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올해도 일찌감치 독감 예방주사 접종에 들어간 이유
러시아가 올해도 일찌감치 독감 예방주사 접종에 들어간 이유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8.2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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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 변이 확산, 코로나 백신 접종률 저하에 전통적인 호흡기 질환 예방책
코로나 백신 미접종자, 우선 독감 백신 접종, 한달 뒤에 코로나 접종 권고

러시아는 신종 코로나(COVID 19)의 델타 변이 확산에 맞춰 일찌감치 독감(러시아어로는 '그리쁘' грипп) 예방주사 접종을 준비 중이다.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시 보건당국은 내달 초부터 시민들을 대상으로 독감 예방접종을 시작한다. 이미 62만회 분량의 독감 백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 당국은 49만명에 가까운 어린이를 포함, 전체 인구의 최소 60%(320만 명)에게 독감 접종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러시아 중부 우랄산맥 부근의 첼랴빈스크주도 가까운 시일내에 독감 백신을 확보해 주지역 주민의 60%이상에게 접종할 방침이다. 매년 100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독감으로 고통받는 첼랴빈스크주 보건당국은 생후 6개월 미만의 어린이와 의료및 교육, 교통분야 종사자, 지역사회 단체 활동가, 학생, 임산부, 60세 이상 노인층및 만성 질환자들을 무료 예방접종 대상으로 선정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내주부터 독감 예방접종 개시/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두 지역은 이미 공개적으로 독감 예방접종 실시 계획을 공개했다. 러시아의 나머지 많은 지역도 독감 예방접종 대책을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보건·위생 당국인 '로스포트레브나드조르'측은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 시기는 계절적 유행이 시작되기 전인 9~11월이 최적기"라고 조언했다. 한 당국자는 "실제로 9월 초에 예방접종을 시작하는 것은 너무 이르지만, 우리는 국토가 넓고 11월 말까지 예방 접종을 끝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독감 백신은 통상 접종 한달 뒤에나 면역 효과가 나타난다. 

러시아는 일찌감치 독감 예방 접종을 시작한다/사진출처:픽셀 pexels.com 

러시아가 일찌감치 독감 예방접종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또 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매년 겨울에 유행하는 계절성 독감 대응도 만만치 않는 터에 델타 변이까지 겹치면 의료체계상의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다행히 지난 겨울(2020년 11월~2021년 3월)에는 러시아에서 독감이 크게 유행하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했던 그 시절, 독감 환자는 거의 보고되지 않았다.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 신종 코로나 방역 수칙이 독감 유행을 막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러시아는 지난해에도 신종 코로나 확산을 의식해 일찌감치 대대적인 독감 예방접종 캠페인을 벌였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 백신접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이다.

모스크바의 경우,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인구 이동이 많은 지역에 이동식 '독감 접종센터'를 세워 시민들을 붙잡았다. 코로나 백신과는 달리 독감 예방주사에 대한 거부 반응이 거의 없어 지난해 러시아에서는 전체 인구의 54.3%가 독감 예방주사를 맞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 조치의 피로감이 쌓여 지난해와 같은 독감 예방 효과를 각 개인에게서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코로나 백신 접종 캠페인까지 겹쳐 독감 예방접종 실적도 지난해에 못미칠 가능성이 높다. 

현지 의료 전문가들은 코로나 예방접종자에게는 접종 한달 뒤에 독감 예방주사를, 아직 코로나 백신을 맞지 않았다면, 독감 예방주사를 먼저 맞고 한달후에 코로나 백신 접종을 권한다. 

감염병 전문가인 예브게니 티마코프(Yevgeny Timakov) 전문의는 "코로나바이러스와 인플루엔자 감염은 함께 또는 따로따로 이뤄질 수 있다"며 "함께 감염되면, 증상이 더 심각하고 더 많은 합병증을 일으켜 사망률이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 7월 발표된 미국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이 코로나바이러스의 중증 증상을 크게 줄여준다"며 "독감 예방 주사가 두 바이러스를 100% 예방할 수는 없지만, 어떤 경우든 중증 위험도를 낮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7만5,000명을 대상으로 연구, 분석한 결과, 독감 예방주사를 맞은 사람들은 폐렴 등 호흡기 질환과 뇌졸중, 심장마비와 같은 심각한 코로나 증상이 훨신 덜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독감 백신 접종자들이 코로나 감염을 비교적 쉽게 이겨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떤 인플루엔자가 유행할까? 러시아를 비롯한 북반구 주요 국가들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에 따라 백신 생산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보건위생당국(로스포트레브나드조르), 올해 독감 백신에는 새로운 2가지 백신 균주를 포함했다./얀덱스 캡처
스모로딘체프 인플루엔자 연구소/사진출처:트위터 계정 캡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스모로딘체프 인플루엔자 연구소(НИИ гриппа имени А.А. Смородинцева)의 드미트리 리오즈노프 소장은 "독감 바이러스(인플루엔자)는 조류, 돼지와 같은 전통적인 바이러스 운반체와 함께 존재하고 있다"며 "지난해와 같이 쉽게 넘어갈 것으로 단언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WHO가 올해 북반구에서 유행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4개 종을 결정했다"며 "그중 2개 종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으나, 다른 2개종은 새로운 바이러스"라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2개 종의 바이러스가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독감 백신은 통상 3~4개 종의 바이러스 대응 약물로 만들어진다.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 2개 종과 1, 2개종의 B형 바이러스에 효과적인 약물(항바이러스 백신)로 구성되는데, 문제는 새롭게 나타난 2개의 변이 종이다. 

이와 관련, WHO의 베버리 테일러 인플루엔자 소장은 지난 23일 "모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퇴치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올 겨울에 유행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분석 자료가 94%나 감소했다"며 "독감 백신에 대한 효과가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올 겨울 영국에서만 독감으로 최대 6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 겨울 일부 지역에서는 독감과 신종 코로나 유행을 동시에 걱정해야 할 판이다.

세계보건기구, 신종 코로나로 백신 예방접종 효과의 저하를 우려/얀덱스 캡처 

러시아 보건·위생 당국은 올해에도 최소 전체인구의 60%(성인 및 어린이)와 기저질환 환자 등 위험 계층에 대해서는 최소 75%이상 독감 백신을 접종할 계획이다. 특히 감염에 취약한 요양원와 학교 등 집단 거주 공간에 대한 예방 접종을 강화할 방침이다. 만성 질환이 있거나 65세 이상의 노인 계층, 임산부들에게는 꼭 독감 백신을 맞도록 당부했다.

보건·위생 당국의 딜렘마는 대대적인 독감 예방접종 캠페인이 자칫 코로나 백신 접종률을 더욱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공식 집계에 따르면 지난 23일 현재, 러시아의 코로나 백신 1회 접종률은 29%, 2회 접종(완료자)은 23.8%에 불과하다.

모스크바는 지난해 9월 1일부터 독감 예상접종을 시작했다. 당시 독감 접종 캠페인에 동원된 이동접종차량 모습/모스크바시 사이트 캡처

'두개 백신 중 하나만 맞으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일각에서 나오는 것도 보건당국에게는 큰 고민거리다. 전문가들은 독감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서로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지난 겨울 독감 발병은 거의 없었지만, 신종 코로나는 크게 유행했다는 사실을 실례로 들었다. 독감 백신 접종만으로는 신종 코로나 감염을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메치니코프 백신및 혈청연구소의 비탈리 즈베레프 소장은 "인플루엔자와 코로나 백신이 우리 몸안에서 작동하는 면역 체계가 서로 달라 백신의 '교차 면역' 효과를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백신도 매우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거의 모든 인플루엔자 백신은 비활화 방식으로 개발됐다. '죽인'(비활성화한) 바이러스를 기반으로 개발된 비활화 코로나 백신은 러시아의 '코비박'과 미국의 '노바백스' 정도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스푸트니크V', 얀센 등은 아데노바이러스 기반으로, 화이자와 모더나는 mRNA 방식으로 개발됐다.   

지난해 국내 일부병원에서는 독감 예방접종시 폐렴구균 백신을 추가로 맞을 것을 권했다. 신종 코로나 감염을 우려한 예비조치였다. 백신 접종률이 낮은 러시아는 올해 독감과 폐렴구균 함께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감염증 전문가 에브게니 티마코프는 "인플루엔자와 폐렴구균 백신을 함께 접종하면, 폐렴 증세의 급격한 진전과 코로나의 합병증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보다는 코로나 백신을 지금이라도 접종하는 게 당연히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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