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뒤집기-2) 러시아군이 아직까지 키예프를 함락시키지 못한 진짜 이유
(우크라 전쟁 뒤집기-2) 러시아군이 아직까지 키예프를 함락시키지 못한 진짜 이유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3.23 06:4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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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초기 군사작전의 실패' vs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이 4주차에 접어들면서 그간의 전황(戰況)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미국 등 서방 진영은 "러시아군이 적어도 1주일 내에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받아 낼 것이라는 당초 예상이 빗나갔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이 실패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10년 가까이 공을 들여온 군 현대화는 도대체 어디로 갔느냐는 조롱섞인 비판마저 나온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군 당국자들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키이우)를 빠르게 점령하고 제2의 도시인 하리코프(하르키우)를 장악하는 것 등을 목표로 정했지만, 어느 것도 달성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개전 3주가 넘도록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비롯한 일부 도시에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면서도 아직 키예프에는 진입조차 못했다는 것이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도 지난 18일 CNN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에서 수차례 실수를 저질렀다"며 "군수물자 보급(병참) 등에서도 문제를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정세 분석에 실패한 러시아의 정보부서 책임자들이 푸틴 대통령에 의해 문책을 당했다는 미확인 보도도 나왔다. 

초기의 전략적 오판에다 예상보다 거센 우크라이나군의 저항 등으로 러시아군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분석에는 일견(一見) 공감이 간다. 지난 2008년 그루지야(조지야)와의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닷새만에 항복을 받아낸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친러시아 정부(?)의 구원 요청을 받은 러시아군은 지난 2월 24일 남과 북, 동쪽의 3개 면, 4개 방향에서 우크라이나로 진입했다. 작전 개시 27일째를 맞은 22일 현재 러시아군은 키예프 외곽과 마리우폴 등 아조프해 연안지역, 돈바스지역 등에서 우크라이나군과 대치, 혹은 교전을 벌이고 있다.

객관적으로 어느 쪽이 전황상 유리한 지는 쉽사리 판단하기 어렵다. 공격과 방어의 기준점도 다르다. 특히 전쟁에는 소위 '프로파간다'(선전, 선동)가 판을 치기 때문에 그 어느 쪽의 발표도 완전히 믿을 게 못된다. 서방 언론을 그대로 따라가는 국내 언론 보도로만 보면 러시아군의 승리를 쉬 낙관하기는 힘든다. 

우크라이나군이 버리고 간 무기들을 노획한 러시아군/사진출처:러시아 국방부 인스타그램

하지만, 그게 사실일까? 아직 키예프를 함락시키지 못한 게 순전히 러시아 군사작전의 실패나 우크라이나군의 거센 저항 때문일까?

미국 등 나토(NATO)군이 이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상황에서 러시아군이 당초의 작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물러난다는 것은 순진한 상상 아닐까? 푸틴 대통령의 지휘 하에 치른 전쟁(체첸 전쟁과 그루지야 전쟁, 시리아 전쟁)이나 군사력 동원(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전쟁, 카자흐스탄 시위및 폭동사건)에서 '실패'란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누가봐도 목적을 달성한 뒤 군대를 물렸다. 

우리가 기억하기로 전쟁은 대체로 몇가지 결말로 끝나게 마련이다. 항복(2008년 그루지야 전쟁)하거나 수도와 영토 대부분을 점령(2021년 아프가니스탄 텔레반)당하거나, 교착 상태에서 가까스로 휴전협정(평화협정)을 맺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영국의 망명 권고에도 불구하고 키예프에 남아 국민적 저항을 독려하고, 몇차례 성사된 협상에서도 러시아측의 최후통첩에 응할 뜻도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렇다면 러시아군이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수도 키예프를 함락시키지 못할 경우, 러시아군이 사실상 패했다는 뼈아픈 전망도 나올 판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가혹한 경제제재로 러시아를 완전 봉쇄하고 있으니,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얼마 못 버틸 것이라는 가정에서다. 

진흙탕 위로 진격하는 러시아군 탱크/러시아 국방부 인스타그램 캡처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러시아 측의 시각은 근본적으로 좀 다르다. 진격 속도가 더딘 가장 큰 이유로 쓸데없는 희생과 피해를 줄이기 위한 선택을 꼽는다. 무자비한 공격으로 빠른 시일내에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받아내는 독일식 '전격 작전'(電擊作戰)을 펼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군사전략 분석가 유리 크누토프는 지난 20일 유튜브 채널 '우크라이나.ru'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사회기반 시설을 최대한 보호하고, 민간인 희생을 줄이려는 작전을 펴다보니, 진격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며 "러시아군의 약점이나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 때문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미국 군사 전문가들도 우크라이나가 펜타곤(미 국방부)의 무기를 갖고 저항하더라도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군을 물리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본다고 크누토프는 강조했다. 승패는 결국 '시간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개전 초기를 되짚어보게 한다. 푸틴 대통령은 군사작전 개시 명령을 내리면서 우크리아나군을 향해 '무기를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진격하는 러시아군을 향해서는 '무고한 희생을 원치 않는다'며 군사적 기반 시설만 꼭 집어 파괴하도록 지시했다. 민간인 시설은 물론, 군 막사까지도 폭격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우크라이나 영토를 점령하거나 젤렌스키 정부를 전복할 계획도 없다고 했다.

서방 측은 푸틴 대통령의 이같은 지시를 '우크라이나군이 순순히 항복하거나 우크라이나 국민이 러시아군을 환영할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쓸데없는 희생이나 피해를 피하기 위한 전술적 선택, 그 자체마저 부인할 수는 없다. 

출격하는 러시아 전투기(위)와 출격 대기중인 전투기들/사진출처:러시아 국방부 인스타그램 캡처 

서방 측은 또 러시아군이 초기의 작전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 등 파괴력이 강한 최신 무기들을 동원하고, 나아가 대량살상무기(생화학,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러시아가 '킨잘'과 순항 미사일인 '칼리브르'의 해상 발사를 시작했으니, 시기적으로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첨단 무기까지 꺼내든 동기는 사뭇 다르다. 돈바스 지역의 한 축이자 친러 세력인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외무장관 보좌관인 로디온 미로쉬니크는 21일 러시아 국영 TV '러시아-1'과의 회견에서 "러시아군은 지난 한달 가까이 우크라이나군에게 무기를 내려놓고 목숨을 건질 것을 요청해 왔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우크라이나군의 자세 변화를) 기다리지 못하고 새로운 작전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의 군사 기반 시설만을 정밀 폭격하면서 진행해온 우크라이나군 설득 작업이 끝났다는 경고로 들린다. 

우크리이나 방어군(민족주의 무장세력)이 무기를 내려놓기는 커녕 민간인들을 '인간방패'로 삼고 있다는 판단도 작전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어차피 '인간방패'로 (강제) 동원된 민간인들의 운명은 '죽음'으로 정해져 있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그의 주장을 믿는다면, 새로운 단계의 러시아 군사 작전은 이미 지난 19일 '킨잘'과 '칼리브로' 순항 미사일 발사 등으로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우릴 수 밖에 없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이 과거 러시아군의 시리아 공습 작전과는 확연하게 비교되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지난 2015년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지원 요청을 받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전세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전폭기를 동원한 대대적인 공습과 칼리브르 순항 미사일의 맹폭으로 상대를 궤멸 직전으로 몰아넣었다.

만약, 러시아 수뇌부가 우크라이나를 완전히 파괴하더라도 항복을 받아내는 게 최우선 목표였다면, 처음부터 제 2의 시리아 공습작전으로 나가지 않았을까?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아니었다. '작전 실패'라는 조롱을 받아가면서도 꿋꿋하게 개전 당시의 초심을 지키려고 했다.

그 이유는 상대가 바로 우크라이나이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원래 한나라였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의 '제국 건설 야망'이라고 서방측은 비판하지만, 그건 오랜 '루스포비아'(러시아 공포증)에서 나온 발상일 뿐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계를 우리의 '남북한' 거울에 비춰보면 이해가 쉽다. 우리의 통일을 주변 강대국 중 누가 진짜 원하는가? 

3월 22일 러시아 국방부 브리핑/인스타그램 캡처

매일 전황을 브리핑하는 러시아 국방부는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주의적 통로가 언제 어디서 개설되는지 △우크라이나 군사기반 시설을 얼마나 파괴했는지 △돈바스 진격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긴급 구호물자를 어디에 얼마나 배포했는지 등에 중점을 둔다. 최근에는 서방측(우크라이나측)의 주장을 반박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한다.

항복한 우크라이나군의 부대및 규모는 가끔 공개해도, 전사자 수는 추정 발표조차 없다. 우크라이나(서방) 측의 발표와 유일하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상대를 궤멸시킨 전과를 대대적으로 발표해 군의 사기를 올리고자 하는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러시아군이든, 우크라이나군이든 불필요한(?) 전쟁의 무고한 희생자로 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러시아군은 최대 격전지인 마리우폴 우크라이나 저항군을 향해 21일 10시부터 2시간 동안 무기를 내려놓고 떠날 것을 권유했다. 거의 열흘 이상 민간인들의 안전한 대피에 공을 들인 이후다. 그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살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었으니, 끝까지 저항한다면 어쩔 수 없다는 최후통첩이다. 군사적으로 마리우폴 공략에 나서겠다는 경고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쟁의 민낯'을 보게 될 것이다.

필자는 1995년 12월 발칸반도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 취재를 위해 사라예보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유고 연방의 해체 과정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 세력과 보스니아 회교도간에 벌어진 4년여의 내전이 끝날 무렵이다. 세르비아 측은 나토군의 무자비한(?) 공습작전에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평화협정 체결에 동의했다. 평화협정의 정식 사인을 앞두고 도착한 사라예보에서 맞딱뜨린 모습이 바로 '전쟁의 민낯'이었다. 

러시아 국기를 게양하는 러시아군/사진출처:러시아국방부 인스타그램

서방 전문가들도 앞으로 2주간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고비로 보고 있다. 해석은 제각각이겠지만, 러시아군이 진짜 공격을 시작하면, 우크라이나가 항복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아닐까?

정반대의 해석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다는 생각이다. 현지 군사전문 매체 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남부 아조프 해 항구를 확보한 러시아군은 이제 육로가 아니라 해상으로 전차 등 군사물자의 보급을 시작했다. 서방측이 지적한 군수 물자 보급 루트도 한결 원활해졌다는 뜻이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측을 향해 방공미사일 시스템의 제공을 계속 요청하는 걸 보면, 제공권도 완전히 러시아쪽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돈바스의 친러시아 세력(DPR과 LPR)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영토(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주 경계선)에서 우크라이나 군을 거의 밀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BPR과 LPR 영토를 향한 우크라이나 군의 포격이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게 그 증거다.

아조프해 항구 베르쟌스크에 입항한 러시아 전함에서 전차가 하역되고 있다. 이번 군사작전을 뜻한 Z의 표시가 선명하다/현지 TV채널 즈베즈다 영상 캡처 

서방측에서 몰려온 국제의용군(용병)의 사기도 이미 한풀 꺾인 상태다. 러시아군의 공습에 되돌아간 한 프랑스인은 지난 20일 르몽드와 회견에서 "현장에는 무기도 탄약도 없었다.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고 털어놨다. 서방측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계속 제공할 것이라고 다짐하지만, 무기 공급 통로에 대한 러시아군의 폭격도 조만간 현실화할 것이다. 러시아측은 이미 서방측의 개입(무기공급이나 용병)에 동정을 베풀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서쪽 리비우 인근의 한 군사기지(용병및 무기 1차 집결지)를 폭격한 게 대표적이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 진행의 객관적인 정황도 젤렌스키 대통령 쪽이 급해 보인다. 그는 연일 푸틴 대통령과 직접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의 최후 통첩을 거부하면서도, 러시아측의 요구 조건인 '중립국화'와 '나토 가입 금지' 등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다. 급기야는 22일 돈바스의 독립과 크림반도의 러시아 합병 등 영토문제도 푸틴 대통령과 직접 협상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현지 TV인터뷰에서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 돈바스와 크림 문제를 푸틴 대통령과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얀덱스 캡처 

러시아를 압박하는 것은 서방의 경제제재가 유일하다. 그러나 그 봉쇄가 한 두달만에 러시아를 굴복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이 '마지막 카드'로 러시아 원유 수입 금지 조치를 검토하고 있으나 내부적으로 의견 통일이 쉽지 않다고 한다.

러시아가 서방측의 봉쇄 조치에 손을 들기 전에 우크라이나가 사실상 항복이나 다름없는 휴전 협상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게 현실이다. "협상 중에도 절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의 강한 어조에서 전쟁의 승패는 이제 '시간의 문제'에 불과할 뿐이라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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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도 2022-03-23 16:55:59
전황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준 2022-03-23 15:22:12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정밀무기로 군사시설만 타격한다는 러시아측의 발표를 그대로 인용하기에는 이미 우크라 쪽에서 사상자가 너무 많이 나왔습니다. 전쟁에서 아무리 무기가 정교해도 민간인을 비껴갈수는 없는거죠. 또 러시아에서 독립적인 어조를 내는 언론은 정부에 의해 폐간당하고, 나머지 언론들은 대부분 관영 언론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균형시각 이라는 명목하에 러시아 언론 보도를 가져온다는 것은 득보다는 실이 크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