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뒤집기-8) 미-러 '경제 전쟁 2라운드' - 디폴트 선언 vs 루블화 상환 대치
(우크라 전쟁 뒤집기-8) 미-러 '경제 전쟁 2라운드' - 디폴트 선언 vs 루블화 상환 대치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4.08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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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미국(혹은 서방 진영) 간에 '경제 전쟁 2라운드'의 종이 크게 울렸다.

유례 없는 가혹한 경제제재 조치로 러시아 루블화가 휴지조각(?)으로 변할 것이라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장담은 한달여 만에 빗나갔다. 루블화는 7일 달러당 76달러로 떨어졌다(가치 상승).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작전 개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강력한 루블화 방어 정책과 국제 유가및 가스 가격의 상승이 루블화 강세를 이끌었다는 평가다. 

경제 전쟁의 승패를 가늠할 수 있는 키워드(핵심) 중 하나인 환율의 흐름으로만 보면 1라운드는 '러시아의 판정승'에 가깝다.

급기야 미국은 자국 은행이 맡아놓은 러시아 외환보유고(중앙은행 계정)의 전면 차단에 러시아 석유 수입 금지 조치까지 빼들었다. '경제 전쟁 2라운드'의 개막이다.

달러화와 루블화/사진출처:픽사베이.com

외신에 따르면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6일 러시아를 향해 공개적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 국가부도)를 선언하든, 아니면 국내에 보유중인 외화로 외채를 상환하든, 하나를 선택하라고 압박했다. 이에 러시아는 마감이 돌아온 외채 상환을 달러가 아닌 루블화로 지급 완료했다고 맞받았다. 예측 불허의 정면 충돌이다.

미국 상하원도 7일 러시아 석유의 수입금지 조치를 담은 법안을 가결했다. 미 의회의 적극적인 참전이다. 이 법안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된다.

제 2라운드의 승패는 러시아의 외채 상환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서방측)이 러시아 재무부및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 계정을 풀어주지 않는 한, 외채를 달러가 아닌 루블화로 갚겠다는 러시아의 행보에 대한 후속 흐름이다.

미국은 당초 러시아의 외채 상환을 위해 오는 5월 25일까지 미국내 러시아의 외환보유고 계정 인출을 막지 않겠다고 했다. 러시아 재무부가 3월 한달간 유로본드(유로화 채권)의 이자로 6억달러 이상를 제 때에 지급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달 31일을 마지막으로 모두 5차례나 정상 지급됐다.

그러나 이달 4일로 돌아온 2022년, 2042년 만기 유로본드의 원금및 이자 상환액 6억 4,920만 달러의 지급 마감을 앞두고 미국 재무부가 태도를 바꿨다. 에이전트(중개)은행인 미 JP모건 체이스(로이터 통신 보도)의 러시아 외환보유고 인출을 불허한 것. 우크라이나 군사작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러시아 외채 상환이 한순간에 막혔다. 그리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디폴트'라는 최후 통첩을 거론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외채 상환 충돌. 러시아 재무부는 유로본드 6억4,920만 달러를 처음으로 루블로 지급했다(위)고 밝혔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러시아가 미국에 의해 '디폴트와 (외화) 유출' 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몰릴 것이라고 주장/얀덱스 캡처  

지난달 30일과 31일, 미국의 중개은행에 외채 상환 요구를 전달한 러시아 재무부도 발끈했다. 서방의 러시아 외환보유고 동결 조치와 함께 경고한 대로, 루블화로 외채를 상환할 것이라고 확인한 뒤 러시아 중앙은행의 공식 환율(달러당 83.43루블)로 6억 4,920만 달러(약 541억 루블)를 외채 상환용 특별 계정(S 계좌)으로 이체했다. 그리고 "'러시아-2022'와 '러시아-2042' 유로본드에 대한 의무(원금및 이자 지급)를 완전히 이행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외환보유고 계정을 해제하면 달러로 바꿔줄 것이라는 설명도 빠뜨리지 않았다.

외채 상환을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충돌은 미국 금융권에 맡겨 놓은 러시아의 외환보유고 지급을 미 정부가 차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빚을 갚을 만한 돈은 갖고 있으면서도 소위 은행이 인출을 거부해 빚을 제 때 갚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렇게 부도가 난다면 누가 승복할까?

러시아 중앙은행이 처한 현실이 꼭 이렇다. 남의 돈을 맡은 '은행'격인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유로 돈의 인출을 막고 있다. 미국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금융시장 허브를 대표하는 국가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거꾸로 러시아가 '비우호적인 국가'를 상대로 외화 인출을 제한한 것을 비판할 수 있을까?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러시아는 어떤 경우에도 대외 채무에 관한 의무(상환)을 이행할 수 있다/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는 외환보유고 계정이 동결되지 않는 한, 외화 부채를 (외화로) 상환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만한 자금도 갖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4월 1일 기준 외환보유고가 6,065억 달러로, 일주일 전(3월 25일)에 비해 21억달러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1월 기준 러시아의 외채는 4,782억 달러 안팎이다.

하지만, 서방 측은 러시아의 루블화 외채 상환을 인정하지 않을 태세다. 유로본드의 발행 계약서에 따르면 원금 또는 이자를 일부라도 지급하지 않은 날로부터 30일이 지나면 디폴트가 선언된다. 내달 초까지 달러로 지급하지 않으면 계약 조건상 디폴트인 셈. 루블화 지급은 계약 위반이다. 서방 측이 디폴트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도 일찌감치 루블화 상환은 디폴트로 간주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특히 신용평가기관 피치는 지난 달 15일 "지불 의무의 강제적인 재지정은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RD(한정적 디폴트)로 강등하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불 의무의 강제적인 재지정이란 러시아의 루블화 상환과 외화 인출 제한 조치 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재무부가 유로본드 이자로 지급한 루블화는 현재 특별 계정(S 계좌)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이 계정으로부터 돈을 인출하는 것은 까다롭다. 먼저, 러시아 내에서 세금과 수수료 등을 제한다. 남은 자금도 러시아 재무부 산하의 특별 투자 위원회를 허가를 받아야 자신의 거래 은행으로 외화 이체가 가능하다. 손해를 보면서도 돈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러시아 중앙은행, 비우호국으로의 자산 이동(자금 이체)에 제한 도입/현지 매체 이즈베스티야 웹페이지 캡처 

사실 러시아의 디폴트(향후 디폴트로 인정될 경우)는 지난 1917년 러시아 혁명이후 '볼셰비키 정부'가 제정러시아 왕실의 부채 상환을 거부한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국제 금융시장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는 중대 이슈다. 

러시아는 또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한 뒤인 1998년 8월 루블화 표시 외채에 대해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하기도 했다. 3개월 뒤 외채를 현금 혹은 새로운 장기 상품으로 교환해 줬는데, 외국 투자자들은 투자 수익의 국외 인출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방 측이 내달 초 선언할 러시아의 디폴트가 세계 금융시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 캐나다 'TD 이코노믹스'의 경제학자들은 "글로벌 시장은 물론, 신흥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국인 보유 국채가 200억 달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998년 모라토리엄 당시 미지급 채권이 360억 달러였고, 소련혁명 후 제정러시아의 외채도 300억 달러였다. 제정러시아의 300억 달러는 현재 가치로 따지면 1천억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유로본드 투자자들이 앞으로 러시아를 상대로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문제의 유로본드는 영국법에 따라 발행됐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영국 법원이 소송을 담당한다. 하지만, 러시아는 유로본드 투자 설명서에서 분쟁 발생시 외국 법원의 관할권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어둔 상태여서 양측의 법정 대결도 쉽게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사진출처:위키피디아

국제 금융시장에서 러시아를 두둔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두바이 기반의 투자 은행 아르캄 캐피털(Arqaam Capital)의 자산 관리 책임자인 압둘 카디어 후세인(Abdul Qadeer Hussain)은 “러시아는 지급할 의사를 갖고 있고, 능력도 된다"며 "미국의 은행이 지급을 막았으니,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법원이 미국을 향해 동결된 러시아 외환보유고 계정을 풀어 지급할 것을 명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서방으로부터 제재를 받은 자국 기업들의 회사채 상환 의무도 러시아 중앙은행으로 넘기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그럴 경우, 러시아의 모든 대외 채무는 러시아 중앙은행의 관할로 넘어간다. 서방측이 동결한 러시아 중앙은행의 계정을 해제하지 않으면 '배째라'로 나올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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