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이 촉발한 카자흐스탄 시위 사태, 정치적 요구 수용 여부가 관건?
코로나 팬데믹이 촉발한 카자흐스탄 시위 사태, 정치적 요구 수용 여부가 관건?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1.06 0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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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카예프 대통령, 나자르바예프 초대대통령 안보위 의장 해임 등 시위대 요구 수용
비상사태 통금 선포로 긴급 대응 나서 - 시위대와 진압 경찰 충돌로 부상자 속출도

소련해체 후 30년간 중앙아시아 5개국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성장을 구가해온 카자흐스탄이 새해 벽두부터 자동차용 LPG(액화석유가스) 가스값 폭등이 촉발한 대규모 시위에 직면, 정국이 대혼란에 빠졌다.

카자흐스탄 국부로 추앙받는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의 동상에 밧줄이 걸려 있다. 시위대는 나자르바예프 동상 철거에 나섰다/러시아 매체 rbc 유튜브 캡처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내각(행정부)이 총사퇴한데 이어 국가가 LPG와 휘발유, 경유 가격을 통제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일단 역부족으로 보인다. 특히 옛 수도이자 경제적 거점 도시인 알마티의 시위대 일부가 이 나라의 '국부'로 불리는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과 그의 세력)의 완전 퇴진을 요구하는 '샬 케트'(할아버지, 나가세요) 구호를 외치며 중앙광장에 서 있는 그의 동상 철거에 나서 카자흐스탄은 '과거 청산'의 갈림길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시위대가 이미 일부 도시의 시청사에 불을 지르거나 점거하고, 알마티에서 옛 대통령 관저(궁)로 난입하는 등 폭력적 과격시위가 더욱 확산될 경우, 카자흐스탄은 걷잡을 수 없는 정치적 혼돈 상태로 빠져들 것으로 우려된다. 자칫하면 키르기스스탄 등 인근 국가들이 경험한, 시위로 인한 대통령 퇴진과 이에 따른 헌정 중단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카자흐스탄 독립국가의 초대헌법(1993년 헌법)으로의 회귀와 정권 교체, 아킴스(지방자치단체장)의 직접선거 등 정치적 구호가 시위대에서 터져나오는 것은 불안 요인이다.

토카예프 대통령의 대국민연설/러시아 TV채널 NTV 캡처
알마티 도심의 시위대 모습/NTV 캡처

이번 사태 해결의 키를 잡고 있는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지난 2019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사임과 함께 그의 후계자로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실권은 국가안전보장위원회 의장과 집권당 의장 등 주요 직책을 맡은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세력에 있다는 설이 파다했다. '샬 케트'(할아버지, 나가세요)라는 구호가 등장한 이유다.

그러나 현지 전문가들은 "시위를 주도하는 특정 세력이나 지도자가 없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가 우발적"이라며 "당국이 시위대의 도발을 적절하게 제어한다면, 상황은 가까운 시일 내에 안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특정한 정치적 요구가 그리 거세지 않고, 제때 비상 사태가 선포됐다"며 과거의 졍제적 요구 시위처럼 끝날 것"이라고 했다. 

퇴임 직후 '국부'로 추앙받은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1991년 12월 소련 해체를 촉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 3국의 '벨로베슈스카야 협정' 서명을 요청받았으나 거부하고, CIS 체제 출범 뒤 카자흐스탄 공산당 1서기에서 독립국가의 초대 대통령으로 성공적으로 변신했다. 이후 30년 가까이 장기집권하면서 시장경제로의 개혁과 개방을 추진, 카자흐스탄을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되고 앞선 나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로 권좌에 오른 토카예프 대통령은 이번 시위로 그의 위기극복 능력과 함께 홀로서기가 가능한지 여부를 가늠할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 전역에 비상사태 선포/얀덱스 캡처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토카예프 대통령은 5일 시위 사태가 심각한 알마티와 수도인 누르술탄(옛 아스타나) 등 4개 지역에 이어 전역에 2주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야간통금 조치를 취하는 등 긴급 대응에 나섰다. 동시에 대국민 연설을 통해 시위대의 자제를 촉구하면서, 시위대의 '샬 케트' 요구를 받아들여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을 안보위 의장직에서 해임하고, 스스로 그 자리를 겸임한다고 선언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또 카자흐스탄의 정치개혁을 위한 새로운 제안을 조만간 내놓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오늘부터 국가 원수이자 안보위 의장 자격으로 국가및 사회 질서를 훼손하는 세력에 최대한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엄포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의 강온 양면 전략이 이번 시위 사태를 조기에 진화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카자흐스탄 이번 사태는 지난 2일 서부 카스피해 연안 유전지대인 망기스타우 주(州) 주도인 악타우와 인근 쟈나오젠에서 차량용 LPG 가격의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로 시작됐으나, 사흘만에 수도 등 전국으로 번졌다.

5일 현재 이 나라 최대도시인 알마티에서 시위가 가장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알마티 시민 수천 명이 도심의 간선도로를 점거하고 가두 행진을 벌이다 최루탄과 섬광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했다. 시위대와 진압경찰 수십명이 크게 다쳤다. 또 알마티 도심에는 검게 탄 차량들이 나뒹굴고, 상점들은 거의 문을 닫은 상태라고 한다. 정규방송이 중단되고, 대중교통 수단과 항공편, 인터넷 연결도 모두 끊겼다.

카자흐스탄 시위 모습/러시아 매체 rbc 유튜브 캡처

이번 시위를 촉발한 LPG 가스는 소형 가스 자동차에 쓰이는 연료다. 국내 ㅋ 대기업이 가장 먼저 알마티에 가스 충전소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리터당 50~60 텡게(약 160원)에서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한 가스 값은 새해들어 120텡게(약 330원)으로 올랐다.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자가운전자들이 거리로 몰려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가스값 폭등은 당국의 가스값 자유화 정책에 대한 문제 제기를 넘어 신종 코로나(COVID 19) 팬데믹과 이에 따른 경제난으로 고통받아온 중산층의 불만을 폭발시킨 계기가 됐다. 현지 전문가들은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경제난으로 지난 2년여간 중산층의 생활 수준이 크게 나빠진 것으로 보고 있다. 2021년 3분기 카자흐스탄 평균 월급은 24만3,000텡게(약 66만8,000원)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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