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중앙은행이 '제2의 미국발 금융위기' 시나리오를 꺼낸 까닭은?
러시아 중앙은행이 '제2의 미국발 금융위기' 시나리오를 꺼낸 까닭은?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09.08 1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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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해소를 위해 미국이 전격 금리인상에 나설 경우 '최악?' 상정
중앙은, 연례통화정책 전망보고서서 2~3개 거시경제 시나리오 제시

미국이 급격히 상승중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전격적으로 금리인상에 나설 경우, '제2의 미국발 금융위기'가 초래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러시아에서 제기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중앙은행(CBR)은 2일 발표한 연례 통화정책 전망 보고서에서 "인플레이션의 고삐가 풀리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위원회(연준)가 서둘러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라며 "세계 경제는 또다시 금융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오는 2024년까지 거시경제의 흐름을 예측한 이 보고서는 러시아 통화정책 수립의 뼈대가 되는 중요한 자료다.

전면 공개: 중앙은행 새로운 위기 시나리오 작성/얀덱스 캡처

이 보고서에서 주목할 것은 역시 '제2의 미국발 금융위기' 시나리오다. 앞으로 전개될 시나리오 4개중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초래된 지난 2008~2009년의 금융위기와 같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내후년(2023년) 1사분기에 발생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현지 인터넷 매체 rbc는 "러시아 중앙은행은 거시경제 전망에서 2008~2009년의 위기와 비슷한 규모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2023년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을 시나리오중 하나에 포함시켰다"면서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의 심화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현상을 또 다른 시나리오로 제시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해 최악의 시나리오로 '리스크(위험)'를 들었는데, 1년만에 '리스크'를 넘어 금융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전망을 내놓은 격이다. 

rbc는 "지난해에는 코로나 팬데믹과 무역 불균형, 지정학적 긴장, 개별국가의  대외채무 등이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으나, 지금은 세계경제에 누적된 불균형이 시스템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중앙은행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은행, 글로벌 금융위기 시나리오 제시/현지 매체 rbc 관련 기사 웹페이지 캡처

중앙은행의 가장 기본적인 시나리오는 현재의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것으로, 올해말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되면서 세계경제도 회복세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인플레이션 흐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 경우, 러시아의 GDP 성장률은 2022년부터 2~3% 범위에서 안정되고 인플레이션도 2023~2024년 연 6%를 넘지 않으면서 목표인 연 4%로 수렴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경제는 기대대로 움직이지는 않는 법. 중앙은행의 연례 보고서가 금융위기의 최악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다. 

중앙은행은 보고서에서 "내년(2022년)에는 금융시장의 심리가 매우 불안정한 데다, 금융시장의 거품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의 통화 정책이 긴축(금리인상)으로 나아갈 경우, 투자 수익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커질 수 있다"며 "그 결과, 2023년에는 위험 자산의 투매와 대외채무가 심각한 신흥시장 국가들로부터 외환 위기가 시작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팬데믹 과정에서 전세계적으로 공공및 민간부채가 급격히 높아진 상태에서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투자자들이 위험 자산을 투매하고, 대외부채가 많은 신흥국들이 심각한 경제적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곧 세계 경제의 급격한 침제(위기)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중앙은행은 거품이 낀 특정 자산을 지목하지는 않았다. 다만, 투기성 기업 부채의 급증에 주목했다. 국제통화기금(INF)도 앞서 투자등급 상품과 투자위험 상품의 수익률이 지난 2009년 이후 최저치로 좁혀졌다고 지적했다. 각국별로 통화량이 넘쳐나면서 아무 문제가 없는 듯이 투자위험 자산에도 돈이 몰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 국제유가도 현재 70달러 이상에서 2023년 배럴당 40달러로 떨어질 수 있다고 중앙은행은 내다봤다.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 지난 7월 인플레 저지를 위해 기준금리를 1%P 인상한 뒤 '물방울이 맺힌 구름' 모양의 브로치를 착용하고 기자회견장에 나왔다./사진출처:러시아 중앙은행 
러시아 루블화와 신용카드/사진출처:러시아 국가두마(하원) 홈페이지 

중앙은행은 이같은 시나리오가 발발할 경우, 러시아에게는 2015년 이후 세 번째 경제침체가 찾아올 것으로 해석했다. GDP가 1.4~2.4% 마이너스 성장하고, 루블화가 추락하는 전형적인 경제 위기 국면을 맞는다는 것. 금리인상이 불가피하고, 러시아 정부는 위기 타개를 위해 지난해와 같은 대규모 재정 지원(슈퍼 예산)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게 하더라도 러시아 경제는 일러야 2025년 정상화될 것이라고 했다. 

중앙은행은 이같은 위기 발발의 근본 원인을 코로나 팬데믹 과정에서 초래된 세계 경제의 극심한 불균형에서 찾았다. 세계 주요 전문가들이 이미 그 위험성을 여러차례 경고한 바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 로고/

중앙 은행이 내놓은 다른 두 가지 시나리오는 '코로나 팬데믹의 심화'와 '글로벌 인플레이션'이다. 코로나 상황이 악화할 경우, 러시아 경제는 내년 경기 침체(마이너스 0.8% 성장)에 들어가고, 국제유가도 배럴당 45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그나마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학습효과로 지난해보다는 덜 혼란스러울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시나리오는 미국의 금리정책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중앙은행은 지적했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이르면 2022년 2분기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 경제가 어느 시나리오로 진행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미국과 유럽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외신에 따르면 알리안츠 그룹 경제고문인 모하메드 엘에리안, 제러미 시걸 펜실베이나대 와튼경영대학원 교수 등이 물가 상승 흐름의 고삐를 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ING그룹의 카스텐 버젠스키 이코노미스트도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경고했다. 늘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경제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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