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등록 스푸트니크 V 백신이 러시아서 외면 받는 이유는?
세계 최초 등록 스푸트니크 V 백신이 러시아서 외면 받는 이유는?
  • 최미원 기자
  • llpostino.ru@gmail.com
  • 승인 2021.05.05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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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승인 과정 안전성 검증 미흡에 러시아내 불신 여론 팽배
SNS에 음모 이론 및 백신 접종 반대 여론에 부정적 시각 많아

신종 코로나(COVID 19) 팬데믹(대유행)을 극복하기 위한 백신 접종이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접종 거부 반응도 만만치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30% 가량은 백신 접종을 거부했다. 

갤럽이 지난해 117개국에서 성인 3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68%는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답했으나, 29%는 "접종하지 않겠다", 3%는 "모르겠다"고 각각 응답했다. CNN은 갤럽의 이번 여론조사가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실시된 사상 최대 규모 조사라고 전했다. 다만 조사 시기가 지난해여서 백신 접종이 본격화한 이후 접종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불명확하다. 

국가별 백신 접종 의향에서 옛 공산권 국가들이 저조했다. 세계에서 접종 의향이 가장 낮은 국가는 구소련의 카자흐스탄으로, 접종하겠다는 응답은 조사 대상 국민의 25%에 불과했다. 동유럽의 헝가리(30%)와 불가리아(33%)도 간신히 30%를 넘겼고, 지난해 8월 세계 최초로 스푸트니크V 백신을 등록한 러시아도 37%에 그쳤다. 

왜 그럴까? 최근 현지 언론들이 그 이유를 다각도로 분석한 기사들을 내놓고 있다.
 

러시아인의 스푸트니크V 백신 접종 모습/현지 TV 채널 '러시아 1' 캡쳐

영국 옥스퍼드대가 운영하는 통계 사이트 Our World in Data의 2일 기준 국가별 누적 백신접종 현황에 따르면, 전 세계 신종 코로나 백신 누적 접종 건수는 11억6000만 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러시아의 백신 접종률은 2,007만 도스(1회 접종분)로 1차 백신 접종률은 7.8%에 불과했다. 

중국 2억7534만 도스, 미국 2억4559만 도스, 인도 1억5421만 도스, 영국 4983만 도스, 브라질 4317만 도스에 비하면 절반 혹은 10분의 1에도 못미치고, 독일(3015만 도스), 터키(2301만 도스), 프랑스(2228만 도스), 인도네시아(2017만 도스)보다도 적다. 

코로나 백신을 세계 최초로 등록한 러시아의 백신 접종율이 저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에서도 '스푸트니크 V'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에 대한 논란이 우선 지적된다. 스푸트니크V는 2차 임상시험(임상 2상) 결과만으로 러시아 보건부에 조기 등록됐다. 당시 서방 측에서는 '물백신'이라고 비꼬는 소리가 나왔고,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

'스푸트니크 V'에 대한 세계적인 인식은 크게 개선됐지만, 자국민의 신뢰는 여전히 낮다는 게 현지 언론의 진단이다. 러시아내 불신 여론이 SNS 등을 통해 증폭되면서 백신 접종 반대 흐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에 거주하는 안나 도셰프스카야는 “몇 달 만에 뚝딱 만들어진 백신이 미덥지 않다”며 “일반적으로 백신은 개발부터 접종 단계까지 2~3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고 하니, 급하게 만든 백신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12월부터 코로나 백신 예방 접종 캠페인을 시작했다. 현재 2차 접종까지 완료한 사람은 접종 대상의 6.5%로, 자체 백신 개발국 치고는 수치가 매우 낮은 편이다.

한 언론에 따르면 작년 12월 모스크바 붉은 광장 옆 국영백화점 ‘굼’ 3층에 처음 마련된 백신 접종 센터에서는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큰 대기열 없이’ 백신을 맞을 수 있었고, 출입구 쪽이 시간대별로 ‘텅 비어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몇개월 후 많은 인파가 몰리는 모스크바 수도권 지역의 다른 쇼핑몰에 마련된 백신 접종 센터에서도 쇼핑백을 들고 접종 센터를 지나치는 시민들의 모습과 함께 ‘반쯤 비어있는’ 센터의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잡혔다. 

모스크바 굼백화점에 설치된 백신 접종센터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시민들/사진출처:모스크바 시 mos.ru

전러시아여론 연구센터(브치옴) 발레리 효도로프 센터장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백신 공급상 차별을 지적하면서 “수도권엔 백신이 충분하고 접종 센터는 차고 넘치지만 지역민 절반 이상이 백신 접종에 반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수도권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접종이 예약제로 실시되고, 백신 ‘물량’이 끊기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했다.

흑해 남부 휴양도시 소치에 거주하는 예카테리나 데미덴코는 “보건당국에 처음 전화했을 때 ‘자리가 없다’면서 ‘대기자 명단에 올려 놓겠다’고 했다. 이후 이틀 지나 ‘오후 17시 42분’ 보건소에서 전화가 오기를 ‘오전 8시 40분 예방 접종이 있었는데 왜 오지 않았냐는’ 황당한 질문을 듣게 됐다”며 불편한 마음을 토로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의학지 중 하나인 랜싯(The Lancet)에 지난 2월 실린 '스푸트니크V' 논문도 국내에서는 백신의 부정적 ‘첫 인상’을 가리기에 충분치 않았다.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가 지난 3월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백신 예방 접종 희망자 수는 수개월째 감소하고  있으며, 주원인은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인 것으로 밝혀졌다. SNS 여론조사에서도 ‘백신이 서둘러 만들어져 5년 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예방 접종 후 42일간 또는 접종 2주 전부터 음주를 자제하라는 당국의 지침이 오히려 논란을 부르고, (접종시) 공짜 아이스크림을 준다는 미끼나 도로변 광고판도 ‘백신 의구심 떨구기’에는 미흡했다. 

벤처제약펀드사 일리야 야스니 수석연구원은 “수십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를 갖고 백신을 조기 등록했을 때부터 이미 신뢰가 깨진 것 같다”며 “백신에 대한 신뢰는 관련 자료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회복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러시아는 아직까지 자체 개발된 백신 3종에 대한 통합 자료 뱅크도 없다”며 “백신 접종 희망자는 직접 경찰에 전화하거나 지역 보건부에 문의해야 한다”고 부실한 접종 시스템 문제도 접종률이 낮은 이유의 하나로 들었다.  

백신 접종후 접종 부위에 반창고를 붙이는 장면/TV 채널 '두마' 캡처

일부 지역의 백신 부족 현상은 아주 취약한 콜드체인 시스템(Cold-Chain system) 에서 찾을 수 있다. 게다가 러시아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갖고 있어 전 지역으로 백신을 신속하고 고르게 공급하는 인프라도 부족하다. 

러시아 보건부는 지난 1월 개발된 백신의 경우 ‘영상’의 온도에서도 보관할 수 있도록 허용했지만, 백신 부족 현상은 모스크바를 제외한 지역 곳곳에서 빈발했다. “스푸트니크 V는 18도 이상의 상온에 5분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이반 글루쉬코프 면역공학센터 부센터장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러시아에서는 신종 코로나 초기부터 음모론이 횡행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인위적인 방법에 의해 생물학적 무기로 만들어졌으며 이동통신의 방사선이 인체의 면역 체계를 억제해 코로나 감염에 취약하게 만든다는 게 대표적이다. 실제로 지난 1년간 북오세티아 지역민들은 두 차례에 걸쳐 ‘5G 타워’로 불리는 기지국을 불태웠고, 다게스탄자치공화국을 비롯해 카라차예보-체르케시야, 스타브로폴리예, 쿠반 등에서는 기지국 설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음모론은 백신 반대 운동, 이제는 백신 접종에 대해 부정적 시각으로 바뀌어 미디어 매체나 동영상 채팅방과 유튜브 채널 및 SNS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예카테린부르크, 우랄 지역에서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모스크바 신종 코로나 전문병원/사진출처:모스크바 시 mos.ru

낮은 백신 접종률은 개개인의  ‘동기 결여’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러시아는오래 전에 지역간 이동 금지나 대규모 행사 금지 등 대부분의 제한, 격리 조치를 해제했다. 신규 확진자도 하루 8천명대로 정체중이다. 감염 위험과 생활의 불편을 예전처럼 크게 느끼지 않는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백신 접종에 응할 특별한 동기의식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스콜코보 기업혁신센터 드미트리 쿨리쉬 교수가 “확진자 수가 급증하고 입원 횟수가 증가할 경우, 백신 접종률이 자연스럽게 상승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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