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 바가노바 발레학교의 오늘
상트 바가노바 발레학교의 오늘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4.10.11 0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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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로프발레단의 한국공연을 앞두고 국내 음악기자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다녀왔다. 키로프 발레단을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고, 그런 발레단이 가능한 학교, 바가노바 발레학교에 대한 기사가 눈길을 끈다.

다음은 조선일보에 난 바가노바 발레학교의 이야기다. 키로프는 바가노바, 볼쇼이에는 볼쇼이 발레학교가 있다.

“즈드라스트부이체(안녕하세요)?”
아이는 두 무릎을 마름모처럼 굽히고 양팔은 우아하게 벌리면서 인사를 했다. 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 학생들은 복도에서 마주친 낯선 이에게도 발레로 말을 건넸다.

조지 발란신, 알렉산드라 다닐로바, 루돌프 누레예프, 나탈리아 마카로바…. 고전 발레의 눈부신 이름들을 새겨넣은 이 기숙학교는 미로(迷路) 같은 낡은 복도가 곳곳에 엉킨 220살짜리 벽돌 건물이다. 그러나 300명 재학생들(8년제)이 일구는 꿈으로 내부는 환하고 생기가 넘쳤다.

피아노 멜로디가 스며나오는 1학년 연습실. 100대1의 경쟁을 뚫고 입학한 9~10세 꼬마들이 발레의 기본 자세를 익히고 있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얼굴들이지만 교사로부터 검지로 중지를 감싸는 손가락의 모양, 상체의 각도, 다리를 벌리는 폭, 시선의 높이 등을 교정받는 표정들은 영락없는 무용수들이다.

어느 연습실이든 바닥은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바가노바 졸업생 중 엘리트들만 뽑아가는 키로프발레단의 마린스키 극장 무대 경사(무대 앞쪽보다 뒤쪽이 50㎝ 높다)를 본뜬 것이다. 마룻바닥에 물을 뿌린 후 회전 동작을 다듬고 있던 예가체리나 블로슈키나(16)양은 “동기들 중 절반도 버티지 못할 만큼 경쟁이 치열하지만 ‘여기가 세계 최고’”라며 “마린스키 극장을 거쳐 갈리나 울라노바 같은 발레리나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어와 피아노가 필수과목이며 문학·미술·역사·수학과 연기 훈련, 펜싱 훈련까지 받는다. 클래식 발레의 문법(文法)으로 통하는 바가노바 메소드다. 아그리피나 바가노바(1879~1951)가 1930년대 개발한 이 훈련법은 무용수의 내면과 표현력을 강조하는 것으로, 역동적인 볼쇼이 발레와 달리 우아하고 섬세한 동작들을 볼 수 있는 키로프 발레의 바탕이 된다.

정교한 동작과 자세를 통해 무용수의 감정을 다듬어주는 게 이 메소드의 핵심. 알렉세이 크젤스키(13)군은 “일상 생활에서도 마음을 열고 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몸에 배, 고전 발레의 배역들을 더 깊이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알트나이 아스모라토바(여·41) 예술감독은 “이 섬세하고 전통적인 훈련법의 위대함은 우리가 배출한 스타들이 입증해준다”고 말했다.

3층 복도의 양쪽 벽에는 바가노바를 비롯해 1872년부터 1900년대 초까지의 졸업생 사진들이 죽 걸려 있다. 바가노바의 출발은 1738년 만들어진 황제발레학교. 이 학교를 졸업한 역대 엘리트들은 마린스키 극장 무대에 섰고, 은퇴하면 다시 바가노바의 교사가 돼 후배들을 지도하며 전통은 대물림돼왔다.

고전 발레의 교과서로 불리는 ‘백조의 호수’ 한국공연(10월 29~31일 세종문화회관)을 앞둔 미하일 바지예프(42) 키로프 발레단 예술감독은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와 키로프 발레단은 한몸”이라고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글·사진 박돈규기자 coeu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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