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는 격언을 일깨운 미러 안보협상? 지루한 밀당 계속될 듯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는 격언을 일깨운 미러 안보협상? 지루한 밀당 계속될 듯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1.11 0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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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브코프 외무차관 "러시아는 우크라 침공 의사 없다" "무슨 증거를 어떻게 대느냐?"
"우크라 그루지야 나토 가입 안된다" 등 확고한 보장 요구 - 어떤 진전도 이루지 못해

역시 예상한 대로였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었다. 미국과 러시아는 10일 제네바에서 우크라이나의 위기 해소와 러시아 국가 안전보장을 위한 협상을 무려 8시간 가까이 진행했으나 '서로 할 말한 하고 끝났다'는 평가다.

협상 전 바이든 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간에 이뤄진 2차례(화상회담, 전화 통화) 접촉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현안을 보다 구체적이고 심층적으로 다뤘다는 것이다. 

랴브코프 차관, 미러 양국의 안전보장 논의가 깊고 구체적이었다 밝혀/얀덱스 캡처 
언론에 포즈를 취하는 양국 셔먼 부장관과 랴브코프 차관. 두사람은 서로 고개만 끄떡하고 악수를 나누지 않았다/현지 TV채널 NTV 캡처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미국과 러시아 대표단을 각각 이끄는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과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전날 회동한 탓인지, 이날 만남에서는 악수도 나누지 않고 언론에 잠깐 포즈만 취했다. 회담에 임하는 양국의 엄중한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마라톤 회의가 끝난 뒤 양측은 각각 언론 브리핑에서 협상 테이블에서 자신들이 주장한 내용을 주로 설명했다. 그리고 몹시 어렵고 복잡하다는 현실적인 속내도 내비쳤다.

일각에서는 양측이 앞으로 대화를 계속하기로 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설이 당장 현실화할 우려는 완화됐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랴브코프 차관은 협상테이블에서도, 언론 브리핑에서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러 안보협상 브리핑에 나선 랴브코프 차관/현지 매체 동영상 캡처

특히 그는 이에에 대해 '증거를 대라'는 미국 측을 향해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주연한 영화 '레드히트'(1988년 작) 속의 대화를 인용하기도 했다. 슈왈츠제네거가 영화에서 "증거가 뭐냐?"고 묻는데, 미국측 태도가 그 장면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랴브코프 차관은 "셔먼 부장관이 우리(러시아)에게 '미국과의 관계를 더이상 악화(우크라이나 국경의 긴장 고조)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를 보여달라'고 요구했다"며 "우리(러시아)가 미국 측에 그동안 수천 번이나 많은 질문을 하고 증거를 요청했는데, 그때마다 미국 측은 '잘 알고 있으면서 무슨 증거가 필요하느냐'고 답변하거나 침묵했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우리도 (증거를 보여주고 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미국측에 요구한 것은 국가 안보에 대한 확실한 보장책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조지아의 러시아 이름) 등의 옛 소련 국가들이 나토(NATO)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지난 2008년 루마니아 나토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의 나토 가입 가능성을 열어둔 결의안이 '절대로 나토 회원국이 되지 않을 것'으로 그 내용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나토 정상회의에서는 프랑스와 독일 등이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미국이 주도한 우크라이나 그루지야의 나토 가입은 무산됐다. 그러나 나토 측은 "러시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의 나토 가입을 계속 추진한다"는 내용으로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한 바 있다. 

랴브코프 차관은 또 협상에서 "러시아 접경 지역으로 나토의 공격 무기를 배치하지 않는다는 법적 보장을 받는 것이 왜 중요한지, 또 나토가 1997년 이후 가입한 회원국들의 영토를 물질적으로 장악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러시아가 왜 주장하는지 설명했다"고 소개했다.

이번 미러 안보협상은 서로가 상대방이 수락하기 힘든 요구조건들을 내거는 등 이견이 팽팽히 맞선 상태로 끝나 앞으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상당한 시간 줄다리기를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증거를 대라는 미국측 요구에 슈왈츠제네거 주연의 영화 '레드 히트'가 생각났다고 말한 랴브코프 차관/현지 매체 동영상 캡처

랴브코프 차관 본인도 "나토 비확장 등 주요 문제에서 어떠한 진전도 없다"고 지적하면서도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보진 않는다. 우리는 보이지 않게 이전에 존재했던 문제들을 다 얘기할 수 있어 유익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계속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나아가 "러시아는 대화가 어긋나지 않고 계속 되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랴브코프 차관은 1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나토·러시아위원회(NRC) 협상을, 13일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협상을 갖는다. 러시아의 다음 행보는 일련의 협상들이 끝난 뒤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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