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험난한 여정, 러시아 벨라루스 국가연합'- 러시아CIS 토크 제 9호
(기고) '험난한 여정, 러시아 벨라루스 국가연합'- 러시아CIS 토크 제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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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9.12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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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과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9일 '통합을 위한 28개 프로그램'에 합의했다. 양국이 지난 1999년 '연합국가' 창설을 위한 협정에 서명한 지 무려 20여년 만이다. 그만큼 지루하고 험난한 협의 과정을 거쳐왔다는 뜻이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매월 발간하는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최근(9월 1일자, 9호, https://ruscis.hufs.ac.kr) 러시아-벨라루스 통합 문제를 다뤘다. 러시아CIS 정치전공 이하선 대학원생(석 박사 과정)이 쓴 '험난한 여정, 러시아 벨라루스 국가연합'이다. 험난했던 양국의 통합 논의 과정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설명한 논문형 글이다.

양국 정상들의 '통합 프로그램' 합의 이전에 쓴 글이지만, 전체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이 글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러시아CIS 토크' 제 9호(9월 1일자)에 실린 '험난한 여정, 러시아-벨라루스 국가연합'/캡처

러시아-벨라루스 '연합국가' 논의는 지난 1994년 알렉산드르 루카셴코가 벨라루스 대통령으로 집권한 이후 시작돼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양국은 1995년 우호·협력 조약을 시작으로 1999년 '연합국가' 조약을 체결, 국가연합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단일 경제공간’(CES, 시장 단일화 혹은 공동시장)을 구축하기 위한 논의가 본격화되었고, 2005년에는 루블화를 단일통화로 사용하는 협상도 진행되었지만, 발권 은행에 대한 의견 차이로, 화폐통합 논의는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했다.

양국은 2019년 '연합국가 조약 체결' 20주년을 맞아 ‘단일 조세 제도 및 대외무역 체제 통합’ 등을 내용으로 하는 '31개 로드맵'에 합의함으로써 '국가연합' 논의에 가속도가 붙었다. 그러나 2020년 벨라루스 (대선 불복 시위), 2021년 러시아 (반체제인사 나발니의 석방 요구 시위)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서방국가들의 제재조치로 '국가연합' 추진 작업은 일시 주춤했다가 최근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20여 년 동안 러시아-벨라루스간 국가연합의 추진을 자극한 촉진요인과 반대로 그것을 어렵게 한 제약요인은 무엇일까?

◇ 국가연합 추진의 촉진 요인:
① 양국 지도자의 집권 정당성 확보,
② 벨라루스의 대러시아 예속 경제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권력 교체기에는 늘 '국가연합'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지난 1996년 실시된 개헌 국민투표에서 러시아와 동등한 권리를 전제로 하는 통합안을 내세우며 국민의 지지를 얻어냈고, 이후 2001년 대선에서 76% 지지를, 2004년 연임제한 철폐 개헌 국민투표에서는 77.3% 지지를 끌어냈다. 양국간 통합논의가 활발했던 시기였다.

러시아에서도 벨라루스와의 국가연합을 권력 연장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려고 했다. 옐친 전대통령에서 푸틴 대통령으로 권력이 이양된 1999년은 물론, 2008년 푸틴에서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으로 권력이 교체된 시기에도 벨라루스와의 국가연합 논의가 등장했다.

푸틴-루카셴코 대통령 정상회담/사진출처:크렘린.ru

최근에는 푸틴-루카셴코의 1인 장기집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축적된 상황에서 두 지도자 중 한 명이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연합국가 국가원수·수반 혹은 최고평의회 의장 직위를 맡는다면, 반대여론을 잠재우는 동시에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 

두 번째 촉진 요인으로 러시아에 예속된 벨라루스의 경제를 꼽을 수 있다. 벨라루스는 전통적으로 에너지(광물 및 석유화학 제품 원자재)를 러시아로부터 저렴한 가격에 수입해 이를 가공한 뒤 수출함으로써 국가 재정을 충당하는 경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러시아에 의존적 경제구조인 셈이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벨라루스의 대러시아 수출은 130억 달러를 넘어섰다. 지난 5년간 평균 수출액을 능가한 수준이다.

또한, 러시아는 벨라루스에 수년간 자금을 지원하며 경제재건을 도왔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05~2015년 러시아는 벨라루스에 1,060억 달러를 투자했다.

2020년 기준, 벨라루스의 총 외국인 직접 투자액(FDI) 86억 달러 가운데 러시아가 3분의 1을 넘는 35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처럼 벨라루스 경제는 러시아의 에너지 공급과 지원금에 상당 부분을 의존해 왔고, 이 점이 국가통합 추진 과정에서 중요한 촉진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국가연합 추진의 제약 요인:
① 양국의 상이한 국가통합안,
② 벨라루스 내 친러 성향의 여론 감소 

러시아-벨라루스 국가연합의 추진을 제약하는 요인으로는 양국의 상이한 국가통합안(구상)을 지적할 수 있다. 러시아가 주장하는 연합안은 ‘연방제(Federation федерация)’에 가깝다. 반면 벨라루스는 주권국가 간의 결합인 ‘연합(Union/Союз)’ 형태의 국가연합을 추구한다. 

러시아는 2000년대 초반에 벨라루스를 러시아연방에 흡수·통합하는 방식을 제안했다가 벨라루스의 반대에 직면하자, ‘낮은 단계의 연방제’ 성격을 띤 통합안을 제시하며 벨라루스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였다.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합병에 관해 유감을 표명했듯이, 벨라루스는 정치·경제적 주권이 보장되지 않고서는 통합 논의의 장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반면 러시아는 벨라루스가 자국으로부터 상당한 경제적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 50:50의 균등한 통합조건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제약요인은 국가연합에 대한 벨라루스 국민의 여론 추이다. 러시아에 대한 벨라루스의 호의적 인식이 이전보다 감소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러시아 유력 경제지 코메르산트가 지난 2019년 실시한 벨라루스의 대 러시아 인식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와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호의적이다” 라는 응답이 57.6%에 달했다.

그러나 영국 왕립 국제 문제 연구소(ChathamHouse)에 의해 2020년 실시된 벨라루스인 인식조사에서 '러시아와의 국가연합에 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벨라루스는 독립국가로 남아야 한다”라는 응답이 45%, “연합하면 국가 지위를 잃는 것”이라는 응답이 39.4%를 차지했다. 또한, “러시아와 국가연합을 한다면 어떤 형태의 통합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정치적 통합이 없는 경제 통합만을 원한다”는 응답이 42.7%에 달했다.

러-벨라루스 국가연합 28개 프로그램 타결 공동 기자회견/사진출처:크렘린.ru

◇ 러시아-벨라루스 국가연합은 실현 가능한가?

위의 논의를 종합해 볼 때, 러시아-벨라루스 국가연합 추진의 촉진 요인이 아직은 제약요인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덧붙여 국가연합 협상 타결에 추동력을 제공하는 몇 가지 요인이 더 있다.

첫째, 국가연합 논의가 27년째 진행 중이며 제도적 기반이 이미 대부분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정치적 통합을 위한 공동 의회와 헌법이 있으며, 경제통합을 위한 단일 조세 제도, 공동 금융감독체제가 존재하며, 관세통합도 진행되었다.

또한, 벨라루스가 처한 국제적 고립 및 정치·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러시아와의 동맹 관계 유지 및 통합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셋째, 국가연합 추진을 위한 양국 간 고위급·실무그룹 회담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정치통합 안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더라도, 향후 양국의 권력 구도 개편과 국민통합의 도구로서 러시아-벨라루스 국가연합 논의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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