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반전 시위가 '칸 국제영화제'로 옮겨붙었다. 가슴에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그리고, 흰색 속옷을 붉은 페인트를 묻힌 한 여성이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의 레드카펫으로 뛰어들어 "강간을 멈춰라"고 울부짖었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여성 성폭행을 비판하는 퍼포먼스였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된 영화 ‘Three Thousand Years of Longing’의 감독과 배우들이 20일 레드카펫을 걷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여성이 겉옷을 벗어던지고 나체로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그녀는 어리둥절해 하는 영화인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강간을 멈춰라"고 소리쳤다. 현장 보안 요원들이 달려오자 그녀는 레드 카펫에 무릎을 꿇고 더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보안요원들이 서둘러 그 여성을 코트 등으로 감싼 뒤 저항하는 그녀를 바깥으로 내보냈다. 소동은 금방 끝났고, 이후 행사는 아무 일이 없는 듯이 진행됐다.
목격자들은 "한 여성이 갑자기 (바디 페인팅을 가린) 겉옷을 벗어던지고, 레드 카펫의 계단을 뛰어내려와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며 "가슴에는 STOP RAPING US(우리를 강간하지 말라)고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올해 칸 영화제도 '반러시아' 분위기 속에 막을 올렸다.
대중 온라인 매체 '이노스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화상으로 칸 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했고, 러시아군에 포로로 잡힌 뒤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아직 확인된 사실이 아님) 리투아니아 출신의 영화감독 만타스 크베다라비치우스의 유작(遺作) '마리우폴리-2'가 상영됐다.
또 러시아에서 반체제 인사로 분류되는(?)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차이코프스키의 아내'의 상영도 개막 첫날로 앞당겼다. 동성애 작곡가의 아내가 겪은 짝사랑 이야기를 담은 '차이코프스키의 아내'는 올해 황금종려상 경쟁 부문에 올라가 있다.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물이다. 고려인 출신의 전설적인 소련 로커 '빅토르 최'의 일대기를 다룬 '레토(여름이라는 뜻)'를 지난 2018년 칸 영화제에 출품한 감독이다. 그러나 그는 출연진들과 함께 레드 카펫을 밟지 못했다. 공금 횡령 혐의로 러시아 수사당국에 의해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빅토르 최의 역을 맡은 한국인 배우 유태오 등 남녀 주연 배우들과 제작진이 레드 카펫에서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이름이 적힌 '보드'를 들면서 외신 카메라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덩달아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국제적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 **사진:현지 매체 시네마홀릭
아래 유튜브 영상에서 2018년 칸 영화제 출품 '레토' 관련 사진및 영상,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을 만날 수 있다.
칸 영화제 측은 개막 전부터 "반체제 인사를 제외하고 러시아 언론인도, 러시아 공식 대표단도 영화제에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참석이 허용됐다. 반체제 성향이 강한 데다가 그의 어머니가 우크라이나인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공금 횡령에 대한 법적 절차(가택연금)가 끝난 뒤 러시아를 떠났다. 현재 베를린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칸 영화제측이 기대한 대로, 그는 자신의 영화 '차이코프스키의 아내' 상영 전에 짤막한 반전 메시지를 내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