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WHO 승인 앞둔 스푸트니크V 백신의 국내 사전 검토 작업은 중지, 왜?
(분석) WHO 승인 앞둔 스푸트니크V 백신의 국내 사전 검토 작업은 중지, 왜?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1.20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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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푸트니크V' '코비박' 등 러시아 신종 코로나(COVID 19) 백신의 국내 승인을 위한 사전 절차가 중지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식약처 관계자는 19일 "스푸트니크V과 코비박 등 2개 백신의 (긴급 사용 승인을 위한) 사전 검토 작업은 보완해야 할 자료를 신청 기업에 요청했지만 모두 피드백(회신)이 오지 않았다"며 "일단 내부적으론 검토 종료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지금이라도) 피드백이 온다면 작업이 다시 개시될 수도 있다"며 "식약처는 긴급사용 승인을 전제로 한 사전 검토 절차를 진행중이었지만, 업체 측이 긴급사용 승인이 아니라 정식 품목 허가를 신청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식 품목 허가는 긴급 사용 승인보다 더 까다로운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WHO본부/사진출처:위키피디아

스푸트니크V 백신에 대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사용 승인이 1분기 내에 나올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 백신에 대한 국내 사전 평가 작업은 왜 중지됐을까?

무엇보다도 식약처가 요구하는 보완자료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푸트니크V의 생산및 유통을 담당하는 러시아 직접투자펀드(RDIF)가 WHO 측의 보완 요구자료를 제때 제출하지 않았던 것과 흡사하다.

하지만, RDIF는 WHO측과 밀당 끝에 지난해 말 요구자료를 제출했다. 이달 말까지 백신 생산시설의 시정및 보완 조치에 대한 자료를 추가로 제공하고, 현장 실시가 무사히 끝나면, WHO의 사용 승인이 나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렇다면 RDIF처럼 보완자료를 내지 되지 않을까?
국내 상황은 만만하지 않아 보인다. 우선 러시아 백신의 국내 도입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희박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스푸트니크V와 같은 '바이러스 벡터 방식'의 백신은 이미 주요 시장에서 인기가 없다"며 "우리 정부는 이미 화이자·모더나 백신, 합성항원 방식의 노바백스 백신 등 올해 사용 물량을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에 추가로 러시아 백신을 도입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식약처가 사용 승인을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스푸트니크V 백신/사진출처:RDIF

사전 심사 신청의 시작부터 허점이 적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스푸트니크V에 대한 사전 검토 신청은 국내에서 코로나 백신의 물량 부족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셌던 지난 해 4월 전격적으로 이뤄진 측면이 크다. 당시 식약처는 "휴온스가 약사법 규정에 따라 비임상(독성·효력시험) 자료에 대한 사전 검토를 신청했다"며 미국의 노바백스 백신과 함께 허가신청 전 사전검토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노바백스의 위탁 생산및 허가를 담당하는 SK바이오사이언스는 사전 검토를 위해 독성과 효력에 대한 비임상 시험 자료는 물론, 임상 1·2상 시험 자료를 제출했다. 그 결과, 노바백스는 WHO와 유럽의약품청(EMA)의 긴급 사용 승인을 받은 지 한달이 채 지나기도 전인 지난 12일 식약처로부터 조건부 품목허가를 받았다. 임상시험의 최종결과(임상 3상) 보고서 등을 제출하는 게 조건이다. 

이에 비하면, 스푸트니크V 신청자 측은 비임상(독성·효력시험) 자료만 달랑 제출했다. 이미 임상 3상의 잠정 결과가 국제 의학학술지 '랜싯'에 실렸음에도 불구하고 임상 1,2상 자료도 제출되지 않았다. 신청 업체도 RDIF와 정식으로 위탁생산 계약을 맺고 시생산을 시작한 한국코러스가 아니라, 뒤늦게 위탁생산 컨소시엄을 만든 휴온스 측이었다. 러시아 측은 그러나 휴온스측과의 위탁생산 계약 체결 자체를 한번도 제대로 확인해주지 않았다.

백신의 부족 현상을 틈타 휴온스 측이 발빠르게 움직인 것은 분명하지만, 식약처의 추가 자료 요청에 대한 사전 대비가 부족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때는 이미 식약처와 주한러시아 대사관측이 스푸트니크V 자료의 한국 제출 여부를 놓고 입씨름을 벌인지 한달 쯤 뒤였다. 

한국코러스가 생산한 스푸트니크V 백신을 러시아로 보내기 위해 비행기에 싣는 모습/사진출처:한국코러스 

휴온스의 사전검토 신청이 알려진 뒤, 한국코러스 측은 "사전검토는 정식 허가신청과 거리가 멀다"며 "국내에서 정식으로 스푸트니크V를 도입할 경우, 한국코러스가 단독으로 권한을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어깃장을 놨다. "RDIF와 위탁생산 계약을 맺으면서 국내 허가신청을 진행할 경우, 코러스를 통해서 하겠다고 협의한 바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쩌면 상식적으로 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선수를 빼앗겼다. 

해를 넘긴 지금, 스푸트니크V의 위탁생산을 위한 한국코러스 컨소시엄이 와해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휴온스 컨소시엄의 움직임도 거의 없는 상태다. 휴온스 컨소시엄의 핵심 기업인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는 지난해 11월 러시아 측과 단독으로 기술이전 3자 계약을 맺기도 했다. 

스푸트니크V는 러시아 '가말레야 센터'가 2020년 8월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백신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처럼 아데노바이러스에 코로나 바이러스 유전자를 삽입해 제조하는 '바이러스 벡터' 방식으로 개발됐다.

코비박 백신/사진출처:현지 매체 rbc 동영상 캡처

또다른 백신 '코비박'에 대한 사전검토 신청은 지난해 8월 ㈜엠피코퍼레이션에 의해 이뤄졌다. 당시 식약처는 보도자료를 통해 "코비박 백신은 정부에서 도입 계획을 발표한 백신은 아니나, ㈜엠피코퍼레이션이 '약사법' 규정에 따라 비임상(독성‧효력 시험)자료에 대한 사전검토를 신청해 제출된 비임상 자료에 대해 안전성과 효과성을 면밀히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추마코프 센터'가 개발한 '코비박'은 러시아에서 세 번째로 등록된 백신으로, 바이러스를 죽인(불활성화) 뒤 항원으로 체내에 주입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불활화 백신이다. 러시아에서는 지난해 2월 긴급사용이 승인됐다. 그러나 스푸트니크V와 달리 캄보디아 등 1~2개 국가에서만 승인됐을 뿐, WHO를 비롯한 주요 국가에서는 아직 사용 허가를 받지 못했다. 

사전 검토를 신청한 ㈜엠피코퍼레이션은 '코비박' 백신을 생산하기 위해 국내에 설립된 특수목적법인이다. 지난해 6월 아이다르 이슈무하메토프 '추마코프 센터' 소장 등을 서울로 초청해 '코비박' 백신을 국내에 소개하는 학술 회의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코비박' 위탁 생산은 그동안 발표된 계획과는 달리 지지부진한 상태로 평가된다. 

지난해 8월 코비박이 식약처에 사전 검토를 신청했을 당시의 러시아 관련기사 묶음. 제목은 한국, 코비박 승인 신청 검토/얀덱스 캡처

'추마코프 센터'나 러시아 언론이 엠피코퍼레이션의 존재에 대해 확인한 적은 아직 한번도 없다. 그러니, 식약처가 요구한 추가 자료를 '추마코프 센터'로부터 받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낮다. 러시아 타스통신 등 러시아 언론들이 "한국 식약처가 '코비박' 백신의 안전·유효성 자료에 대한 사전 검토에 나선다"고 보도했을 때에도 신청자를 단순히 '백신 제조사'로 적었다. 엠피코퍼레이션은 지난해 10월, 11월께 러시아측과 합작회사를 세웠다며 이름까지 바꿨지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스푸트니크V 위탁생산을 맡고 있는 국내 컨소시엄이 살 길은 '노바백스'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는 것으로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이라도 한국코러스가 스푸트니크V의 임상 1,2상 자료를 RDIF로 받아 식약처에 제공하고, 스푸트니크V가 WHO와 EMA의 승인을 받아내기를 기다리는 게 최선 아닐까? 식약처도 WHO와 EMA의 승인을 잇따라 받고, 국내업체가 위탁생산하는 스푸트니크V를 모른 척하지는 못할 것이다. 노바백스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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