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러시아 - 31일의 나발니 석방 촉구 시위에 또 관심 집중
폭풍전야 러시아 - 31일의 나발니 석방 촉구 시위에 또 관심 집중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1.30 0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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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의 대규모 시위에 이어 두번째 시위 - 러시아 당국 신속한 '채찍과 당근' 전략
2011~2012년 대규모 시위 속편? "불만 폭발했으나 푸틴 체제 흔들지는 못할 듯"

오는 31일 러시아에서는 구속중인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석방을 위한 두번째 시위가 열린다. 지난 23일 첫번째 시위에 예상외로 많은 인파가 몰린 탓에 전세계 언론의 눈이 러시아로 쏠려 있다. 이미 지난 2011년 말~2012년 초 푸틴 대통령의 크렘린 복귀(총리에서 대통령으로)를 앞두고 터져나온 총선 부정선거 규탄 시위 이후 '최대 규모'라는 분석도 나온다.

나발니 지지세력, 31일 시위 공표/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 23일엔 러시아 전국의 110여 개 도시에서 11만여명이 나발니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했고, 이 중 3천500명 이상이 체포됐다. 모스크바에서만 2만명 이상 거리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푸틴 대통령에게는 10년 만에 또 한번 정치적 위기가 찾아온 셈이다.

섣부른 속단을 허용한다면, 10년전 대규모 시위의 '속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시 시위 현장을 취재했던 미 뉴욕타임스(NYT) 기자가 1년 후에 모스크바를 찾았다가 1년 전의 그 뜨거웠던 열기가 완전히 식어버린 모습에 실망한 르포 기사를 쓰기도 했다. 러시아 민중 시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일화다. 

그만큼 러시아 당국이 대규모 시위에는 기민하게 대처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번에도 러시아 당국은 바삐 움직이고 있다.

우선 시위 주도자들과 시위 현장과의 격리다. 경찰은 시위를 주도할 반부패재단과 나발니의 친동생 올레그 나발니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연행하는 등 지도부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강화했다. 주도급 인사들에게 신종 코로나(COVID 19) 방역수칙 위반 등의 이유 2~3일씩 구류형에 처했다. 

모스크바 주 법원은 지난 28일 나발니의 구속을 취하해 달라는 변호인단의 요청(항소)을 거부했다. 나발니가 직접 화상 심문에 나서 구속의 부당함을 항의했지만, 하급 법원격인 모스크바 지역 법원이 내린 '구속 30일' 선고를 유지했다. 그는 내달 2일 모스크바 지역 법원에서 열릴 집행유예 형의 취소 소송에서 기각 결정(나발니의 승리)을 받아내지 못하는 한, 2월 15일까지 30일간 구속에 이어 그동안 집행이 유예된 3년 6개월 형을 교도소에서 살아야 한다. 

법원, 나발니 구속 철회 요청 기각. 사진은 직접 화상으로 심문에 응하는 나발니/얀덱스 캡처

나발니는 화상 심문에서 '자신에 대한 사법적 절차가 푸틴 정권의 야권 겁주기 시도'라고 비난하면서 "수천만 명의 국민을 겁주는 데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러시아 당국은 또 시위 주도부와 일반 시민들간의 소통 통로가 되는 소셜 미디어(SNS)에 대한 통제도 강화했다. SNS는 투옥 중인 나발니와 그의 조직이 활용할 수 있는 '최대 무기'로 꼽힌다.

러시아 통신·정보기술·매스컴 감독청(로스콤나드조르)은 28일 미성년자들을 시위에 참여하도록 촉구하는 부적절한 홍보물을 제대로 차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틱톡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브콘탁테(러시아 최대 SNS) 등에 과태료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감독청은 '23일의 시위'에 앞서 SNS 기업들에게 불법 대중 행사에 미성년자들의 참여를 조장하는 정보를 유포하지 말라고 요구했으나, SNS 상에 170건에 이르는 시위 홍보물을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과태료는 최대 400만 루블(6천만원)에 이를 전망이다. 

모스크바 경찰, 집회에 참가한 자녀들의 부모 173명 소환 조사/얀덱스 캡처
빼앗은 진압 경찰의 헬멧을 발로 차고 다니는 젊은 시위 참가자들/현지 매체 rbc 동영상 캡처

경찰 당국은 또 시위 현장에서 연행된 10대 청소년들의 부모 170여명을 소환해 '자녀 보호 책임'의 위반 사실을 통보했다. 부모가 자녀들이 불법 시위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라는 주문이다. 

특히 모스크바 경찰 당국은 미리 예고했던 대로, 시위에서 체포한 1천여명에 대해 경중을 가려 상당수를 훈방조치했으나 일부를 형사처분하고, 200여명을 즉심(즉결심판)에 회부해 벌금형을 받도록 했다.

러시아 당국이 시위에 대해 강경조치만 내놓은 것은 아니다. 신종 코로나(COVID 19)에 의한 각종 방역 제한조치와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폭발 지경'에 이른 국민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다. 

모스크바 시는 신종 코로나 확산세가 다소 수그러든 상황을 십분 이용해 방역 제한 조치를 잇따라 해제했다. 22일부터 문을 닫았던 박물관과 미술관, 도서관 등 문화시설의 운영을 재개하고, 극장과 영화관, 콘서트 홀의 관객 수도 정원의 25%에서 50%로 늘리도록 했다. 뒤이어 나이트클럽과 가라오케 등 유흥시설과 대중식당과 카페 등의 영업시간 제한 (밤 11시까지) 조치를 풀었다. 

23일의 대규모 시위를 촉발한 '방아쇠'나 다름없는 나발니 폭로 '푸틴 궁전'에 대한 해명에도 적극적이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대학생들과 온라인 미팅'을 갖고 자신과 무관함을 주장한 것은 물론이고, '푸틴 궁전'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물도 SNS 메신저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내보냈다. 

텔레그램 채널 '마쉬', 소위 '푸틴 궁전'의 (현장) 비디오(아래 동영상) 공개/얀덱스 캡처

영상을 보면 '푸틴 궁전'은 아직 보수 중이다. 건물 안팎은 공사용 비계와 자재 등으로 혼잡하다. 보수 기간은 앞으로 5~6년은 더 필요할 것이라고 현장 책임자는 말했다. 아직 완공되지도 않는 리조트가 어떻게 나발니 동영상이 주장한 '100% 궁전 현장 그대로의 모습'이냐고 따져 묻는 듯하다. 나발니 측은 즉각 이 영상 제작의 배후에는 크렘린이 있다고 날을 세웠다.

시위 중에 부상한 선량한 피해자를 병원으로 찾아가 위로하는 진압 경찰 책임자의 모습도 이전 시위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나친 폭력 진압이 일반 시민들의 감정을 폭발시키는 역풍을 미리 막자는 계산으로 보인다. 시위 현장에는 수많은 스마트폰 카메라가 돌고 있고, 그 영상(사진)들이 SNS를 통해 전역으로 퍼지면서 시위 참여자를 오히려 늘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시위현장에서 부상한 주부에게 꽃다발을 전하고 사과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찰 책임자/SNS 캡처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위 모습/현지 매체 rbc 영상 캡처

그같은 우려는 이웃 벨라루스의 대선불복 시위에서 현실로 나타난 바 있다. 벨라루스 경찰의 초기 대응이 너무 폭력적이어서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평범한 주부들까지 거리로 나서게 했다. 

시위가 가장 격렬했다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진압 경찰(오몬 요원들)들이 시위대를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는 장면들이 쉽게 눈에 띄웠다. 그중의 한 장면은 SNS를 통해 널리 퍼졌다. 한 젊은 참가자를 연행하는 경찰들에게 54세 주부가 다가가 "왜 잡아가느냐?"고 묻자, 한 경찰관이 대뜸 "당신은 뭐냐?"며 그녀의 배를 찼다. 그녀는 바닥에 넘어졌고, 뇌진탕 증세를 보여 병원에 후송됐다. 

진압 현장을 지휘한 상트페테르부르크 내무부 소속 책임자 세르게이 무지카 대령이 이튿날 병원으로 찾아가 꽃다발을 전하며 사과했다. 10년 전 시위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무지카 대령은 그녀에게 전체 진압 경찰을 대신해 사과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사과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경찰 당국, 배를 걷어차인 여성에게 사과/얀덱스 캡처

나발니의 체포와 시위대 강경 진압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항의에는 여전히 당당한 러시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 대선 결과를 최종 확인하는 의사당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한 미국이 이전처럼 러시아를 향해 큰소리칠 입장은 솔직히 안되는 것 같다. 미국이 23일의 대규모 시위를 지지하고 나서자, 러시아 당국이 즉각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한 이유다. 

바이든 미 대통령도 푸틴 대통령과의 첫 전화통화에서 나발니 체포 문제를 거론했지만, 그대로 묻히는 분위기다. 

보수적인 성향의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나발니가 구금된 뒤 그동안 쌓여온 국민의 불만이 '분노'로 바뀌고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푸틴 대통령이 당장 정치적 위기에 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푸틴 대통령이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신뢰도, 지지도가 과거에 비해 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국가지도자이기 때문이다. 

브찌옴 여론조사, 푸틴 신뢰도 65.1%. 그러나 또다른 여론조사(FOM)에서는 53%로 떨어졌다/얀덱스 캡처 

다만 “러시아 사회의 분위기가 10년 전에 비해 바뀌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봐야 할 듯하다. 시위를 대하는 러시아 당국의 시각과 태도가 예전과 달라진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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