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동계올림픽 앞두고 '부상' 경계령이 내려진 러시아 피겨 선수들
베이징동계올림픽 앞두고 '부상' 경계령이 내려진 러시아 피겨 선수들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11.21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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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소바, 부상으로 그랑프리 도쿄대회 불참, 우사체바는 연습중 부상 휠체어 신세
투트베리제 코치 사단 소속 선수들의 '오징어 게임'식 경쟁에 희생 - 자성 목소리도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러시아를 넘볼 수 있는 나라나 선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양궁을 떠올리게 하는 종목이다. 동계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보다 더 경쟁이 치열한 게 소위 '국가대표 선발전'이다. 일단 국가 대표로 대회에 출전하면, 당일의 컨디션에 따라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챔피언 자리가 동료들간의 경쟁에 의해 가려지기 때문이다.

내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러시아 피겨선수들은 신구 조합이 거의 완벽하다. 기량이 절정에 이른 시니어 데뷔 3년차인 '여자 피겨 3인방'(셰르바코바, 코스토르나야, 트루소바)를 중심으로, 위로는 '트리플 악셀의 황후'로 불리는 엘리자베타 툭타미셰바(24)가 건재하고, 아래로는 2021~2022년 국제빙상연맹(ISU) 그랑프리 시즌에 시니어로 데뷔한 '신예 3인방'(발리예바, 우사체바, 흐로미흐)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20일 막을 내린 그랑프리 5차 대회(우승자 셰르바코바)까지, 출전한 4개 대회에서 모두 3위 아래로 떨어져본 일이 없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4차 대회에서는 부상으로 아예 출전을 포기(트루소바)하거나, 연습중 다쳐 기권(우사체바)하는 바람에 1~3위권에 러시아 선수의 이름이 오르지 못했다.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금, 은메달을 차지한 트루소바(오른쪽), 우사체바가 투트베리제 코치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사진출처:@팀트루소바 인스타그램 캡처

베이징동계올림픽을 3개월 가량 앞두고 부상은 러시아 피겨스케이팅의 가장 큰 현안으로 부상했다. 가장 큰 이유로는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피나는 경쟁을 들 수 있다. '목숨을 건 오징어 게임을 연상시킨다'(러시아 스포츠 매체 스포르트-엑스프레스), '마치 눈사태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는 것과 같다'(미 NBC 방송의 피겨스케이팅 해설가 조니 위어) 등의 비유마저 나온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에게 부상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쿼드러플(4회전) 점프 등 새로운 고난도 기술을 배우거나 연습하던 중 삐끗하면 크게 다치기 마련이다. 소치동계올림픽 출전 선수를 지도했던 톰 자크라섹(미국) 코치는 “쿼드러플(4회전) 점프 연습을 하다가 넘어지면 체중의 7배 정도 충격을 받는다"며 "잘못 넘어지면 창자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여자 피겨 3인방'중 '쿼드러플 점프의 여왕'으로 알려진 알렉산드라 트루소바는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4회전 점프를 딱 한번만 뛰었다. 발목 부상 때문이다. 연습 때마다 4회전 점프를 4~5번씩 뛰다가 결국 탈이 났다. 그녀는 도쿄 그랑프리 4차 대회에는 출전을 아예 포기했다.

더욱 충격을 준 것은 도쿄에 간 '신예 3인방' 중 한명인 다리아 우사체바(러시아 발음으로 우사쵸바 Дарья Романовна Усачёва 다)가 연습 중에 쓰려진 뒤 코치에게 안겨 밖으로 나간 일이다. 한국의 유영 선수가 동메달을 차지한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우사체바는 트루소바가 빠진 틈을 타 그랑프리 대회 첫 금메달을 노렸으나, 불운하게도 연습 도중 발목을 다쳐 기권해야 했다. 

우사체바 선수가 점프후 착지 과정에서 넘어지는 장면/트윗 동영상 캡처

스포르트-엑스프레스 등 러시아 스포츠 매체들은 우사체바의 부상을 계기로 러시아 피겨 여자 싱글 부문의 '오징어 게임'식 경쟁을 집중 보도했다. 피나는 경쟁의 중심에는 세계 피겨계를 주름잡는 '에테리 투트베리제 코치'가 있고, 그녀의 성적 지상주의가 어린 소녀들의 부상을 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투트베리제 코치 사단'에 소속된 선수들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그랑프리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난도 기술을 시도하고 훈련하다 보니, 몸이 남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상을 당한 뒤 안겨서 밖으로 나가는 우사체바/트윗 캡처
휠체어를 타고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한 우사체바/유튜브 캡처

한 매체는 대표적인 예로 '쿼드러플 점프의 여왕' 트루소바를 꼽았다. 트루소바는 지난해 여름 '투트베리제 사단'을 떠나 '에브게니 플류센코 코치' 휘하에 들어갔다가 1년만에 되돌아왔다. 트루소바가 투트베리제 코치와 결별한 것은 '4회전 점프'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투트베리제 코치도 처음에는 4회전 점프를 3회 이상 뛰지 못하도록 말렸다는 것. 하지만 되돌아온 뒤 연습 때마다 4회전 점프를 4~5차례씩 뛰었고, 결국 발목에 무리가 왔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러시아 '여자 피겨 3인방'과 '신예 3인방' 모두 '투트베리제 사단' 소속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금, 은메달을 차지한 자기토바와 메드베데바 역시 투트베리제 휘하에 있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투트베리제 코치는 4년 전 자신이 속한 모스크바 스포츠 클럽 '삼보-70'을 '공장'으로, 피겨 선수들을 '(공장) 제품'으로 표현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 생각은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녀와 '삼보-70'은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가능한 모든 메달을 따는 것을 당면 목표로 삼고, 셰르바코바와 발리예바, 트루소바, 흐로미흐, 또는 우사체바를 대표 선수로 내세우고 있다.

투트베리제 코치가 이렇게 달라진 것은 '여자 피겨 3인방'의 등장과 함께였다.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 평창올림픽 은메달의 에브게니아 메드베데바, 평창동계올림픽의 '깜짝 금메달' 알리나 자기토바의 전성시대에만 해도 그녀는 정상적인 피겨 훈련 과정을 중시했다고 한다.

평창동계올림픽 금메달 자기토바와 은메달 메드베데바/사진출처:인스타그램

하지만 다음 세대인 트루소바, 알료나 코르토르나야, 안나 셰르바코바가 '피겨 차기 여자 3인방'으로 등장하면서 세 선수를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은 듯이 다그치고 또 단련을 시작했다. 그 결과, 2019~2020년 시즌은 이들 3인방이 세계 피겨스케이팅을 석권했다.

신종 코로나(COVID 19) 사태로 지난해 한 시즌은 통째로 그냥 지나갔지만, 그 사이에 투트베리제 코치는 '신예 3인방' (발리예바, 흐로미흐, 우사체바)를 '새 상품'으로 내놓았다. 이들은 더욱 강력한 4회전 점프로 무장했고, 발리예바는 데뷔 첫 대회(그랑프리 2차 대회)부터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렇다면 '베이징동계올림픽의 꽃'이 될 피겨 여자 싱글 금메달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오징어 게임'을 치르듯이 경쟁하는 러시아 피겨선수들은 트루소바와 우사체바의 부상 소식에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을 수도 있다. 강력한 경쟁상대 2명은 일단 제 컨디션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랑프리 대회를 두차례 우승한 셰르바코바는 가장 어려운 점프인 '러츠'를 쿼드러플(4회전)으로 뛰면서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시작한다. 비록 5차 그랑프리 대회에서는 첫 점프에서 넘어지면서 체면을 구겼지만, 그건 그날의 운에 불과하다. 그녀는 이미 '쿼드러플 플립'은 완전히 소화한 상태. 여기에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트리플 러츠+트리플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와 트리플 러츠+싱글 오일러+트리플 살코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금메달을 따냈다.

신예 3인방의 선두주자 카밀라 발리예바/사진출처:@발레예바 인스타그램
그랑프리 2관왕 셰르바코바/사진출처:인스타그램

이에 맞서는 세계기록 보유자 발리예바는 '살코'와 '토루프'를 쿼드러플(4회전)로 뛴다. 그랑프리 2차 대회에서 프리스케이팅 180점을 돌파(세계기록)한 이유다. 

여자 싱글에서도 4회전 점프는 이제 대세가 됐다. 그러나 ISU의 쇼트프로그램에서는 4회전 점프가 허용되지 않는다. 트리플 악셀이 고난도 기술에 속한다.

우사체바가 도쿄 그랑프리에서 연습 중에 쓰러진 것도 트리플 악셀 때문이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우사체바가 트리플 악셀에 매달리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고 했다. 시니어 무대 데뷔 동기인 발리예바와 흐로미흐에 비하면 기술적 측면에서 뒤떨어지는 그녀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트리플 악셀'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그녀로서는 '트리플 악셀'을 성공적으로 구사하지 못할 경우, 올림픽 메달은 물건너 간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왔을 것이라고 했다. 동기인 발리예바는 쇼트프로그램에서 더블 악셀로 시작한다.

러시아 피겨 클럽 '체카'의 세르게이 다비도프 코치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트리플 점프는 더 이상 의미를 갖기 힘들어졌다"며 "이제 여자 싱글도 '울트라 점프 시대'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여자 피겨도 부상 위험에 완전히 노출된 것이다. 부상은 결국 선수 본인과 부모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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