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뒤집기) 우크라이나 전쟁 기사 제대로 읽는 법
(우크라 뒤집기) 우크라이나 전쟁 기사 제대로 읽는 법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4.15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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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작전도 내일이면 50일째를 맞는다. 당초 예상을 깨고 이렇게 오래 끌 줄 몰랐다는 평가는 일단 접어두자. 우리가 이미 겪은 바 있는, 전쟁의 참상에 대한 책임 공방도 제껴두자. 전쟁은 처음부터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에도 슬슬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이즈음, 국내 언론의 보도 자체에 대해 한번쯤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불타는 건물/사진출처:러시아 국방부 동영상 캡처 

몇 가지 전제를 안고 시작한다.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터에서는 오로지 '적이냐 아니냐' 만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적을 제압하기 위해 각종 속임수와 사악한 작전, 음모나 다름없는 전략및 전술도 동원된다. 적의 사기를 꺾기 위한 '프로파간다'(선전 선동)도 전투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진다. 언론 (매체)은 '프로파간다'의 중요한 도구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이미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가짜뉴스로 정의하고, 보도 자체나 유입을 차단하고 있다. 디지털 정보의 유통 채널(온라인 매체와 SNS)를 통제하기도 했다. 구글(유튜브)과 페이스북, 트위트 등 미국의 SNS 플랫폼도 러시아 일부 언론 매체를 가짜뉴스의 유통 채널이라며 계정 자체를 막아 버렸다. '프로파간다' 전투에서 러시아는 개전 직후부터 이미 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현장에 간 종군기자들에게는 폭탄이 터지고 사람이 죽고, 건물이 무너지는 판에 '실체적 진실'을 따져볼 여유가 없다. 일단 질러야(기사를 써야) 한다. 문제는 누구의 말을 듣고, 믿고 보도하느냐다.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을 각각 종군(從軍)하는 기자들의 눈과 귀도 서로 마주보고 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같은 사안을 놓고 정반대의 기사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아주 당연하다. 

대표적인 사건이 수도 키예프(키이우) 인근의 '부차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현장에 간 종군기자들의 시각은 완전히 다르다. 서로 다른 현장을 보거나, 알고 있었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은 전쟁이 왜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독립적이고 국제적인 조사가 필요한 사안이다. '실체적 진실'은 시간이 많이 흐른 뒤 아니, 전쟁이 끝나야 밝혀질 것이다.

러시아측이 제공한 부차 사건 동영상.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시신을 줄으로 묶어 끄는 장면(위)와 카메라가 지나간 뒤 시신이 스스로 일어나 앉는 모습/캡처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이다. 1990년대 중반 발칸반도에 일어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내전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민족과 종교가 다른 두 세력(세르비아계와 보스니아 회교도)이 서로 상대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바람에 벌어진 발칸반도의 '인종 청소'를 떠올리는 것은 무리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전쟁 당시, 서로 밀고 밀리는 과정에서 나온 수많은 민간인 희생을 되돌아보고 싶다. 누가 왜 그들을 죽였는가? 

더욱 안타까운 것은 '실체적 진실'을 접어둔 채 벌이는 양측의 '프로파간다'가 몰고온 파괴력이다. '부차 사건'에 대한 국제사회의 일방적인 우크라이나 지지는 급피치를 올리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의 협상을 교착상태에 빠뜨렸다. 우크라이나가 '부차 사건'을 계기로 '승기'(?)를 잡았다는 판단을 하는 듯하다.

우크라이나 접경의 러시아 도시인 브랸스크에 대한 (우크라이나측의) 포격으로 희생자들이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러시아 국방부가 키예프 지휘센터에 대한 공격 재개 운운하자, 우크라이나도 보복 포격을 경고하는 등 지지 않고 맞서는 상태다. 전쟁을 더욱 질질 끌 위험성은 그만큼 높아졌다. 

언론도 국익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다. 유럽이나 미국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발등의 불'이나 마찬가지다. 국익을 따질 만하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이 다르다. 지정학적으로, 또 국제정치학적으로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국내의 정치 이슈 보도에서 확연하게 둘로 갈리는 소위 조중동(보수)과 한겨레 경향 등 진보 온·오프라인 언론이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에 관한 한 거의 다르지 않다. (서방) 외신을 그대로 인용하기 때문이다. 

확인되지 않은, 믿기 어려운 러시아 관련 기사들이 크게 다뤄질 때마다 러시아 포탈 사이트 얀덱스(yandex.ru)에서 그 출처를 뒤져봤다. 결과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한 독립 언론인(우리 식으로는 유튜버)가 서방 언론에게 솔깃한 정보를 올리면, 일부 인터넷 매체가 이를 기사화하고, 미국과 영국 언론이 마치 확인된(?) 사실처럼 보도했다. 국내 언론은 그 보도를 그대로 베낀다.

가장 최근에 이슈가 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제 5국의 숙청설을 추적해 봤다. 국내 언론은 엊그제 영국의 대표적인 정론지 더 타임스를 인용해 그 사실을 보도했다. 더 타임스는 11일 "FSB의 고위 관료 150여명이 해임됐다"며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에서 손쉽게 승리를 거두지 못한 군사 작전의 실패에 대한 희생양을 찾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 대상은 푸틴 대통령이 FSB의 수장 시절, 직접 만든 FSB 제 5국과 세르게이 베세다 국장이다. 베세다 국장은 지난 2009년부터 제 5국을 맡아왔으니, 푸틴 대통령의 신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지난 2014년 2월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소위 '유로 마이단' 시위로 키예프를 떠나기 직전까지 시위 현장에 있었다고 한다.

안드레이 솔다토프가 4월 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캡처
안드레이 솔다토프의 글을 인용보도한 우크라이나 프라우다/웹페이지 캡처
안드레이 솔다토프의 아겐투라.ru를 인용했다는 매체 기사/웹페이지 캡처

기사및 사진 출처: 우크라이나 프라우다  

얀덱스.ru에서 세르게이 베세다를 검색해 보면, FSB의 제 5국 150명이 푸틴 대통령의 처분에 달렸다는 기사들이 뜬다
검색중에는 모스크바 타임스의 베세다 국장이 왜 레포르토보 교소도로 갔는가 라는 기사가 뜬다. 안드레이 솔다토프가 쓴 기고문이다

얀덱스에서 FSB 숙청설의 출처를 따라가 보면, 러시아의 기획탐사 사이트 안드레이 솔다토프(아겐투라 편집장)를 만나게 된다. 구소련 붕괴후 등장한 상업신문 '시보드냐'(오늘이라는 뜻)의 기자를 거쳐 '이즈베스티야'에서 일하다 지난 2000년 9월 아겐투라(Агентура.ru) 사이트를 만들었다. 일찌감치 온라인 매체에 관심을 가진 셈이나,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는 그러나, 자신의 SNS를 통해 비밀스런 FSB 소식을 올렸다. 팩트 확인은 주요 언론 매체의 몫인데, 영국의 더 타임스와 같은 정론지가 받아썼다. 그 내용의 폭발력을 감안한 게 아닐까 싶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만든 FSB 제 5국의 숙청, 군사작전에 대한 책임론, 악명높은 레포르토보 교도소 수감 등 자극적인 내용 일색이다. 1930년대 스탈린의 '대숙청' 시절 사용됐던 '레포르토보 교도소'는 '푸틴의 철권 통치'를 상상시키는 데 좋은 소재다.

'지금은 전쟁중'이니 팩트 확인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더욱이 미-소 냉전 시절, 서방 유력 언론들은 늘 소련의 내부 동향을 파악하고 확인하기 위해 크게 질러 보곤 했다. 국내 모 언론의 북한 기사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쇼이구 국방장관이 실각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 뒤, 회의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쇼이구 장관. 외신은 냉전 시절 늘 이런 식으로 소련의 내부 동향을 파악하곤 했다/사진출처:러시아 국방부

베세다 국장이 현재 자택연금 상태인지, 레포르토보 교도소에 갇혀 있는지 잘 모른다. 확인 가능한 것은 솔다토프가 지난 8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친 우크라이나 성향의 인터넷 매체들이 이 사실을 보도하고, 급기야 11일에는 영국의 더 타임스가 기사화했다는 사실 뿐이다.

재미 있는 것은 러시아 영자지 '더 모스크바 타임스'의 12일자 러시아어판이다. 모스크바 타임스는 솔다토프의 기고를 실으면서 "이 견해는 본지(모스크바 타임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Мнение автора может не совпадать с позицией редакции The Moscow Times)라고 단서를 달았다. 

솔다토프가 이 기고문에서 주장한 것은 영국의 더 타임스 보도와는 결이 좀 다르다. FSB 제 5국이 우크라이나 정세를 오판했거나, 키예프 정권에 반대하는 친 크렘린 세력을 만들고 자금을 조달하는 데 실패한 책임을 졌다는 분석도 있지만, 그는 그 이유를 다르게 본다고 했다. 

그는 FSB 제 5국이 미 정보기관 CIA와의 공식 연락 통로였다는 점에 주목한 뒤 "모스크바 (지휘부)는 군사작전 개시 후 미국의 정보가 왜 그렇게 정확했는지 의아해 했다"며 "푸틴 대통령은 CIA와 접촉하는 부서에서 적과 내통한 반역자를 찾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주장과는 또 다른 '더 타임스'와 '국내 언론'의 보도 내용은 소위 입맛에 드는 내용만 빼내 기사화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아주 대단한 비밀을 파헤친 것은 같은 러시아 군사작전에 관한 기사를 알고보면 이런 식이다. 솔다토프의 신변에 대해 러시아에서 공식 확인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마디로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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