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붕괴 촉발한 '사흘 쿠데타' 19일로 30주년 - '고르비' 회고 성명을 보니
소련 붕괴 촉발한 '사흘 쿠데타' 19일로 30주년 - '고르비' 회고 성명을 보니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8.19 06: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 연방 조약 체결을 막고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이란 쿠데타 세력 주장에
"소련 해체는 쿠데타 세력 책임" "3국 합의가 마지막 기회 빼앗아갔다" 반박

소련의 해체를 촉발한 공산당 강경보수파의 쿠데타가 발생한지 19일로 벌써 30주년이 된다.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에 반대하는 당과 KGB, 군부 등의 실세 강경파 보수 인사 8명이 1991년 8월 19일 국가비상위원회를 설립한 뒤 대통령을 배제시키고 권력을 장악했다고 발표했다. 크림반도 얄타에서 휴가를 보내던 고르바초프는 사실상 현지에 억류됐다. 그러나 군대까지 동원한 '8인 쿠데타'도 옐친 전 러시아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반대 세력의 목숨을 건 저항에 단 사흘만에 끝났다.

고르바초프, "쿠데타 세력이 소련 해체에 책임"/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90)은 18일 쿠데타 30주년을 맞아 배포한 성명에서 "쿠데타 세력은 국가(소련) 붕괴에 대한 막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앞으로도 러시아가 발전하는데 유일하게 올바른 길은 민주화"라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주의와 법치 국가의 원칙을 지키고 권력 찬탈과 모험주의 행동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 항상 국가와 사회의 관심사가 돼야 한다"며 "쿠데타 세력은 나라를 지키려고 나섰다고 강변하지만 그들의 모험주의 결과는 파멸적이었다"고 말했다. 

30년전 상황에 대해 그는 "쿠데타 세력이 크림반도 얄타의 포로스 마을에 나를 격리한 뒤 대표를 보내 '국가비상사태' 명령에 서명하라고 요구했지만, 그들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했다"며 "그들의 도발은 대통령의 확고한 태도와 많은 시민들의 용기 덕에 실패로 끝났고, 페레스트로이카로 시작된 민주화는 큰 도전을 견뎌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소련 대통령의 지위가 약화되면서 연방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기가 엄청나게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며 "(소련)연방의 종말을 선언한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3국 지도자들의 '벨로베슈스카야 합의' 이후, 쿠데타 세력은 '나라(연방)을 보존하기 위해 나섰던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그들의 모험은 그 결과가 파멸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국가 붕괴에 막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련 쿠데타 당시, '다 함께 저항하자'는 호소문을 읽고 있는 옐친 전 대통령/현지 매체 rbc 유튜브 캡처 
불타는 쿠데타군의 탱크
쿠데타 군의 탱크 진입을 맨손으로 막고 있는 시민들. 탱크 앞에 한 시민이 엎드려 있다.
쿠데타 실패 후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 rbc 유튜브 채널 캡처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연방 소속) 공화국들이 독립을 선언했지만, 쿠데타 실패 이후에도 개편된 연방체제 위에서 소련을 유지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었으나, 그해 12월 '벨로베슈스카야 합의'로 완전히 기회가 사라졌다"고 회상했다.

쿠데파 실패후 권력을 장악한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정상과 함께 1991년 12월 8일 벨라루스의 벨로베슈에 있는 관저(벨로베슈스카야)에서 소련을 해체하고 느슨한 형태의 국가 모임인 독립국가연합(CIS)을 창설하기로 했다. 협정 서명 18일 만인 같은 달 26일 소련의 의회격인 최고회의는 소련의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다큐멘터리 필름 '고르바초프, 낙원'의 장면들/사진 출처: artdocfest.com

고르바초프는 앞서 소련의 해체를 "전 국민의 뜻을 거스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련의 체제 유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의 결과는 흥미로웠을 뿐만 아니라 놀라웠다"며 "압도적인 다수의 소비에트(소련) 국민이 소비에트 연방(소련 체제)을 유지하는 데 찬성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쿠데타 발발 직전인 1991년 8월 20일 '새로운 연방 조약'에 서명할 계획이었으나, 쿠데타로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쿠데타 세력은 당시 고르바초프가 추진한 '새로운 연방 조약' 체결을 막기 위해 거사했다는 분석이 유력하게 나돈 바 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는 그들의 주장도 바로 '새로운 연방 조약'이 연방의 해체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새로운 연방 조약이 '벨로베슈스카야 3국 합의'로 현실화했다는 게 쿠데타 세력의 주장이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쿠데타 30주년 성명은 이에 대해 적극 반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