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백신 위탁생산 경쟁(3) - 델타 변이, 생산 속도가 경쟁력이다
러시아 백신 위탁생산 경쟁(3) - 델타 변이, 생산 속도가 경쟁력이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8.23 08: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델타 변이종 확산에 러 '가말레야 센터' 스푸트니크V 개량형 이미 개발
한국코러스 컨소시엄은 상업생산 직전 단계, 휴온스측은 시설점검 수준

신종 코로나(COVID 19)의 백신 접종에서 화두는 이제 인도발 델타 변이종이다. 기존의 백신들이이 델타 변이에 효과를 보일 것인지, 아니면 델타 변이 타입의 새 백신을 개발해야 하는지 여부다. 새 백신을 개발해야 한다면, 백신 (생산)업계는 조만간 또 '시간 싸움'으로 넘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 연구진에 따르면 델타 변이는 기존 코로나 바이러스에 비해 감염 속도가 빠른 데다가 '잠복 기간'도 짧다고 한다. 인체의 자연 면역시스템은 감염 후 10~14일에 항체를 만들어내는데, 델타 변이는 잠복기간이 짧아 평균 4~5일이면 증상이 나타나 인체 면역시스템으로는 대응이 더 어려워졌다는 것. 젊은 연령대의 확진자가 급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기존의 백신이 델타 변이에 효과적인 것도 아니다.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등 서방에서 주로 사용된 백신의 실증적 효과를 보더라도, 델타 변이에 대한 이들 백신의 예방및 면역효과가 기대에 못미치는 것은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잠정 결론은 델타 변이종 맞춤형 백신의 개발이다. 독감 백신이 매년 유행할 가능성이 높은 바이러스에 따라 3~4가지 백신 성분을 섞어 만들어지듯, 신종 코로나 백신도 그같은 대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세다. '스푸티니크V' 백신이 1년 전 러시아에서 처음 공식 등록됐을 때부터 현지 바이러스 학자들은 변이 종 출현 가능성과 그에 따른 '개량 백신'의 필요성을 논의했다는 것은 더이상 비밀이 아니라고 현지 언론은 전한다.  

러시아 '가말레야 센터', 델타 변이 균주를 대상으로 한 스푸트니크V 개량/얀덱스 캡처

'스푸트니크 V'를 개발한 러시아 '가말레야 센터'의 알렉산드르 긴츠부르크 소장은 19일 델타 변이에 효과적인 '개량 변형'의 샘플을 만들어 보관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것(개량형)이 (기존 백신에 비해) 델타 변이에 대한 예방효과가 뛰어난 지는 미리 얘기하기 어렵다"고 했다. 미하일 무라슈코 러시아 보건장관은 그보다 앞서(지난 11일) "스푸트니크 V 백신의 델타 변이 예방효과는 83%로, 화이자(42%)나 모더나(76%)보다 훨씬 높다"고 주장했으나, 이미 전문가들에게는 공허한 이야기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우세 종으로 자리를 잡은 델타 변이에 대한 개량형 백신 개발은 '스푸트니크V', 혹은 '스푸트니크 라이트' 백신의 위탁생산을 추진하는 국내 제약업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전망이다. 기껏 기존 백신의 기술을 이전받아 생산 공정을 완비해 놓을 즈음에, 개량형이 나온다면 일부 공정을 다시 바꿔야 할 처지에 놓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스푸트니크V' 백신의 해외 생산및 유통을 담당하는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 대표단이 지난 6일 방한해 휴온스글로벌 주도의 컨소시엄 업체들을 둘러보고 돌아갔다. RDIF의 계약담당 책임자인 블라디미르 스빈초프 이사와 스베틀라나 바에바 수석 전문위원이 국내에서 뒷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행보에 더욱 관심이 쏠린 것은, 그들이 휴온스 컨소시엄과 경쟁 중인 한국코러스 컨소시엄 업체들을 공개적으로 방문했기 때문이다. 드미트리 쿨리쉬 기술고문(일부에서는 기술담당 이사로 호칭)이 이끄는 RDIF 대표단은 방한 중 휴온스 컨소시엄을 제외한 다른 제약사와 접촉하거나 방문, 협의한 사실 자체의 공개를 원치 않았고, 실제로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스빈초프 이사와 바에바 수석은 한국코러스 컨소시엄 업체의 방문을 공개했다.

한국코러스 춘천공장의 백신 생산 모습/KBS 화면 캡처

한국코러스 컨소시엄은 한국코러스를 중심으로 이수앱지스, 제테마, 바이넥스, 보령바이오파마, 종근당바이오, 큐라티스 등으로 구성됐으나, 실제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곳은 3~4개 기업으로 전해졌다. 일부 업체(단체)는 이미 컨소시엄에서 사실상 떨어져 나갔다. 

그중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기업은 '이수앱지스'다. 스푸트니크V 위탁생산을 위해 지난 4월 RDIF-지엘라파(한국코러스 모기업)와 3자 협약을 체결하고 기술이전도 끝냈다고 한다. RDIF의 스빈초프 이사와 바에바 수석이 19일 이수엡지스의 용인공장을 방문한 것은 "백신 원액 위탁생산 본계약 체결 이전 사전 점검"(이수앱지스 관계자)차원이다.

앞서 휴온스컨소시엄의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방문 때와 발표 내용은 비슷해 보이지만, 질적으로는 다르다. 시생산에 성공한 이수앱지스는 생산 시설및 공정에 만족한 RDIF 담당자들이 OK사인을 내면, 상업 생산을 위한 다음 준비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이수앱지스 측은 "백신 원액의 상업용 대량생산을 위한 준비가 충분히 돼 있다"고 밝혔다. 

RDIF의 스빈초프-바에바 팀의 이슈앱지스(위)와 제테마 방문 모습/사진출처:이슈앱지스, 제테마

스빈초프-바에바 팀은 한국코러스 컨소시엄에 속한 또다른 업체인 '제테마'도 방문했다. 제테마는 지난달 기술 이전을 위한 3자 협약을 체결했고, 원주공장에 백신 원액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등 생산 준비가 한창 진행중이다. 제테마 관계자는 "백신원액 생산을 위한 관련 설비들이 완료됐고, 최종적으로 5,000리터 바이오리엑터(세포 배양기) 설치 등 상업 생산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두 사람은 이를 직접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백신 생산에 가장 앞서가는 한국코러스는 지난 5일 홈페이지를 통해 "스푸트니크V 백신의 품질을 관리하는 '가말레야 센터'로부터 ‘검증용 백신(밸리데이션 배지) 최종 테스트에서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을 통보받았다"고 발표했다. 이 품질 검증은 의약품(백신) 위탁 생산의 막바지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한국코러스는 지난 4월 스푸트니크V 1,2차 접종분을, 지난달에는 스푸트니크 라이트(1회 접종) 백신에 대한 '배지 물량'을 러시아측에 보냈다. 이로써 한국코러스의 상업 생산 준비는 모두 끝난 것으로 보인다.

한국코러스 홈피 /캡처

마지막 절차는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제조소 인증(GMP 인증)을 받는 과정이다. 그것도 이르면 이달 중에 나올 것으로 한국코러스 측은 기대하고 있다.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우수 의약품품질관리기준)는 의약품 품질을 보증하기 위해 의약품 원료의 구입부터 제조, 출하 등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한 기준이다. 각 국가는 물론,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도 자체적으로 GMP 가이드 라인을 정해 시행하고 있다.

'스푸트니크V' 백신의 긴급 사용 승인을 검토 중인 WHO와 유럽의약품청(EMA)도 러시아 현지 실사를 통해 백신의 생산 공정이 자신들의 GMP 기준을 충족시키는지 여부를 깐깐하게 따져보고 있다. GMP 인증을 받는데 의외로 시간이 많이(수개월) 걸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코러스는 지난 5월 러시아 GMP 인증을 신청했으며, 화상실사 등을 모두 마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공식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방한한 RDIF 대표단과 이 문제를 논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코러스는 지난 2월 방한한 '가말레야 센터' 기술진으로부터 백신 기술을 이전받았으니, 거의 6개월만에 상업적 출하를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RDIF 대표단이 이처럼 국내 위탁생산 업체들을 두루 둘러본 것으로 밝혀진 이상, 그 목적을 추정해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후발주자인 휴온스 컨소시엄의 경우, 생산 시설을 둘러보면서 지금까지 구두 혹은 문서로 협의해온 내용을 확인하는 단계라면, 한국코러스 컨소시엄과는 본격적인 생산 협의를 진행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코러스는 상업 생산을, 시생산이 끝난 이슈앱지스는 생산 공정의 검증을, 제테마는 기술 이전 속도를 앞당겨 생산 가동을 위한 협업을 논의하는 단계로 보인다.

그러나 RDIF측은 지금까지 자사 대표단의 한국 방문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시기적으로 뒤쳐진 휴온스 컨소시엄이 백신 생산에 빠른 성과를 원한다면, 스푸트니크 라이트 생산에 집중해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스푸트니크 V는 아데노바이러스 2종류(Ad26형과 Ad 5형)를 기반으로 한 백신의 약물을 각각 생산해야 하지만, 라이트는 한종류(Ad26) 약물만 생산하면 된다.

러시아 인포프레사에 올라온 RDIF 대표단의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방문에 관한 지난 10일자 기사/캡처

러시아의 일부 언론은 지난 10일 "RDIF 기술진의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의 공장을 방문했다"고 전하면서 "기술이전을 통해 9월부터 '스푸트니크 라이트'의 생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의 스푸트니크V 백신 위탁생산업체에 기대하는 RDIF측의 숨은 의도가 살짝 드러난 것은 아닌지, 두고 볼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