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냉전? -하) 미, 유럽의 '백신 장벽'을 뛰어넘기 위한 묘안도 하나 둘씩 나온다
(백신 냉전? -하) 미, 유럽의 '백신 장벽'을 뛰어넘기 위한 묘안도 하나 둘씩 나온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11.11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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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V 백신 접종자들, mRNA 백신 부스터샷 접종시 유럽 '그린 패스' 발급
러시아에선 서방 백신 접종을 위한 '백신 여행' 유행 - 애타는 스푸트니크V 접종자

#1
지난 8일 미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사람들이 기쁨에 겨워 포옹하는 사진들이 외신을 타고 전세계로 타전됐다. 미국이 신종 코로나(COVID 19)의 확산으로 빗장을 건 국경을 이날 다시 열면서 2년여만에 유럽 등지에서 날아온 부모 형제 자매와 재회하는 사람들이었다. 

#2
유럽행 '백신 여행' 상품을 팔고 있는 러시아 여행사 '루스키 엑스프레스'에는 8일에도 여행 예약및 문의가 밀려들었다. 미국과 유럽이 '위드 코로나 정책'과 함께 백신 접종자들에 한해 국경을 개방하자, '스푸트니크V' 백신을 접종한 러시아인들이 서둘러 '서방 백신'을 맞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다.

'위드 코로나'는 러시아와 서방의 풍경을 서로 다르게 바꿔놓았다. 서방은 코로나로 막혔던 미국 국경이 열리면서 환호하지만, 러시아는 또 하나의  '백신 장벽'에 갇혀버린 꼴이다. 급기야 탈출구를 찾아 유럽행 '백신 여행'에 나서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절대 아니다. 

러시아의 신종 코로나 PCR 검사 안내 표지판. 코로나가 의심스러울 경우 PCR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자막이 떠 있다/현지 매체 rbc 동영상 캡처

미국은 8일을 기해 신종 코로나 백신을 접종한 외국인들에게 국경을 열었지만, 러시아는 그 대상에서 제외했다. '스푸트니크V' 백신 등 러시아 백신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현지서 어쩔 수 없이 '스푸트니크V' 백신을 접종한 러시아 교민들은 국내 입국시 '격리 면제'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세계 최초의 백신이라고 자랑한 '스푸트니크V'는 이미 전 세계 70개국에서 상용화됐지만, 아직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 세계보건기구(WHO)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스푸트니크V' 백신은 이미 멕시코 등 남미와 중동, 아시아 국가등에 수억 도즈(1회 접종분)공급됐는데, 미국이나 유럽 입국시 '백신 미 접종자' 취급을 당하고 있다.

러시아 백신 접종/사진출처:소뱌닌 모스크바 시장 블로그

'백신은 백신인데, 백신이 아닌' 스푸트니크V가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길은 없을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러시아 측이 자존심을 접고 EMA나 WHO가 원하는 자료를 모두, 빠른 시일내에 제출하고, 검증을 받는 길이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자칫하면 백신 개발 플래폼의 모든 노하우와 비밀을 서방측에 누출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방법은 외교적으로 상대 백신을 인정하는 것이다. 미 우주인들이 러시아가 만든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갔듯이, 미국인들이 러시아 항공기 제작사가 만든 여객기를 타고 하늘을 날듯이, 러시아를 '백신 강국'으로 인정하고 개발된 백신도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이를 위한 협상도 물밑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하일 무라쉬코 러시아 보건부 장관은 지난달 초 미국 대표들과 코로나 백신 접종 증명서를 서로 인정하는 문제를 논의했다고 한다. 무라쉬코 장관은 회담 후 기자들에게 "미국 대표들이 러시아의 주장을 경청했다"고 "미국의 결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측이 답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미국과 러시아의 현 외교관계를 고려하면, 미국으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하기 어렵다. '스푸트니크V' 백신을 접종한 제3세계 국가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유엔 총회에서 상호주의에 바탕을 둔 백신의 상호 인정 문제를 꺼내고,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 문제 해결의 시급함을 거듭 주장했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그친 느낌이다.

모스크바를 방문한 번스 CIA국장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사진출처: 러시아 안보회의

그만큼 양국의 외교적 소통은 꽉 막혀 있다. 양국은 러시아의 크림병합과 미 대선 개입 등으로 '신냉전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최근에는 상대국 주재 외교관 규모를 둘러싸고 끝없는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의 특사 급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윌리엄 번스 CIA국장이 푸틴 대통령과 직접 전화 담판(?) 벌일 만큼 양국 관계는 꼬일대로 꼬여 있다. 미국으로서는 백신 상호 인정 문제를 포함해 양국간 현안을 한꺼번에 패키지로 푼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유럽과도 백신 상호 인정 문제가 협상 의제에 올라 있다. 드리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EU와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는 지난 7월 '그린 패스'(백신 여권:디지털 코로나 백신 접종 혹은 감염후 완치 확인서) 제도를 도입하면서 러시아 등 다른 국가들에게 공조 체제 구축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린 패스'를 통해 역내는 물론, 역외에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러시아측에게는 '스푸트니크V' 백신 접종을 인정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마르쿠스 에더러 주러시아 EU 대사의 rbc 인터뷰/웹페이지 캡처

그러나 협의는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르쿠스 에더러 주러시아 EU 대사는 지난달 10일 러시아 온라인 매체 rbc와의 인터뷰에서 "EU는 지난 7월 러시아와 EU의 '그린 패스'를 상호 인정하는데 필요한 모든 자료와 정보를 러시아 보건부에 제공했으나 러시아측으로부터는 같은 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에더러 대사는 "러시아외에도 이스라엘과 터키, 북마케도니아 등 16개국에서 같은 조치가 취해졌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측이 그린패스 상호 인정을 위한 자료를 EU측에 넘겨줬다는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절충해 나가는 것 같다. 예컨데 국제스키연맹(FIS)은 '스푸트니크V' 백신을 승인하고, 11월부터 열리는 대회에 '스푸트니크V' 접종자의 참가를 허용했다. 그러나 대회 주최국의 규정을 우선시한다고 했다. 주최국이 대회 참가를 막으면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대회를 개최하는 국제빙상연맹(ISU)도 스푸트니크V 백신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랑프리 2차 대회를 개최한 캐나다가 세계정상급 러시아 피겨 선수의 입국을 막았고, 러시아측과 ISU의 강한 반발에 '입국후 사흘간 격리'를 조건으로 비자를 발급하기도 했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찾은 곳은 관광대국 이탈리아다. 스푸트니크V 접종자들이 mRNA 백신(화이자와 모더나)으로 부스터샷(재접종)을 맞을 경우, '그린 패스'를 발급하겠다는 것이다. 중부 유럽의 오스트리아도 같은 조치를 검토중이다. 

이탈리아, 스푸트니크V 접종자들에게 (mRNA) 부스터 접종 후 증명서(그린 패스) 발급/얀덱스 캡처
오스트리아 보건부:스푸트니크V 접종자, mRNA 백신의 추가 접종 후 백신 증명서 받는다/얀덱스 캡처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이탈리아 로베르토 스페란자 보건장관은 지난 5일 EU에서 승인되지 않은 백신의 접종자들도 mRNA 백신을 추가 접종할 경우, 이탈리아 '그린 패스'를 발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당초 이탈리아는 자체적으로 '스푸트니크V' 백신 접종자에게도 '그린 패스'를 발급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막판에 접었다고 한다. 유럽의약품청과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푸트니크V 백신 접종자가 '이탈리아 그린 패스'를 받으려면 접종 완료 후 6개월 이내에 mRNA 백신를 추가로 맞아야 한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스푸트니크 V' 백신 접종자가 mRNA 백신을 추가 접종한 뒤 충분한 중화 항체의 존재가 확인되면 그 자리에서 '그린 패스'를 받을 수 있다. 오스트리아는 지난 8일부터 호텔과 레스토랑, 미용실 등에서 '그린 패스'를 의무화했다. 또 러시아 등 역외 국가들과 항공  운행 제한을 9일 해제했다. 

서방측의 이같은 조치에 러시아는 '서방 백신'을 맞기 위해 해외로 나가고 있다. 한마디로 '백신 여행'이다. 발칸반도의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등이 '백신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외국인들에게도 백신 접종이 무료이기 때문이다. 사흘간의 '백신 여행' 상품 가격은 대략 3만6천 루블(약 60만 원) 정도다. 

여행협회, 러시아인 사이에 늘어나는 '백신 여행' 수요 밝혀/얀덱스 캡처 

러시아 하원 외교위원회 레오니드 슬루츠키 위원장은 "스푸트니크V의 효과성과 안전성은 전문가가 검증했을 뿐 아니라 실제 사례로도 증명된 것"이라며 미국의 '백신 장벽'을 비판했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은 러시아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백신 장벽'을 넘기 위한 방법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는 게 다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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