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푸트니크V 백신의 국내 위탁생산및 출시가 지지부진하다는데, 왜?
스푸트니크V 백신의 국내 위탁생산및 출시가 지지부진하다는데, 왜?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1.11 0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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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RDIF는 꾸준히 스푸트니크V, 스푸트니크 라이트 해외 위탁생산 시설을 확충?

새해들어 러시아의 신종 코로나(COVID 19) 백신 '스푸트니크V'의 국내 위탁생산(CMO)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는 느낌이다. 적어도 '연말까지는 뭔가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해를 넘기면서 사그라든 게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스푸트니크V' 백신의 위탁생산을 위해 한국코러스와 휴온스글로벌이 각각 주도한 컨소시엄이 모두 비슷한 양상이다.

반면, 스푸트니크V의 생산및 유통을 맡고 있는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는 꾸준히 해외로의 백신 위탁생산 시설 확충에 나서고 있다. 주로 부스터샷(재접종)으로 최적화된 '스푸트니크 라이트' 생산 거점이다. 

RDIF와 일찌감치 위탁생산 계약을 맺고, 기술이전을 거쳐 백신을 생산하기 시작한 한국코러스는 지난해 말까지는 제품의 해외 출시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해를 넘기면서 백신 출시의 물꼬를 트기도 전에 컨소시엄 자체가 와해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한국코러스 춘천공장 모습/KBS 화면 캡처

한국경제에 따르면 한국코러스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종근당바이오가 최근 컨소시엄에서 탈퇴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새로 진출한 보톨리눔톡신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또다른 컨소시엄 기업인 이수앱지스와 제테마는 컨소시엄의 틀에서 벗어나 러시아 측과 직접 위탁생산 계약을 맺는 방안을 추진, 혹은 검토 중이다. 백신의 원액 생산(DS)을 맡은 두 업체 모두 기술이전을 끝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수앱지스 관계자는 “컨소시엄 참여와 독자 생산 등 ‘투 트랙’으로 백신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5개 기업과 컨소시엄 구성을 확정했던 한국코러스 측은 일부 업체가 떨어져 나가더라도 백신 생산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당초 예상했던 생산 물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어 보인다. 

세계보건기구(WHO) 본부/사진출처:위키피디야

스푸트니크V의 위탁생산 체인에 균열 조짐이 생기는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세계보건기구(WHO)의 사용 승인이 차일피일 늦어지기 때문이다. WHO의 승인 여부에 달려 있는 백신 판로의 확장성이 계속 막혀 있으니 추진 업체로서는 답답할 수 밖에 없다. 늦어도 연내에 이뤄지리라던 스푸트니크V에 대한 WHO 사용 승인은 또다시 새해 1분기로 늦춰졌다.

또 스푸트니크V를 개별적으로 승인한 국가가 이미 70개국을 넘어섰다지만, 위탁생산의 특성상 러시아 측의 승인없이는 이들 국가에 대한 독자 판매가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한국코러스가 생산한 백신을 창고에 쌓아놓고도, 정식으로 해외수출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이에 대해 황재간 한국코러스 회장은 지난달 17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중동 남미 동유럽 국가에) 1회 접종용 백신인 ‘스푸트니크 라이트’에 대한 구매 의사를 타진한 결과, ‘받겠다’는 답변이 왔다”며 “(조만간) UAE, 아르헨티나, 동유럽 국가에 (백신 생산) 초도 물량이 나갈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하기도 했다.

황재간 회장의 조선비즈 인터뷰/웹페이지 캡처

문제는 러시아측의 시원시원한 판매 승인이다. 황 회장은 “러시아 국내 공급을 위해 스푸트니크 공식 제조소 등록을 하는(최종 검증 작업) 중"이라며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러시아 정부 측에 제조소 등록을 하지 않고, (모회사인 GL라파의)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백신을 제3국으로 수출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지 여부를 타진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코러스측으로서는 가장 답답한 게 '러시아식 일처리'가 아닐까 싶다. 한국 코러스는 지난해 10월 생산한 백신 230만 도스를 러시아로 보내 최종 품질 인증(합격 판정)을 받았다. 백신을 주문한 국가로 실어보내기만 하면 되는데, 느닷없이(?) 러시아 제조소 인증 요구에 (수출에는) 통상부의 허가 운운하니, 탈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한국코러스 컨소시엄 와해 조짐을 보도한 한국경제/웹페이지 캡처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더욱 기막힌 일이 또 벌어졌다고 한다. 러시아 측이 당초 요청한 '스푸트니크 라이트'가 아니라 '스푸트니크V'의 2차 접종분으로 생산 제품 변경을 요청했다는 것. '스푸트니크 라이트'는 '스푸트니크V'의 1차 접종분을 기반으로 개량한 것이다.

바이러스 벡터 방식으로 개발된 '스푸트니크V'는 1차, 2차 접종분의 매개 바이러스가 다른 게 특징이다. 1차 접종분은 인간의 (감기) 아데노바이러스26형(Ad26)를, 2차 접종분은 아데노바이러스5형(Ad5)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특히 2차 접종분의 생산이 까다롭고 수익성도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푸트니크V의 공급량 부족 문제가 심각했던 지난해 여름, 일부 국가들이 2차 접종분을 구하지 못해 아우성을 쳤다. 당시 남미 일부 국가에서는 '비는 쏟아지는데, 장화를 한짝(1차 접종분)만 주면 어떡하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RDIF측의 생산제품 변경 요청이 사실이라면, 한국코러스는 힘들여 맞춰놓은 '스푸트니크 라이트' 생산 설비를 2차 접종분으로 바꿔야 한다. 1, 2차 접종분의 아데노바이러스가 달라 후딱 해치울 수 있는 성격의 일은 아닌 듯하다.  

한국코러스 생산 스푸트니크V 백신의 러시아 수송 장면/사진출처:한국코러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의 준공된 백신센터/사진출처: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

휴온스컨소시엄도 백신 원액을 생산하는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가 컨소시엄과는 별도로 지난해 11월 RDIF의 자회사 Human Vaccine(HV), 생산 파트너인 ENSO Healthcare DMCC(ENSO)와 '스푸트니크 라이트' 위탁생산을 위한 '3자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면서 어정쩡한 상태에서 해를 넘겼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도 기술이전을 거쳐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들리는 소식은 아직 없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는 지난 연말까지 10만 4,000리터 규모의 바이오 리액터(세포 배양기)를 갖춘 백신센터를 완공하고, 백신생산 업체들을 위한 공동시장인 코백스 마켓플레이스(COVAX marketplace)에 합류했다는 소식만 전했을 뿐이다. 컨소시엄을 주도해온 휴온스글로벌도 조용하다. 

국내 컨소시엄과는 달리, 재접종용 백신으로 쓰이는 '스푸트니크 라이트' 의 생산 시설 확충을 위한 러시아 측의 활동은 꾸준히 진행중이다. 주로 스푸트니크V 사용을 승인한 국가들이 대상이다. 스푸트니크V 사용을 승인하지 않는 우리나라와는 여건이 크게 다른 곳이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스푸트니크V 위탁생산 국가는 대체로 벨라루스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인도, 중국, 한국 등이다. 이중에서 스푸트니크V를 사용승인하지 않는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RDIF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RDIF는 지난달 1일 베트남 제약사 T&T 그룹과 스푸트니크 V 위탁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또 기존의 일부 업체와는 스푸트니크 라이트를 추가생산하기로 했다. 베트남은 스푸트니크 라이트 사용 승인을 앞두고 있어 양측의 협력은 베트남 자체 수급을 위한 것으로 해석가능하다. 

세르비야, 스푸트니크 라이트 백신 생산 협의 진행/현지 매체 베도모스티 웹페이지 캡처

러시아 현지 언론은 지난달 29일 남미 에콰도르에서 스푸트니크 V 백신의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역시 에콰도르 등 남미 지역의 백신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30일에는 세르비아 백신 연구소 '토를락'(Torlak)이 스푸트니크 라이트 생산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현지 매체 베도모스티)도 전해졌다. 친러시아 성향의 세르비아는 초기에 스푸트니크V의 사용을 승인한 몇몇 국가 중 하나다. 스푸트니크 V를 위탁생산중인 곳이기도 하다. 

새해 들어서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2월 초로 예정된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스푸트니크V 백신의 위탁생산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미 생산 시설 건설이 진행중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오르반 총리는 유럽연합(EU) 국가 중 유일하게 스푸트니크V 사용을 독자적으로 승인한 국가다.

또 구소련권의 벨라루스와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등에서 조만간 스푸트니크 라이트 생산이 시작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일부 국가는 러시아로부터 원액을 들여와 병입하는 수준에서 아예 원액생산까지 가능한 시설과 기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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