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판정승으로 드러나는 미러 첫 화상 정상회담 - 후속조치도 가시화
푸틴의 판정승으로 드러나는 미러 첫 화상 정상회담 - 후속조치도 가시화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1.12.12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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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프리드 미 국무부 차관보, 13~15일 모스크바 키예프 방문, 새 고위급 협의체 조율?
화상 정상회담의 분석및 평가 며칠째 이어저 - 러 외무부 '안보 보장책' 관련 성명도

7일 처음으로 비대면 화상 형식으로 진행된 미-러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가 차근차근 이뤄지는 느낌이다. 푸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간의 첫 화상회의가 끝난 뒤 주요 외신들은 양국에서 나온 짧막한 보도문 분석을 통해 양 정상이 우크라이나 위기 사태에 대해 서로 자기 주장만을 강하게 내세우는 선에 그쳤다고 전했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의 외교담당 보좌관 유리 우샤코프는 정상회의가 끝난 직후 타스통신에 "회담의 결과를 논평하는 건 시기상조"이라면서도 "양측 모두 정상회담에 만족하지 못했다고 본다"고 평가한 바 있다. 

바이든 미 대통령과 화상 정상회담을 갖는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하지만, 양국 정상이 우크라이나 위기 사태를 외교적인 수단으로 푼다는데 공감하고, 이를 위한 대화 창구 마련에 나선 것은 나름 '진전'으로 볼 수 있다. 회담이 끝난 지 사흘이 지나면서 눈에 보이는 후속조치가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과 같은 중요한 만남이 이뤄지면, 공동이든 개별이든 기자회견을 통해 논의 내용과 그 결과를 설명하기 마련이다. 기자들은 그 기자회견을 통해 협상 결과를 분석하게 되는데, 7일 회담은 화상으로 이뤄지는 바람에, 아예 정상들과 만나지도 못했다. 미 백악관이 회담 내용을 요약한 성명서(보도자료)를 먼저 뿌렸고, 뒤이어 크렘린도 보도자료를 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미러 양국 기자들은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상회담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정상회담 관련 기사가 지난 며칠동안 꾸준이 나오게 된 이유다.

미-러 정상회담에 따른 후속 조치를 먼저 내놓은 측은 상대적으로 더 답답한(?) 러시아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외무부는 10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 러시아 표현으로는 그루지야) 추가 확장과 러시아 인접 지역으로의 공격 무기 배치를 금지하는 법률적 보장책을 요구하는 '안보 보장책 마련'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 명분은 '분리될 수 없는 안보 원칙'이다. '한 국가의 안보 보장을 위해 다른 국가의 안보가 희생되어서는 안된다'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합의 사항을 제시한 것이다. OSCE 정상들은 지난 1999년 이스탄불에서 채택한 유럽안보헌장에서 '참여국들은 다른 나라들의 안보를 희생해 자국의 안보를 강화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바 있다. OSCE는 나토 회원국과 옛 소련 국가를 포함한 유럽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범유럽 안보협의체다. 1994년 부다페스트 정상회담에서 OSCE로 정식 출범했으며, 현재 러시아와 미국 등 57개국이 가입해 있다. 

푸틴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면/사진출처:크렘린.ru

'안보 보장책 마련'에 관한 러시아 외무부의 성명은 미러 정상이 7일 화상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안보 관련 제안서 초안을 전달하기로 한 합의에 따라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성명을 기반으로 한 러시아의 안보 관련 제안서가 미국에 전달되고, 미국도 대응 문건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 이튿날인 8일 흑해 휴양도시 소치에서 방러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와 회담한 뒤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문제(위기)를 논의하기 위한 안보 관련 제안서 초안을 작성한 뒤 일주일 내에 미국에 전달할 것”이라고 확인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도발적'이라고 생각/얀덱스 캡처

푸틴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내년에) 공격할 계획인가'라고 묻자 "도발적인 질문"이라고 발끈하면서, 전날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 중 하나로 짐작되는 '안보 관련 제안서' 작성및 전달 계획을 공개했다. 그는 또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이 (안보 관련)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룰 조직을 만들기로 합의했다고도 했다.

제안서에 담긴 나토의 추가 확장 금지는 러시아가 지금까지 주장해온 나토의 '동진 정책' 포기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유럽의 안보를 위해 '우크라이나와 조지아(그루지야)가 나토 회원국이 될 것'이라고 한 2008년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나토 정상회의의 결정을 공식적으로 철회하라는 주장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위기를 불러온 본질적인 문제나 다름없다.

그런 만큼 해결 자체가 녹록치 않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8일 기자회견에서 나토 확장 금지 요구와 관련, “러시아의 우려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나토 회원국들의 집단적 의사를 무시할 수 없다. 나토의 집단 의사를 대변하는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10일 올라프 숄츠 신임 독일 총리와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나토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는 나토 회원국 30개국과 우크라이나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며 러시아의 요구를 일축했다. 

미러, 우크라이나 정세의 정상화를 위한 협상 채널 되살린다/얀덱스 캡처

하지만, 양국이 이 문제에 대해 외교적 해법을 찾기로 한 것은 분명히 성과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뿐만 아니라 최소 4개 나토 동맹국과 러시아가 참여하는 고위급 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오는 10일까지 발표할 것”이라며 시한까지 제시했다. 정상회담 직후 나온 양국의 보도문에도 미국 동맹국들과 함께 고위급 실무 회담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대목이 들어 있었다.

고위급 실무 회담의 주체나 형식은 아직 모호하다. 대체적인 윤곽은 13~15일로 예정된 카렌 돈프리드 미 국무부 유럽· 유라시아 담당 차관보의 모스크바와 키예프 방문을 통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돈프리드 미 국무부차관보, 모스크바와 키예프 방문/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11일 돈프리드 차관보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방문 계획을 발표하면서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과 우크라이나의 주권, 독립 및 영토 보전을 위한 미국의 공약 강화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이 밝힌 '나토 4개 동맹국 + 러시아' 고위급 회담 조율을 위해 양국을 찾는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가장 유력한 형식은 역시 기존의 '노르망디 형식의 4개국 회담'에 미국이나 영국을 포함하는 6자, 혹은 7자 회담이다. '노르망디 형식의 회담'은 당사자(러시아, 우크라이나)와 독일, 프랑스가 참여하는 4자회담이었다. 이 회담은 가까스로 '민스크 협정'이라는 성과물을 내놓왔으나, 현재는 유명무실한 상태다. 이 협정의 불씨를 살리려면 미국이 회담 테이블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게 국제적 역학관계다. 

러시아는 이미 미국의 참여를 지지했다. 올레그 크라스니츠키 러시아 외무부 유럽 제3국장은 8일 미국의 '노르망디 형식의 회의' 합류에는 걸림돌이 없다고 말했다. 독일과 프랑스도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우크라이나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정부는 '노르망디 형식의 회담'과 '민스크 협정'에 불만을 갖고 있다. 민스크 협정의 내용을 아예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편다. '새 고위급 회의체'의 출범은 돈프리드 미 차관보가 키예프 방문에서 우크라이나를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새 협의체가 출범하면, 러시아는 무력 시위를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다시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성과를 거둔 셈이 된다. 북한이 자주 쓰는 '벼랑 끝 전술'이나 다름없다. 미국으로서는 유럽에서 러시아와의 대치를 끝내고, 다시 중국문제에 외교적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된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해소했다는 '미국 역할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받을 수 있다.

미 국무부:바이든 대통령 정상회담서 어떤 조치의 체결도, 양보도 하지 않았다/얀덱스 캡처
6월 제네바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나누는 푸틴-바이든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엄밀히 말하면 러시아측의 판정승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미 바이든 대통령이 화상 회담 중 러시아에 '중요한 외교적 양보'를 했다고 지적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이 10일 이를 즉각 부인하며 미국이 어떠한 양보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지만, '새 고위급 협의체' 발족 합의만으로도 러시아는 실익을 거둔 게 틀림없다. 거꾸로 동유럽의 나토 회원국 반발이 거세자, 바이든 대통령이 체코와 에스토니아 등 9개 동유럽 국가 정상과 전화통화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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