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니 구속뒤 '반 푸틴' 세력 탄압 다음 목표는? '오픈 러시아'다
나발니 구속뒤 '반 푸틴' 세력 탄압 다음 목표는? '오픈 러시아'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3.14 0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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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석유왕 '호도르코프스키'와 직접 연결 의심, 실내 집회 참여자도 연행
'푸틴 비리와 사생활' 폭로의 탐사매체 뒤에 "그가 있다", 크렘린 측 강력히 암시

'반푸틴'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석방을 위한 가두 시위가 중단된 뒤 등장한 포럼 형식의 실내 야권 모임도 러시아 당국의 철퇴를 맞았다. 특히 문제의 포럼을 조직한 주체가 당국으로부터 '불온한 단체'(바람직하지 않은 단체)로 지정된 '오픈 러시아'로 알려져 크렘린이 또다른 '반푸틴' 인사이자 석유 '올리가르히'(재벌)였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전 유코스 회장을 겨냥한 것으로 관측된다. 궁극적으로는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호도르코프스키의 직간접 지원을 받을 '무소속 독립 후보'의 세 확산을 막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에서 체포된 야권인사들에게 '불온 활동' 혐의 적용/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모스크바 경찰은 13일 신종 코로나(COVID 19) 방역 수칙을 어기고 이즈마일로프 호텔에서 포럼 '통합 민주당원'을 개최하고, 여기에 참석한 인사 200여 명을 연행했다. 체포된 참석자 중에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의원들과 예카테린부르크 전 시장, 반정부 성향의 기자 등이 다수 포함됐다. 이들은 방역 수칙과 '불온 단체'의 활동을 금지한 행정명령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관심을 끄는 것은 행사 주체가 '오픈 러시아'라는 사실. '오픈 러시아'의 뒤에는 호도르코프스키 전 회장이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 그는 푸틴 대통령에 의해 전격 체포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옐친 전 대통령이 추진한 국유재산 민영화 과정에서 장악한 석유 기업 '유코스'를 중심으로 제 1세대 올리가르히의 상징적 존재였다.

호도르코프스키 전 유코스 회장/출처:SNS

그러나 그는 돈 줄만 믿고 푸틴 대통령에 맞서다 부정부패 혐의로 체포됐고, 10여년 수감생활 중 2013년 12월 사면돼 해외로 도피했다. 이후 호도르코프스키는 다수의 탐사보도 전문 언론팀을 구성해 푸틴 집권세력의 국내외 비리와 검은 활동 등을 추적, 폭로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에서도 NGO '오픈 러시아'를 만들어 '반정부 활동'을 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당국은 2017년 '오픈 러시아'를 '불온 단체'로 지목, 활동을 집중 감시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존재감이 크게 떨어진 공산당이나 개혁 성향의 야당 세력보다는 '민주화를 원하는 시민사회'를 규합한 시민단체가 '반 푸틴' 캠페인에 앞장서는 형국이다. 파워 블로그 출신의 나발니가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며 '반 푸틴' 운동의 중심에 섰고, 해외로 도피한 호도르코프스키 전 회장이 반정부 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며 세 확장을 꾀해왔다. 국내에 나발니가 있다면, 해외에서는 호도르코프스키가 움직이는 식이다. 

독일서 귀국한 나발니가 공항에서 긴급체포되는 모습/SNS 동영상 캡처

나발니를 과거의 '집행유예' 판결을 징역형으로 바꿔 손발을 묶은 러시아 당국이 이제 호도르코프스키 연관 세력으로 공격 목표를 바꿨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우선 '푸틴의 요리사'로 불리는 최측근 '올리가르히' 예브게니 프리고진 콩코드 회장이 최근 호도르코프스키를 국가 배신자로 규정하고, 그의 목에 5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자신을 향해 건 20만 달러 현상금에 대해 '나 여기 있으니 잡아가고 현상금을 달라"고 조롱하더니, 이젠 유럽으로 도망간 호도르코프스키를 같이 잡아들이자고 촉구한 것.

기업인 프리고진, 호도르코프스키 체포에 50만달러 현상금 /얀덱스 캡처

나발니의 구속 집행과 '반푸틴' 시위가 중단된 이후 그가 대국민 여론전(?)에 나섰다는 건, 집권 세력의 타깃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점을 짐작케 한다. 특히 호도르코프스키가 1990년대 권력을 매수해 국민의 돈을 훔친 뒤 지금 런던에 숨어 있으니 진짜 '나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애국심에 호소하는 선전전이다.

호도르코프스키의 국가 재산 약탈을 막으려던 당시 '네프티유간스크' 시장 등을 살인 교사한 혐의도 그에게 있다고 했다. 양심적인 러시아 국민이라면 이런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데 동참해야 한다는 호소전이기도 하다. 

프리고진 회장은 푸틴 대통령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이다. 크렘린 '이너 서클'에 속하면서 서방에 의해 제재 리스트에 단골로 오르는 인사다. 미 FBI는 그가 온라인 여론조작 등을 통해 미국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25만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푸틴 대통령과 프리고진/출처:크렘린.ru

호도르코프스키가 크렘린에 찍혀 있다는 사실은 벌써 여러번 확인됐다. 조회수 1억회를 넘긴 나발니 연출 유튜브 동영상 '푸틴 궁전'이 공개되기 전, 러시아 안팎의 탐사보도 매체들이 '푸틴 대통령의 비리와 사생활'을 여러차례 폭로했는데, 그때마다 드리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고 있다'식의 코멘트를 서슴치 않았다. 그가 호도로코프스키 전 회장을 지목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지에선 누구나 다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귀국하지 않는 이상, 러시아 당국도 어찌 해볼 수 없는 상황. 그의 지원을 받는 NGO단체가 탄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불온 단체'로 규정하고 활동을 면밀히 감시하다가 걸 수 있는 명분이 생기면, 개입하는 방식이다. 신종 코로나 방역이라는 좋은 명분이 있으니, '오픈 러시아'도 대책없이 당했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나쁜 이미지'로 여론을 만든 뒤 덮치는 전략은 아직도 독재국가에선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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