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의 우크라이나 치킨게임, 그 의미와 향방은? 한국외대 '러시아CIS 토크'을 보니
미러의 우크라이나 치킨게임, 그 의미와 향방은? 한국외대 '러시아CIS 토크'을 보니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1.03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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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해 가을부터 슬금슬금 제기되기 시작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설'은 미국과 러시아 정상들간의 두 차례 접촉(12월 7일 미러 화상회담, 30일 전화통화)에도 뚜렷한 해결점을 찾아내지 못한 채 해를 넘겼다. 오는 10일부터 미·러, 러·나토 간에 실무급 안보협상이 열리지만, 타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것으로 기대하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소위 '치킨게임'에 접어든 상태에서 진행되는 협상은 '자존심 싸움'까지 겹쳐 막판 절충점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양 측이 협상 국면에 들어선 만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러시아와 나토가 당장 군사적으로 충돌하지는 않을 것이다. 30년 가까이 북·미 간에 진행된 지루한 북한 핵 협상을 지켜본 우리에게는 그러한 심증이 더욱 굳을 수 밖에 없다. 그것도 상대가 러시아 아닌가?

협상의 진전 여부에 따라 국제사회는 앞으로도 일희일비하는 경우가 적지 않겠지만, 그것마저도 '밀고 당기는' 협상 전략이라는 시각에서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매월 발간하는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2022년 새해 첫호(2022년 1월 1일자, https://ruscis.hufs.ac.kr)에서 '미·러의 우크라이나 치킨게임'을 다뤘다. 러시아CIS 정치 전공 강승주(석사 과정)가 쓴 '미러의 우크라이나 치킨게임, 그 의미와 향방은?'이다. 이번 사태를 대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략적 이익과 포석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이 글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최근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세계의 이목은 지난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했을 때만큼이나 뜨겁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러시아를 겨냥해 우크라이나 접경지대로의 군사력 증강을 강력히 경고했고,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은 2022년 1월 말이나 2월 초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을 주장하며, 예상 공격 경로가 담긴 지도까지 공개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 달(12월) 7일 화상 정상회담을 개최했으나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했다. 이후 러시아는 크림 병합 당시 핵심역할을 담당했던 전술부대를 접경지대에 추가 배치하는 가운데, 미국· 나토(NATO)와 안보 협상의 초입에 돌입했다. 

그렇다면 현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이해 당사국들은 어떤 전략적 포석을 갖고 접근하고 있을까? 이번 갈등이 (국내에서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입장을 중심으로 보도되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이익에 초점을 맞춰 사태를 조망하고자 한다.

◇ 러시아의 의도 

먼저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의 '동진(東進) 차단'을 지적할 수 있다. 과거 소련은 독일통일을 용인하는 대신 나토가 추가 동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하지만 소련 해체후 러시아의 국력이 쇠퇴한 시기에, 나토는 폴란트와 체코를 넘어 발트 3국까지 확장했다. 만약 이번 사태가 러시아가 바라는 쪽으로 안보협상이 타결되는 등 외교적 해법으로 봉합된다면, 러시아는 자국의 핵심이익 지역으로까지 확장하려는 나토를 저지하는 동시에 협상에 따른 '레드라인'을 서방으로부터 공인(혹은 묵인)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우크라이나 무력 충돌지역인) 돈바스의 사태 해결을 위해 조직된 '민스크 회담'에서 우크라이나가 강력히 요구하는 미국의 참여를 봉쇄시킬 수도 있다. 

EU의 분열도 유도할 수 있다. (과거 소련의 일부이거나 영향권 하에 있었던) 폴란드와 발트3국 등 러시아와 대척점에 위치한 국가의 대러시아 외교안보 정책에서 EU 회원국간에 이견이 종종 목격된다.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해저 가스관) '노드스트림-2' 건설을 앞두고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사업 추진 국가와 폴란드·발트 3국 간에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이견이 발생했듯이, 이번 사태 대응에서도 EU는, 미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입장 차이로 인해 대러 에너지 (수급) 문제를 고려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EU 내부의 균열과 워싱턴 측의 대EU 관리 역량 저하로, 우크라이나 사태는 모스크바 측이 의도하는 방향대로 흘러갈 수 있다. 또한 사태 장기화에 따른 가스 가격 인상및 공급 불안은 북서부 유럽 국가들에게 러시아-우크라이나 발 안보 피로감을 증대시킬 가능성이 높다.

◇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정부의 속셈

군사위협을 받은 우크라이나에게 전략적 이익이란 단어는 모순적일 수 있으나, 이번 사태는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가치를 재차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나토의 입장에서 볼 때, 우크라이나는 동(러시아)과 서(유럽)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성상,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저지하는 최전선이자 완충지대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키예프 측에게는 실제 전쟁으로 번지지 않는 범위 내의 갈등은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가치를 높여 서방으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유인할 수 있다. 젤렌스키 정권 차원에서도 그런 상황은 유익하다. 대선 레이스 때부터 돈바스 문제의 해결을 강조해 왔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사태 해결의 전환점이 불명료한 상황 속에서 반러 노선을 선명하게 부각시킴으로써 국정운영의 동력 확보와 함께 2024년 대권 재도전에 기회적 요인으로 활용하려는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 우크라이나 사태 전망

이번 사태는 이미 '치킨게임' 양상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미국과 러시아 양국 모두 쉽게 물러서기 힘든 구조가 되었다. 다만, 일각에서 제기하는 2022년 1~2월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한 개인적 입장은 회의적이다. 양국 모두 국내정치와 외교, 경제, 군사 안보면에서 전쟁의 후과가 상당할 뿐 아니라, 자칫 이번 갈등은 과거의 대리전보다 한 단계 더 격상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1~2월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서방 진영의 군사안보적 반격과 강력한 경제제재로 러시아는 더욱 고립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러시아가 당장 원하는 시나리오가 아니다. 미국에게도 인도·태평양지역 이외에 새로이 전선을 확대하는 것은 부담이 된다.

◇ 동북아와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

현 상황에서 미국이 러시아가 지난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했을 때처럼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면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가 있다. 미국이 러시아가 제시한 안보협상안을 쉽게 수용할 수 없는 이유다.

또한,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라시아 외부세력(미국과 유럽)과 내부 세력(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지정학적 단층지대에서, 한국은 동쪽, 우크라이나는 서쪽 단층 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러시아 간의 지정학적 단층 지도

유럽에서 발생한 미·러 갈등은 해당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이후 서방 진영이 가한 경력한 제재로 러시아는 서쪽으로 향하는 길이 막히자 동쪽으로 눈을 돌렸다. 푸틴 대통령이 신동방정책을 강화한 것이다. 우리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끝까지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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