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안개' 노랫말로 회견을 끝낸 푸틴대통령 - "외국 기자들은 이해못해"
'푸른 안개' 노랫말로 회견을 끝낸 푸틴대통령 - "외국 기자들은 이해못해"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6.21 12: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네바 미러 정상회담 후 가진 푸틴 대통령의 기자회견 전체 흐름 정리
바이든과 달리 프롬프터 없이 1시간이상 20여개 질문에 거침없이 답변

푸틴 대통령과 바이든 미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은 전세계 언론의 관심을 끈 만큼 뒷이야기도 주말까지 이어졌다. 첫 만남 순간을 두 정상의 표정과 몸짓, 여유 등으로 승자와 패자를 가른 외신 기사도 있고, 많은 기자들이 지켜본 기자회견으로 두 정상의 리더십을 평가한 기사도 있었다.

푸틴 대통령- 바이든 대통령의 제네바 첫 만남/사진출처:크렘린.ru

주목할 만한 매체는 미국 정치 전문 매체 '더힐'이었다. 두 정상의 기자회견 방식을 비교하며 바이든 대통령을 비판했기 때문. 이 매체는 '우리는 왜 바이든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공동회견을 두려워 하는지 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푸틴 대통령은 55분간(러시아 언론으로는 1시간 10분) 프롬프터 없이 20개가 넘는 질문에 답한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미리 정해진 기자들의 질문 순서에 따라 프롬프터를 보고 했는데도 7개 질문에만 답을 했다”며 전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질문을 받겠다. (보좌진들이) 질문할 기자들의 이름을 적어줬다”고 하는 장면에서는 “어색하고 나약해 보이기까지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1시간 넘게 기자들의 다양한 질문을 여유롭게 받아넘겼다. 모스크바 시간으로 오후 6시 50분께 시작한 기자회견은 8시가 넘어 끝났다.

1시간 넘게 진행된 푸틴 대통령의 제네바 정상회담 결산 기자회견/동영상 캡처

이번 회담에서 유일하게 양국이 합의한 것은 전략적 안정성에 대한 공동성명이다. 전략적 (핵)무기의 통제에 중점을 둔 이 성명은 "오늘 우리는 핵전쟁에서 승자는 없으며, 결코 (규제를) 풀면 안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양국은 또 향후 전략적 무기의 새로운 통제 방법 및 위험 완화 조치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포괄적인 양자 대화를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정상회담의 성과는 통상 회담후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확인된다. 하지만 양국 정상은 별도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공동 기자회견이 아닌 이상, 서로 다른 말을 해도 어쩔 수 없다. 푸틴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을 접한 바이든 대통령이 일부 내용을 수정하기도 했다.

러시아 대중 일간지 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는 정상회담이 열린 16일 하루를 시간대별로 상세하게 정리해 소개했다. 그중에서 18시 49분(모스크바 시간)부터 시작된 푸틴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 정리를 바탕으로 정상회담을 다시 돌아본다. 

18시 49분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푸틴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은 "바이든 대통령과의 협상이 잘 됐다"며 "러시아와 미국이 상대국 주재 대사를 다시 귀임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과 연방기관 해킹에 대한 미국의 보복 제재조치로 촉발된 양국의 외교적 갈등은 바이든의 '푸틴은 살인자' 인정 발언을 계기로 양국 주재 대사들을 본국에 소환하기에 이르렀다.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대사는 지난 3월 미국과의 향후 외교 방향을 본국과 협의한다는 명목으로 워싱턴을 떠났고, 존 설리반 주러 미국대사도 지난 4월 본국으로 돌아갔다.

푸틴은 그러나 양국 관계에서 현재 많은 부분이 막혀 있지만, 해결책을 찾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러시아 외무부는 안토노프 주미 대사가 6월말 이전에 미국으로 귀임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를 태운 항공편, 뉴욕 국제공항에 착륙/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안토노프 대사는 외무부 발표보다 이른 20일 정오께(모스크바 시간 저녁 7시) 뉴욕 케네디 국제공항(JFK)에 도착했다. 그는 비행기를 갈아타고 워싱턴으로 향했다.

푸틴은 바이든과 우크라이나 문제를 다뤘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 문제에 대해서는 "가볍게 논의해 언급할 게 없다"고 넘어갔다. 그는 우크라이나 문제의 해결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독일, 프랑스 4개국이 노르망디 형식의 회담에서 합의한) '민스크 협정'을 기반으로 해야 하며, 바이든도 이에 동의했다고 전했다. 

이어 양국은 (양국 갈등의 핵심 문제중 하나인) '사이버 보안'에 관한 협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은 미국의 소식통을 인용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이버 공격이 미국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모스크바는 워싱턴으로부터 사이버 공격에 대해 요청을 받으면 모든 정보를 제공하지만, 모스크바는 워싱턴으로부터 정보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푸틴은 미국과 러시아가 세계의 전략적 안정에 대한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 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으로 군대를 이동 배치해 우크라이나를 위협하고 있다"는 미국 기자의 지적이 나오자, "러시아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자국 영토에서 군사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특히 "우리는 군사 장비를 미 국경(근처)까지 갖고 가서 훈련을 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군 등 나토군이 러시아 국경지역에서 군사훈련하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한 한, 러시아는 '민스크 협정'의 이행을 앞당겨야 하는 단 하나의 의무만 지고 있다고 푸틴은 설명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 정부가 동부 '돈바스 지역' 분쟁 해결을 위한 민스크 협정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의 기자회견 모습/동영상 캡처

야권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한 미국 기자의 질문에 푸틴은 공격적(?)으로 답변했다. 그는 나발니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그 사람, 그 친구 등으로 호칭했다. 푸틴은 "그 사람(나발니)은 러시아 실정법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지적한 뒤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가 집행유예형을 두 번 선고받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필요한 법적) 등록을 해야 했다. 그가 치료를 받으러 해외로 나갈 때 당국은 굳이 등록을 요구하지 않았다. 퇴원한 뒤 인터넷(유튜브)에 (푸틴 궁전 같은) 동영상을 올린 뒤에야 당국은 등록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나발니)는 (당국의) 요청과 법을 무시하고,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수배 목록에 올랐고, 이미 체포될 줄 알고 귀국했다. 그는 구속되기를 원했다. 여기서(기자회견)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푸틴은 그 갈등의 뿌리를 미국에게로 돌렸다. 미국이 지난 2017년 러시아를 적대적인 국가라고 선언한 뒤 미국식 정치를 추종해 러시아를 장악하려는 (러시아내) 정치 조직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나발니가 만든 반부패재단 등 외국의 도움을 받는 단체를 겨냥한 발언으로 보인다. 

관심을 모았던 바이든의 '살인자' 발언에 대해서는 "바이든이 가혹한 말(살인자)을 한 뒤 전화를 했다"며 "그의 해명은 만족스러웠다"고 푸틴은 밝혔다. 주미 대사를 전격 소환할 정도로 양국 관계를 악화시킨 사건(?)이었지만, 그는 쿨하게 이해하고 넘어간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바이든의 해명이 적절했고(중략), 그래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바이든이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고 다시 한번 확신했다. 우리는 거의 두 시간 동안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눴다. 그의 전임자(트럼프 대통령)라면 피했을 질문을 바이든은 상세하게 답을 했다"고 전했다.

푸틴은 "원칙적으로 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정치 지도자에게 책임이 있다"며 "미국에서는 매일 누군가가 죽는다. 그들은 앞에서나 뒤에서 총을 쏜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한번에 많이 죽기도 한다"고 '살인'에 대해 길게 설명하기도 했다. 또 인권이 보호되지 않는 미국 감옥, 고문이 사용된 유럽 감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화제가 북극 문제로 넘어갔다. 푸틴은 기자 회견이 20분쯤 지날 무렵, 바이든과 북극문제에 대해 자세히 논의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북극 지역의 군사화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전혀 근거가 없다"며 "러시아는 그곳에서 파괴된 인프라를 재건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 "외국 선박의 북극 통과 허용 문제는 러시아의 주권적 권리"라고 지적한 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남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와 미국 사이의 '레드 라인'에 대한 질문 вопрос о "красных линиях" 에 대해서는 "바이든과 뭔가를 공유하기에 아직 너무 멀다"며 "거기까지 도달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양국은 '레드 라인' 문제에 대해 서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레드 라인'은 바이든이 임기 초반에 일찌감치 푸틴을 만나 러시아에 레드라인을 직접 알려주기 위해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관심을 끈 주제. 바이든도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푸틴에게 에너지·통신·급수 등 핵심 인프라 16개 항목을 건넨 뒤 “이 시설은 사이버 공격 금지 대상이어야 한다”고 경고했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또 나발니가 사망할 경우, 러시아는 파멸적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그가 푸틴과 만나 '레드 라인'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푸틴은 (나발니의) 반부패재단(FBK)의 활동에 대해 "활동 자체가 금지되지 않으며, 외국 에이전트(대리인)로 지정되었다고 해서 활동을 중단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푸틴은 "(이 단체가) 화염병(коктейли Молотова) 만드는 법을 대놓고 가르쳤다"고 비판했다. 

여기서 푸틴은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미국에서 일어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캠페인과 미 대선 이후 의사당 점거 사건 등을 거론했다. 그는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우리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미국에서 질서 파괴와 법률 위반 사건들을 목격했고,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선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도 했다. 

푸틴은 미국과 수감자 교환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특정한 방식으로 타협이 가능하다"며 "미 국무부와 러시아 외무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에 수감된 대표적인 미국인은 '베어링 보스토크'(Baring Vostok) 투자펀드의 설립자 마이클 칼베이다. 그는 주주들에게 비현실적인 가격에 주식을 거래하도록 하는 방법 등으로 25억루블(당시 약 424억원)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지난 2019년 구속됐다. 2020년 11월 가택 연금상태로 바뀌었다는 게 현지 언론의 보도다. 

정상회담에서 거의 빠지지 않는 상대에 대한 초청 문제에 대해 푸틴은 "바이든이 워싱턴 방문을 초청하지 않았다. 나도 아직 그를 초청하지 않았다. 초청 방문은 조건이 무르익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 기자회견에 참석한 미러 언론매체/동영상 캡처 

'바이든의 눈을 통해 확인한 것'에 대해 묻는 미국 기자의 질문에 그는 "영혼에 대해 말할 수는 없지만, 바이든은 매우 균형 잡히고 건설적인 대화 상대자"이라고 답한 뒤 "그렇다고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 언론이 자신을 왜곡하고 공격하는 데 대해 "오늘날 국제 관계의 관행"이라며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또 "미국도 러시아에 대해 경제제재를 가하면서 러시아만큼 손해를 입었다"고 푸틴은 확언했다. "미국의 제재가 러시아를 고립시킨다는 목표는 부분적으로 달성했겠지만, 중요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고도 평가했다. 

푸틴은 바이든이 라디오 리버티(Radio Liberty)의 러시아내 활동 문제를 제기했다고 소개한 뒤 "러시아 투데이(RT)가 미국에서 외국 에이전트(대리인)로 지정된 뒤 라디오 리버티도 러시아에서 외국 에이전트로 바뀌었다"고 반박했다. 

신종 코로나(COVID 19) 백신의 상호 인정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나가듯 다뤄졌다고 그는 밝혔다. 

그는 바이든에 대한 신뢰 여부를 묻자, 레오 톨스토이의 말을 인용해 "인생에는 행복이 없고 순간적인 번쩍거림(번개)만 있다. 섬광이 번쩍해도 소중히 여긴다"고 말했다. 푸틴은 바이든과의 만남 후 미국과의 관계 개선 전망에 대해서도 "이러한 상황에서는 가족(과 같은) 신뢰는 있을 수 없다"면서 "그러나 뭔가(번개) 번쩍했다"며 희망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새로운 위협에 적절히 대처하고 있다"며 '서방 외교 정책의 안정성'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반문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쿠데타를 지원하는데 뭐가 안정적인 것이냐?" 그는 바이든과의 만남은 대체로 생산적이었지만, 이게 점수를 따기 위한 경쟁은 아니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의 기자회견은 "두 강대국이 세상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만나는 것"이라는 답변으로 끝났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자, 그는 "이 문제에서 (법률적으로 따지는) 변호사가 될 ​​필요는 없다"고 했고, 반부패재단에 대해서는 "아이들에게 화염병 준비를 지시했다"고 비판했다. 또 미러 관계 전망에 대한 질문에는 거듭 톨스토이의 말로 응답했다.

푸틴은 마지막으로 '기만'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기만? 푸른 안개는 속임수처럼 보인다. 이제 우리는 당신과 함께 노래를 부를 것이다. 외국 기자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로 회견을 끝냈다.

**뱌체슬라프 도브리닌의 히트곡 '푸른 안개'

 

이 대목은 뱌체슬라프 도브리닌의 히트곡 '푸른 안개'(Синий туман)에서 나온 것으로, 원래 미하일 랴비닌 Михаил Рябинин의 시 구절이다. 러시아의 팝스타 여럿이 이 곡을 리메이크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기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 구절의 참뜻이 궁금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