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과 '노드스트림-2 사업' 살려낸 메르켈 독일 총리 - 미국과 조건부 합의
푸틴과 '노드스트림-2 사업' 살려낸 메르켈 독일 총리 - 미국과 조건부 합의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7.2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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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독 성명 "러시아 에너지 무기화엔 공동 제재" "우크라이나 에너지 지원"
크렘린 환영 - "러시아는 책임있는 에너지 안보 당사자, 무기화 없다" 선언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해저 천연가스관(파이프라인) 부설 사업인 '노르트(노드)스트림-2' 프로젝트가 그간의 건설 중단이라는 어려움을 딛고 오는 8월에는 완공될 전망이다. 이 사업 추진을 놓고 외교적 갈등을 빚어온 독일과 미국이 21일 '조건부 가스관 완공'에 합의한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다.

이날 공동성명은 미국의 대책없는(?) 개입에 대한 독일과 러시아의 '합작 승리'라고 할 만하다. 미국이 대서양을 건너 동유럽 일부 국가들과 손잡고 독-러 해저 가스관 건설을 한사코 저지하려 했지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현실을 받아들인 결과로 나온 것이다. 

이로써 러시아는 적대적인(?) 우크라이나 땅을 통과하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유럽대륙으로 천연가스를 내보내는 파이프 라인을 확보했고, 독일은 '그린 에너지' 정책을 앞당기는데 필수적인 '에너지 수급의 안정화'를 꾀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 '노드스트림-2' 건설 주관사인 '노드스트림-2 AG'는 해저 가스관 부설 공사에는 첨단 건설공법이 적용되고 있다는 홍보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렸다/캡처

양국의 합작 사업에 가장 배가 아픈 쪽은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의 미국이다. 유럽의 '에너지 안보 확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속내는 달랐다. 미국 LNG(액화천연가스)의 유럽 수출이라는 경제적 이득을 겨냥한 다목적 반대였다. 

국제액화천연가스수입그룹(GIGNL)이 최근 발표한 2021년 LNG 산업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세계 LNG 교역은 신종 코로나(COVID 19) 사태로 큰 변화가 없었으나 2015~2019년 무려 45%나 증가했다. 호주와 미국, 러시아의 LNG 생산량 급증에 따른 것. 특히 LNG 생산 설비를 크게 늘린 미국은 수출 타깃으로 대서양 건너 유럽을 택했다는 게 정설이다. 

독-러 해저 가스관 사업은 미국의 이같은 LNG 수출 전략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프로젝트다. 러시아에서 발트해상의 독일,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의 해역을 거쳐 독일까지, 총 연장 2천460㎞에 이르는 가스관을 부설한 뒤 연간 총 550억m³(입방 미터)의 가스를 유럽으로 내보내겠다는 것. '노르트스트림-2'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2개를 까는 것이어서 기존의 '노르트스트림-1'의 가스관까지 합치면 총 3개의 가스관 노선을 통해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유럽으로 팔 수 있다.

가스관 부설 사업 현장/사진 출처:nord-stream2.com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의 수송 용량만 해도, 우크라이나 영토를 통과하는 기존의 러-우크라이나 가스관을 폐쇄하더라도 유럽 지역 가스 공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파이프 라인 2개중 1개는 이미 지난 6월 기술적으로 완공됐고, 나머지 1개는 이제 80㎞ 정도 남아 있다.

부설 공사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막바지 단계로 진입한 상태다. 이 사업에 대한 미국 측의 제재 경고로 2019년 12월 스위스 기업 '올시즈'(Allseas)가 공사를 포기했다. 1년 정도 공사 자체가 중단됐다. 그러나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자국 부설선 '포르투나'가 독일 구간에 투입, 작업을 재개했다. 지난 4월에는 또다른 부설선 아카데믹 체르스키를 공사 현장으로 보냈다. 

건설 주관사인 '노르트스트림-AG'는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이 100% 지분을 가진 기업이다. 대표는 독일인 마티아스 바르닉이 맡고 있다. 바르닉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가스관 2개 노선 가운데 1개 노선 건설이 2% 정도 남았다"며 "8월 말에 가스관 건설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우리의 목표는 올해 안에 가스관을 가동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드스트림-2' 건설사업에 투입된 '스트릴 익스플로러'호/출처:nord-stream2.com

건설 공사가 완공되면 시험 가동과 시설 검증 절차에 들어간다. 노선마다 2~3개월이 필요할 것이라는 게 바르닉 대표의 예상이다. 총 사업비는 95억 달러(약 10조9630억원). 

미국이 이 사업의 완공을 용인한 것은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노르트스트림-2는 이미 99% 진행됐다"며 "중단시키기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불가능하다"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합의한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미 지난달 7일 하원 외교위원회에서 '노르트스트림-2'의 완공을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미국의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러시아를 견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독일 등 유럽과의) 동맹 강화를 선택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국산 가스의 유럽 진출을 겨냥해 이 프로젝트를 극력 반대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 의회는 2019년 '노르트스트림-2'를 제재하는 두 가지 법안을 승인했다. 이 제재로 가스관 부설을 비롯해 테스트, 검사 및 인증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럽 기업들이 작업을 포기하는 바람에 가스관 건설이 1년간 중단됐다.  

대신, 바이든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와의 협상에서 '조건부 허용'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조건은 크게 두가지다. 

공동성명에 따르면 미-독 양국은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할 경우, '노르트스트림-2' 제재에 공동으로 나서기로 했다. 미국으로서는 독일의 대러시아 제재 동참을 압박하는 카드다. 양국은 또 러시아의 악의적 활동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적절한 제재조치와 준비상태를 유지한다는 데 합의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 대변인은 22일 양국의 공동성명을 환영하면서도 '러시아가 악의적이고, 정치적으로 가스관을 활용하려고 한다'는 전제에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러시아는 항상 에너지 안보의 책임 있는 한 당사자이며, 에너지 자원을 정치적 압력의 도구로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한 푸틴 대통령의 발언들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국영에너지 '나프토가스', 2024년 이후 우크라이나 통과 러시아천연가스의 운송 중단 예상/얀덱스 캡처

'노르트스트림-2'의 가동시 최대 피해자가 될 우크라이나에 대한 배려가 미-독의 두번째 단서다. 공동성명은 "독일은 앞으로 최대 10년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가스 운송 계약을 연장하도록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부문 지원을 위해 10억달러 규모 '녹색기금' 조성하며, 우선 1억 7,500만 달러를 내놓기로 했다"고 밝혔다. 독일은 이를 전담할 특별대사도 임명해야 한다. 

미-독이 우려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의 가스관 이용 계약은 오는 2024년 만료된다. 양국은 2020~2024년 5년간 최소 2,250억m³(연 450억m³) 규모의 가스 운송에 합의한 상태다.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의 수송 용량으로만 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가스관 계약을 더이상 연장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다. 연 20억달러(약 2조3000억원)에 이르는 가스관 이용료 수입이 하루아침에 날아갈 판이다. 우크라이나가 '노르트스트림-2' 프로젝트에 결사적으로 반대해온 이유다.

푸틴, 메르켈 총리 2024년 이후 우크라이나 가스관 계역 연장 문제 논의/얀덱스 캡처

크렘린은 미-독 공동성명이 나온 뒤 서둘러 "푸틴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24년 종료되는 우크라이나 가스관의 협정 연장에 대해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등 주변 국가들의 반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제스처로 보인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22일 폴란드 양국 외무장관과 함께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미-독 합의는 우크라이나와 중부 유럽 전체에 정치, 군사, 에너지 위협을 추가로 야기했다"며 "이 결정은 러시아가 유럽 안보에 파괴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증대시키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유럽연합(EU) 회원국들 간의 이견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 미-독의 '노르트스트림-2' 합의에 대한 요구사항 제시/얀덱스 캡처

우크라이나 국영 가스회사 나프토가즈(Naftogaz)의 유리 비트렌코 사장은 미-독 합의에도 불구하고 "2024년 (협정 종료) 이후에도 러시아의 가스 수송이 계속될 지 의심스럽다"고 불만을 터뜨렸고,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토 가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우크라이나가 두려워하는 것은 자국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 확대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수송 문제에 발목에 잡혀 우크라이나에 대한 개입을 최대한 자제해 왔는데, '노르트스트림-2'의 가동으로 그같은 족쇄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 20억달러에 이르는 가스관 이용료는 우크라이나 경제의 독립성을 뒤흔들 수 있는 경제적 변수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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