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 이주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다룬, 저릿한 영화 '아이카'
키르기스 이주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다룬, 저릿한 영화 '아이카'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3.25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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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기 위해 모스크바로 건너온 키르기스 20대 여성 '아이카'
원치않는 출산이후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사투를 '다큐 형식으로'
71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여주인공은 '기티스 예술대' 출신

러시아로 취업 이주한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출신 여성의 고난한 삶은 다룬 영화 '아이카'(Айка)가 25일 국내에 개봉했다. '아이카'는 영화에서 여주인공의 이름이지만, 원래는 키르기스어로 '(사랑스런 나의) 아가'라는 뜻이라고 한다. "며늘 아가야!"라고 부를 때도 쓰이는 그 '아가'다. 서로 비슷해 보인다. 

영화 '아이카' 포스터

영화는 러시아에서 제작, 2019년 2월 개봉됐지만, 여주인공 '아이카'로 열연을 펼친 사말 예슬랴모바(Самал Еслямова)는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출신. 영화에서 키르기스 출신의 20대 미혼모 여성으로 분했으니, 러시아와 카자흐, 키르기스가 영화속에 버무려져 있다. 

현지 온라인 플랫폼으로 원작 '아이카'를 보면, 여주인공이 키르기스어로 대화할 때는 러시아어 더빙이 뜬다.

'아이카'는 돈을 벌기 위해 러시아 모스크바로 건너온 온 키르기스 출신 20대 여성. 아기를 막 출산한 몸으로 창문을 통해 병원을 황급히 도망치는 도입 장면부터 영화가 주는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창문을 열고 탈출하는 여주인공/러시아 온라인 예고편 영상 캡처
눈 내리는 모스크바 배경의 영화 '아이카'

사진출처: 러시아 예고편 캡처

병원에 아기마저 버려두고 어디론가 급히 가는 그녀의 뒤를 쫓아가니, 닭 가공 공장이다. 닭털을 벗기는 손놀림이 제법 익숙하지만, 성치 않은 몸에 닫힌 공간에서 작업하다 보니, 일손이 중간중간 멈출 수 밖에 없다. 그것도 업주가 도망가는 바람에 2주치 월급마저 떼인다. 울리는 전화기에서는 (재봉 사업을 위해 빌린) 빚의 독촉이 끊이지 않는다.

어둡고 무거운 삶을 조명하는 이 영화는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불법 이주 노동자의 24시간을 다큐멘터리를 찍듯 보여준다. 세르게이 드보르체보이(Сергей Дворцевой) 감독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어온 감독이라는 점을 알면 쉽게 이해가 되기도 한다.

영화 '튤판'

그는 2008년 화제작 '툴판'(Тюльпан, 튤립)으로 제61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분에서 대상을 수상한 범상치 않은 감독이다. '툴판'은 (카자흐스탄)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양치기가 된 유목민의 이야기다. 사말 예슬랴모바는 이 영화에서도 드보르체보이 감독과 호흡을 맞춰 귀향한 유목민의 상대역을 맡았다.

영화 '아이카'의 배경은 끊임없이 눈이 내리는 러시아 모스크바. 겨우내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이 숨을 막히게 하는 곳이다. 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아이카'의 하루하루는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성치 못한 몸으로 고단한 삶은 계속되고..

출산 후 제대로 몸을 추스리지 못해 약해질 대로 약해진 그녀. 하혈은 계속되고 통증을 잊기 위해 약을 털어넣지만, 큰 효과가 없다. 일자리를 찾아 모스크바 거리를 헤매다 하혈 때문에 화장실을 찾아 들어선 곳은 한 동물 병원. 동물병원 속 애견 동물들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있는 그녀의 삶은 전세계 모든 이주 노동자들을 대변한다. 

그녀의 취업비자는 이미 끝난 상태다. 적발되면 추방된다. 빚쟁이는 그녀를 찾아와 돈을 갚지 않으면 고향(키르기스)에 있는 누이 동생의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위협한다. 그녀의 인내심은 어디까지일까?

협박당하는 여주인공
처음으로 아기를 안은 아이카

버티다 못한 그녀는 빚쟁이들에게 강간으로 임신했고,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통사정을 한다. 돌아온 반응은 의외다. 그들은 아기를 달라고 했다. 그 순간 모성 본능이 깨어난 그녀는 아기를 찾아 헤멘다. 그리고 아기를 안고 눈내리는 처마밑에서 처음으로 젖을 먹인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것은 '2010년 모스크바의 산부인과 병원에서 248명의 아기가 키르기스 출신의 엄마로부터 버려졌다'는 기사였다. 카자흐스탄 남서부 침켄트(ЧИМКЕНТ) 출신인 드보르체보이 감독은 이 기사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가족 중심적인 중앙아시아의 문화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키르기스 출신의 여성들이 왜 모스크바에서 자식까지 버리는 참담한 선택을 하게 되는지 추적한 끝에 이 영화를 구상했다. 드보르체보이 감독은 “우리 누구든, 둘러싼 환경이 극한 상황에 다다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말로 '다큐멘터리 성향의 영화'임을 분명히 했다.

그렇기에 실제와 다를 바 없는 연기력이 필요했고, 사말 예슬랴모바는 풍부한 감성과 섬세한 연기로 거기에 부응했다. 제71회(2018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유다. 그녀는 모스크바 기티스 예술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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