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반정부 시위의 핵 '율리야 나발나야' - 어쩌다 혁명가의 아내가 됐나?
31일 반정부 시위의 핵 '율리야 나발나야' - 어쩌다 혁명가의 아내가 됐나?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1.30 0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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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야 나발나야 (Навальная, Юлия Борисовна). 푸틴 대통령의 정적이자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동갑내기(45) 부인이다.

미국 CNN은 그녀를 '러시아의 미셸 오바마'라고 소개했다지만, 러시아에선 '야권의 퍼스트레이디', '야권과 반부패재단(나발니 설립)의 잠재적 지도자 감', 나아가 '대통령과 국가두마(하원) 의원 예상 후보' 등으로 언론에 소개된다고 위키피디아(러시아어판)은 적고 있다.

독극물 중독 증상 전(위)와 회복 후의 나발니 부부/인스타그램 캡처 

율리야의 영향력이 실제로 그 정도일까?
우선 반정부 성향의 러시아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는 지난해 말 율리야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독극물 중독 현상으로 사경을 헤메다 회복한 남편 '나발니'마저 제쳤다. 그녀가 남편을 살리는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나발니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시베리아 옴스크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있을 때, 그녀는 푸틴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남편의 독일 후송 결정을 이끌어 냈다. 푸틴 대통령도 연말 기자회견에서 그녀의 호소를 들어줬다고 확인한 바 있다.

그렇게 성사시킨 남편의 베를린행 응급 비행기에 함께 올라 남편이 병원에서 의식을 차리던 순간을 기다렸고,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귀국행 비행기 옆자리에 앉아 남편을 지킨 그녀였다.

나발니가 베를린 샤리테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한 직후 가족들과 함께. 왼쪽이 딸 다리야, 아들, 오른쪽이 율리야/인스타그램 캡처
나발니 연행 순간. 남편과 작별 인사(위)를 나눈 뒤 고개를 돌린 율리야/출처:현지 매체 rbc 영상 캡처. 영상 출처는 트위터. 

귀국한 모스크바 공항에서 남편이 체포되는 순간, 초조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던 율리야는 그러나 지지들 앞에서 “알렉세이도, 나도 두렵지 않다. 여러분도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라"고 외쳤고, 지지자들은 “율리아!”를 부르며 호응했다. 그리고 지난 23일 나발니 석방 요구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서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나중에 풀려났지만, 시위 현장에는 끝내 가지 못했다. 

나발니의 구속 상태가 길어지면, 율리야는 남편을 대신하는 '민주화 투사'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지난해 벨라루스 대선에 남편 대신 후보로 나선 뒤 '불복 시위'를 촉발한 '스베틀라나 티호노프스카야'에 비교하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그녀의 장점은 뛰어난 미모에 흠을 찾기 힘든 삶, 연설 능력. '혁명가의 아내 이미지' 등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율리야가 (아버지를 물려받은) 인디라 간디(인도), 베나지르 부토(파키스탄), (남편의 뒤를 이은) 코라손 아키노(필리핀)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녀가 대선에 출마할 경우, 푸틴 대통령을 제외하면 '당선 0순위'이고, 올해 총선에 '야블로크 당'으로 출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나발니 가족/현지 언론 rbc 영상 캡처
자녀들과 함께 한 율리야/인스타그램 캡처

율리야는 지나온 삶을 되짚어 보면, 가정에 헌신적인 현모양처형이다. 제정러시아 시절(1825년) '12월 혁명'을 주도했다가 시베리아로 유형을 간 젊은 귀족 청년 '데카브리스트' 들을 유형지까지 따라간 '데카브리스트의 아내들'을 닮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시베리아의 보석'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도시, 이르쿠츠크를 만든 이들이 바로 '데카브리스트 가족'들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 대해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다섯 살때 부모가 이혼했고, 18세에 아버지마저 잃었다는 정도. 그녀의 친부가 지금까지 알려진 보리스 아브로시모프 (Борис Александрович Абросимов)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보도가 나와 나발니 측이 발끈한 적도 있다. 

나발니 부부의 결혼식과 그후 /인스타그램 캡처

플레하노프 경제대학을 졸업한 뒤 해외에서 인턴을 거친 뒤 모스크바의 한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남편 나발니를 1999년 터키 여행 중에 만나 1년 열애 끝애 결혼했다. 2001년 딸 다리아가 태어나면서 그녀는 모든 사회생활을 그만두고 가정으로 들어왔다. 

한때 남편과 함께 그리고리 야블린스키가 이끄는 자유주의 정당 '야블로코'에 가입했으나 2007년 나발니가 러시아의 '조직적 부패'를 폭로하는 블로거로 이름을 알리면서 탈당한 게 독자적인 정치 활동의 거의 전부다. 그럼에도 율리야가 총선에 출마할 경우, '야블로코' 공천 후보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시위에 참석해 지지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율리야/인스타그램 캡처

나발니가 야권의 유력한 지도자로 부상하면서 그녀의 무대도 가정에서 사회로 바뀌었다. 남편과 함께 집회에 적극 참여하고, 남편에 대한 언론 보도를 확인하고 대응하는 일까지 도맡았다. 그리고 이제는 남편을 대신할 만큼 독자적인 영향력을 키웠다. 

러시아 현지에서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이 없는 건 아니다. 딸 다리야가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 유학 중인 사실을 포함해 프랑스의 집과 미국 아파트 등 해외 재산에 대한 소문이 대표적이다. 이에 나발니 부부는 2019년 세금 보고서를 공개하기도 했지만, 의혹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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