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판 화이자 '코비박' 백신 사냥에 나선 모스크바 - 접종 거부는 여전?
러시아판 화이자 '코비박' 백신 사냥에 나선 모스크바 - 접종 거부는 여전?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7.17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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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3상 끝나지 않는 '코비박'에 대한 이상 열기, 전문가들 고개 갸우뚱
백신 접종 거부 이유, 건강에 미칠 불확실한 부작용? - 여성들은 출산문제

델타 변이바이러스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종 코로나(COVID 19) 백신의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세계 어디에서나 있다. 미국 유럽과 비교해도 러시아엔 백신 접종 거부자가 많은 편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백신의 확보 물량 부족으로 사전 예약에 애를 태워야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러시아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개발된 백신이 4종이나 있다. 물량도 남아돈다.

하지만, 러시아는 백신 접종을 개인의 자유의사에 맡기다 보니, 접종률이 턱없이 낮았다. 델타 변이종으로 최근 신규 확진자와 사망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모스크바 등 일부 지역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서비스 업종 종사자들에 대해 '의무 접종' 조치를 도입했다.

또 카페와 레스토랑 등 음식점 출입을 백신 접종자와 감염후 완치자 등으로 제한했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8,000~9,000명대였던 러시아의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최근 2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사망자 수도 연일 최대치를 경신하는 등 방역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모스크바, 백신 의무접종 업종의 접종 자료 제출 시한 22일로 연장/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백신 의무 접종 대상자들은 엄청난 부담을 느끼고 있다. 접종하지 않을 경우, 일자리를 잃을 처지로 몰렸고, 업주들은 접종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벌금을 물거나 최대 90일간 영업 정지 처분을 받게 될 수도 있어서다. 업주들의 호소에 모스크바 시당국은 마감 날짜를 당초 15일에서 22일로 1주일 연기하기도 했다. 

백신 의무 접종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태도는 반발에서 순응쪽으로 조금씩 바뀌는 분위기다. 지난달 26일 모스크바 중심가 노보푸쉬킨스키 광장에 500여명이 모여 백신 의무 접종 반대 시위를 벌이는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모스크바 시내에 설치된 300여곳의 접종 센터를 찾아 긴 줄의 끄트머리에 서거나, 그나마 안전하다고 알려진 특성 백신을 찾아다니고 있다.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 부녀/인스타그램 캡처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의 딸, "코로나 백신 접종 두렵다"/얀덱스 캡처 

힘없는 백성(?)의 눈길을 잡은 것은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크렘린 대변인 드미트리의 딸 '엘리자베타'의 SNS다. 엘리자베타는 "항체가 있는데도 백신 접종을 강요당하고, 최후 통첩을 받는 것이 옳지 않다"고 강제 접종에 반대했다. 그러면서 주변사람들을 둘러보면 백신 접종이 두렵다고도 했다.

"주변에는 방역당국에 대한 신뢰가 낮아 특정 약물의 백신 접종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전자 변이 백신으로) 앞으로 임신이 잘못될까 두려워하고, 길을 잃어 버릴까 봐 두려워한다. 솔직히 나도 두렵지만, 다시 확진 판정을 받지 않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한다"고 썼다. 

'엘리자베타' 가족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그동안 항체 형성을 이유로 백신 접종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다가 최근 델타 변이의 확산과 함께 1회용 백신 '스푸트니크 라이트'를 부스터샷(재접종)으로 맞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백신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두려움은 보다 안전한 '백신 사냥'으로 나타나고 있다. 타깃은 러시아 백신 연구의 대명사격인 '추마코프 센터'가 개발한 러시아 3번째 백신 '코비박'이다. 지난 2월 말 러시아 보건부에 정식 등록된 '코비박'은 3월 말 '추마코프 센터'의 자체 제조시설에서 상업적 생산이 시작됐다. 

'코비박' 백신을 맞기 위해 건강검진 파빌리온을 찾아 길게 줄을 선 모스크바 시민들/러시아 TV채널 NTV 캡처

'코비박'의 인기는 가장 최근 모스크바서 '코비박' 백신이 배포된 지난 11일 바로 확인됐다. 모스크바 시당국이 전날 (시 전역에 설치된) 14개 건강검진 파빌리온(센터)에서 '코비박' 백신을 접종할 것이라고 예고하자, 이튿날 시민들이 구름처럼 몰렸다. 투시노 공원에 설치된 파빌리온에서는 시민들이 '코비박' 접종을 위해 최소 5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2,000여명이 다음 백신 접종시 우선권을 받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난 뒤에야 돌아갔다.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은 '코비박' 도착 소식에 '백신 사냥'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의료진들이 먼저 차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만7천명 이상이 '코비박' 백신 접종을 위해 줄을 섰다/얀덱스 캡처
모스크바에서는 하루도 지나기 전에 '코비박' 백신 동나/얀덱스 캡처

'코비박' 백신이 왜 갑자기 인기 백신으로 떠오른 걸까?
알렉세이 아그라노프스키 모스크바국립대 교수(바이러스 전문가)는 12일 "코비박이 오래 전부터 검증된 기술로 개발된 백신이라면, 스푸트니크V나 (러시아 2번째 백신) '에피박코로나'는 비교적 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보수적인 성향의 러시아 사람들은 오랜기간 검증된 기술을 더 신뢰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특히 "새로 나온 백신의 위험에 겁을 먹고 있을 때 더욱 그렇다"고 했다.

'코비박'은 죽인(불활성화) 바이러스를 기반으로 만든 백신이고, 스푸트니크V는 아데노바이러스를 면역을 위한 벡터(매개체)로 쓰는 방식으로, '에피박코로나'는 면역을 유도하는 특정 단백질을 합성화하는 방식으로 개발된 백신이다. '코비박'의 불활성화 방식은 이미 천연두를 시작으로, 소아마비와 홍역 등 주요 질환의 백신 개발에 이용된 고전중의 고전이다.

'추마코프 센터'의 '코비박' 백신 생산 시설/러시아 TV 스푸트니크 캡처

문제는 살아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죽여 만들다 보니 생산이 까다롭고 복잡하다는 점이다. 그만큼 대량생산이 어렵고 시장에서 물량이 부족하다. 

아직 '등록후 임상'(임상 3상)이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현지 백신전문가들은 누구도 '추마코프 센터'가 개발한 기존의 소아마비나 뇌염 백신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지만, '코비박'에 대한 평가에는 인색하다.

유럽대학 비교의료연구 센터(Институт междисциплинарных медицин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Европейского университета)의 안톤 바르추크 소장은 "아무리 '추마코프 센터'가 개발했다고는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임상 3상을 거친 '스푸트니크V'보다는 신뢰가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스푸트니크V는 면역(항체)에 관여하는 단백질을 집중 공략한데 반해, '코비박'은 나머지 단백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실제 보호 측면에서는 효율이 낮다"며 "'코비박'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코비박의 효율은 임상 1, 2상 결과, 80%를 약간 넘는 수준이다. 

그래서 나온 게 스푸트니크V 대체설이다. "코비박의 인기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은 '스푸트니크V'를 거부할 경우, 선택할 백신이 그것(코비박)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모스크바국립대 세르게이 하리토노프 연구원(분자 생물학자)은 주장했다. '코비박' 백신의 위탁생산을 준비중인 러시아 제약사 '나놀렉'의 블라디미르 흐리스텐코 사장도 같은 의견이다. 나놀렉은 '추마코프 센터'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아 연말까지 500만 도즈(1회 접종분)을 생산할 계획이다. 

스푸트니크V 백신의 선적 모습/러시아 TV채널 러시아-1 캡처

그렇다면 러시아인들은 왜 자국 백신에 대해 거부반응이 심할까?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백신 접종 거부 - 21세기의 새로운 전염병' (Отказ от вакцинации - новая чума XXI века)의 공동 저자인 마리아 마루시나 박사는 인터넷 시대의 가짜 뉴스 범람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마루시나 박사는 "소련 시절에는 백신 접종을 거부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며 "백신은 페니실린이나 마취제 발명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과학적 돌파구이자 축복인데, SNS에는 백신 접종을 거부할 만한 정보가 수없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신 접종 뒤 나타나는 심각한 부작용에 유전자 변이, 유해물질 첨가설 등이 확산되면서 근거없는 임신출산시 큰 문제(뇌성 마비나 자폐증 등)를 일으킬 것이라는 공포를 안겨주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프로젝트 센터 '플라트포름'과 (rbc 자회사인) 온라인 마켓 정보 회사(центр социального проектирования «Платформа» и компании Online Market Intelligence)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40%가 백신 접종을 원하지 않는 가장 일반적인 이유로 장기적인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응답했다. 그래서 응답자의 3분의 1가량(31%)이 접종 시기를 미뤄 주변 접종자들의 예후를 지켜본 뒤 접종에 나설 것이라고 응답했다. 

백신 접종전 러시아인들이 느끼는 두려움에 대한 의사 설명/얀덱스 캡처 

이같은 집단 심리는 찬바람이 불기 전(가을)까지 전체 인구의 60%에 대한 접종을 마쳐 '집단면역'을 형성하기로 한 러시아 방역 당국의 당초 계획을 송두리채 무너뜨렸다. 페스코포 크렘린 대변인은 "백신 접종 60& 목표가 이미 물건너갔다"며 "의무접종 조치 이후 접종률이 증가하고 있어 다행"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와 비교하면 우리 국민들은 아스트라제네카의 부작용이 확인되더라도, 화이자 백신과 교차접종의 임상시험이 완결되지 않아도, 하루 빨리 잔여백신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위해 컴퓨터 자판을 두들긴다. 러시아 방역당국에겐 부러운 모습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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