올라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검색했다는 뜻이다.

'푸틴 궁전'의 아쿠아디스코텍/ 캡처

그 중 한 기사는 "많은 사람들은 '아쿠아디스코테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것"이라며 "'거품 파티'나 '풀장 댄스'를 위한 장소가 아닐까 착각하는데, 실제로는 디스코(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여름철 뜨거운 열기를 식히기 위해 안개처럼 물을 뿜어내는 장치라고 한다. 주변 온도를 10도 이상 떨어뜨린다고 하니, 에어컨이 따로 필요없을 것 같다. 주로 남유럽에서 중요한 축하 행사장에 임시로 설치하거나 고급 휴양소와 리조트 등에 설치돼 있다고 한다.

'안개 발생 장치' 주변에 음악으로 움직이는 '음악 분수'를 설치하다 보니, 디스코텍이라고 불렸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진흙 창고(склад грязи) 역시 숱한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SNS상에는 반박에 재반박 글과 이미지까지 올라왔다. склад грязи는 영어로 '머드 룸' 혹은 '머드 창고'로 번역된다. 러시아에선 이런 용어가 거의 쓰이지 않으니, 영어 번역체 단어라는 합리적인 의혹이 제기될 만하다. '머드 룸'이라면 우선 '머드(진흙) 마사지'를 연상시킨다.

'머드 룸'의 밈. 여자는 "또 그 여자들을 생각하겠지", 남자는 "나의 '머드(마사지)룸이.."라고 한 침대위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캡처
푸틴 궁전에서 '그 방(머드 룸)을 들렀을 때'의 모습은/캡처
머드 룸에서는 남자가 "가자. 쾌락의 방을 보여줄게"라고 유혹(?)/캡처

하지만, '머드 룸'은 러시아에서 실내로 들어오는 현관(прихожая), 흙먼저를 터는 곳을 뜻한다. 나발니 측이 서방(이탈리아) 측의 건축 설계도상에 나온 단어를 구글 번역하듯 번역해 엉뚱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영어로 된 텍스트조차도 제대로 번역하지 못한 팀의 엉뚱한(?) 영상물"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머드 룸은?/얀덱스 캡처 

비판 영상은 또 있다. 수영장에 있는 푸틴 대통령의 사진이다. 크렘린 측은 이 사진이 지난 2006년 예니세이 강에서 수영하는 푸틴 대통령을 찍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상남자다운 삶을 추구하는 푸틴 대통령의 궁전에 "왜 물담배가 필요한 걸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푸틴 대통령은 전임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 달리 술과 담배를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푸틴 궁전'의 영상물은 어디까지 진실일까?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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