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부터 심상치 않는 미-러 안보협상, '롤러코스터'를 탈 수 밖에 없는 이유
상견례부터 심상치 않는 미-러 안보협상, '롤러코스터'를 탈 수 밖에 없는 이유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1.10 0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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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미러 대표단 상견례, 10일부터 안보협상 시작 - 시작 전부터 '기대 난망' 전망
미 "쉬운 것부터 하나씩" vs 러 "바로 본론으로 담판을" - 협상전략도 서로 다르다?

미국과 러시아가 본격적인 안보협상을 하루 앞둔 9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미 군축회의 상임 대표의 관저에서 2시간 가까이 만났다. 본회담에 앞서 상견례하는 성격의 만남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첫 미러 안보회담인 만큼, 양측은 이날 상대의 의중을 탐색하는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 온라인 매체 r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대표단을 이끄는 세르게이 랴브코프 외무차관은 이날 미국 대표단과 2시간여 만찬을 겸한 사전 협상이 끝난 뒤 "질린다(몹시 어렵다). 대화는 복잡하다. 그러나 실무적이었다"면서 "내일 (회담에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10일로 예정된 협상 테이블의 분위기를 압축한 듯한 느낌이다. 협상을 임하는 미국측의 태도에 우선 질리고, 풀어야 할 문제는 복잡하지만, 실무적으로 해나갈 수 밖에 없다는 뜻으로 해석 가능하다. 그러면서 "언제든지 희망은 있다"며 타결에 대한 기대의 끈을 놓치는 않았다. 그의 상대는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이다. 

랴브코프 러 외무차관, 미국과의 예비회담을 '어렵다'고 했다/얀덱스 캡처

두 사람이 각각 이끄는 미러 대표단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1~2월 침공설'로 번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국경 집결 문제와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나토(서방)의 대러시아 안전 보장 확약 문서 등을 논의하기 위해 10일 정식으로 마주 앉는다. 한마디로 러-나토간의 '안보 협상'이다. 나토군의 동유럽 주둔을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적극적인 도발로 여기는 러시아측으로서는 특히 그렇다.

그러나 냉전 시절 소련의 일부였거나, 영향권에 속했던 발트3국, 폴란드 등을 회원으로 흡수한 나토는 칼자루를 쥔 형국이어서 러시아의 '안보 위협' 주장을 푸틴 대통령의 '제국 재건' 야망에 불과한 것으로 일축한다. 이렇듯 협상을 임하는 시각 자체가 너무 다르니, 단시간에 합의를 도출하기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서로 상대를 향해 '당근과 채찍'을 주고받는 '밀당'이 불가피해 보인다.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다.

다만, 러시아는 '무력 시위'를 통해 미국과 나토를 협상 테이블로 불러냈다는 사실만으로도 1라운드에서는 우위를 점했다고 할 수 있다. 안보 협상 전체를 10라운드로 본다면, 앞으로 2~9라운드에 서로 주고받는 공방전이 치열할 것이다.

만찬을 겸한 예비회담을 끝내고 나오는 랴브코프 러시아외무차관/현지 매체 rbc 동영상 캡처

무엇보다 언론을 통해 특히 험한 말이 오갈 것이다.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치명적인 보복을 당할 것" "경제제제가 혹독할 것" "금융시스템과 크렘린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분야 등에 대해 즉각적이고 가혹한 제재를 가할 것" 등의 협박성 발언이 미국에서 나오는 게 대표적이다.

주요 외신은 미 고위 당국자의 두루뭉실한 발언을 구체적으로 풀어 설명하기도 한다. 금융시스템 제재는 국제 은행 간 달러화 결제시스템인 ‘스위프트(SWIFT)망’에서 러시아를 제외하는 것이고, 러시아에 수출되는 미국 상품의 제한에는 아이폰과 같은 IT제품을 포함해 방산및 항공 분야와 인공지능, 양자컴퓨팅과 같은 분야의 미국 부품은 물론, 미국 부품으로 해외에서 만들어진 제품까지 포함될 것이라는 식이다. 물론 자체 해석만은 아닐 것이다. 

러시아도 이에 대비하고 있다. 국제 인터넷망 차단시 자체 시스템 '루네트'을 도입하고, '스위프트 망'에서 축출될 경우를 대비해 새로운 자체 결제시스템을 시험 중이다. 러시아로서는 배수진을 친 느낌이다. 

러시아의 협상 무기는 역시 군사력의 이동이다. 훈련을 명분으로 군사력을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 '넣다 뺏다'를 거듭하고 있다. 서방 언론을 주로 인용하는 국내 언론에 '러시아군, 우크라이나 국경지대 병력 증강' 제목에 나올 즈음, 현지 언론엔 "동계 훈련이 끝난 남부군관구 소속 XX 부대가 내일부터 철군할 것"이라는 기사가 뜬다. 어쩌면 외신을 '갖고 논다'는 표현이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러시아의 탱크 부대 훈련/사진출처:러시아 국방부

10일 협상에 대한 기대는 미러 양측에서 그리 높지 않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아예 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회담에서 돌파구 마련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협상에서 미국의 관심은 러시아측(푸틴 대통령)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는 데 쏠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를 위해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사일 배치 문제와 군사훈련 상호 제한을 의제로 올리려고 한다는 게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의 분석이다. 

러시아가 이미 미국 측에 전달한 안전보장 문서 초안에 담긴 내용이 원하는 최종 목표이자 진심인지, 아니면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한 명분쌓기용 협상 전술인지 확인한다는 것인데, 미국으로서는 한번 거쳐야 할 단계로 보인다. 미 고위 당국자가 "러시아가 의향이 있다면, 미사일 배치 문제와 군사훈련 상호 제한 제의는 합의에 도달할 수도 있는 영역"이라고 설명한 이유다.

반면 러시아는 바로 본론으로 가자는 태도다. 랴브코프 외무차관은 미국 측과 만나기 전 "어떤 양보에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회담이 한 번으로 끝날 수도 있다"고 압박했다.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면, 바로 협상테이블에서 철수하겠다는 배수진이다.

물론, 러시아에게는 1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나토, 13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와 회담이 기다리고 있다. 미·러 제네바 회담이 잘 안되더라도, 이어지는 회담에서 태도를 유화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 특히 유럽연합(EU)를 겨냥한 유화적인 자세는 미-유럽간에 미세한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러시아가 그 틈새를 비집고 협상의 이니시어티브(주도권)을 선점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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