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제재로 러시아를 강제 '디폴트'로 몰아가는 미국- 흥미로운 러시아의 반격?
금융제재로 러시아를 강제 '디폴트'로 몰아가는 미국- 흥미로운 러시아의 반격?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6.01 15: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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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재무부, 러시아 금융기관과 거래 금지 유예 기간 연장 불허 - 러 디폴트로 몰렸다?
러, 가스대금의 루블화 결제 방식을 원용한 새 지급방안 강구, '통화배상 조항'도 찾아내

러시아를 디폴트(채무 불이행)로 빠뜨리느냐? vs 빠져나가느냐? 를 놓고 미국과 러시아간의 힘겨루기가 본격 시작됐다. 미국은 러시아 정부가 자국민들에게 국채(유로본드)의 이자및 원금 일부를 상환할 수 있는 길목을 막아섰고, 러시아는 그 벽을 뚫고 나갈 틈을 애타게 찾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보복으로 러시아에 가혹한 금융제재를 가해온 미국은 이제 러시아를 코너(디폴트)로 몰아 국제 금융시장에서 완전히 축출할 태세다. 그 일환으로 미국은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허용해준 러시아와의 금융 거래를 완전히 금지했다.

미국 재무부, 러시아 대외채무 이행을 위한 라이센스(허가)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했다/얀덱스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는 지난 24일 러시아가 유로본드의 이자및 원리금(이하 이자)를 미국 채권자들에게 상환할 수 있도록 허가한 금융제재 유예 조치를 더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자국민을 상대로 러시아 금융기관(재무부, 중앙은행 및 주요 은행, 국부펀드 등)과 거래를 전면 금지하되, 러시아 국채및 주식 투자자들이 이자나 원리금, 주식 배당금을 받을 수 있도록 지난 25일까지 한시적으로 유예기간을 뒀는데, 이마저도 없앤 것이다. 러시아는 미국 채권자들에게 돈(이자와 원리금, 배당 등)을 주고 싶어도, 직접 줄 수 있는 길이 사라지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가 지난 27일까지 채권자들에게 지불해야 할 유로본드 이자는 1억 달러(약 1,265억 원) 정도. 2026년 만기 유로본드의 이자및 원리금 7,125만 달러와 2036년 유로본드 이자및 2,650만 유로(2,800만 달러)를 합친 금액이다. 

러시아 재무부는 일찌감치(지난 5월 20일) 유로본드 이자를 연방증권예탁결제원(NSD, 러시아어로는 Национальный расчетный депозитарий)에 이체했다고 발표했다. NSD는 금융기관을 통해 채권자들에게 이자를 전달한다. 하지만, 미 재무부가 지난 25일부로 러시아와의 거래 금지 유예 조치를 연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채권자들은 현실적으로 유로본드 이자를 받을 길이 없다. 

미 재무부/사진출처:위키피디아
미 재무부/사진출처:위키피디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 채권자들은 지난 27일까지 유로본드 이자를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가 이체한 이자가 중간에 막혀 버렸다는 뜻이다. 이 상태로 디폴트 유예기간 한달이 지나면, 러시아는 강제로 '디폴트'에 빠지게 된다. 재닛 옐린 미 재무장관은 지난 18일 G7 재무장관 회의를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새롭게) 이자 지급 방법을 찾지 못하면 기술적으로 디폴트 상태가 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러시아가 돈을 양손에 든 채 디폴트에 빠져야 할까? 채권자들에게 이자를 주고 싶어도 못 주게 하니, 그냥 '빼째라'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미국이 쳐놓은 덫에 빠지는 꼴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지불 방법을 찾는 일이다. 

우선, 자존심은 상하지만, 제 3국의 은행을 통해 미국 채권자들에게 이자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다행히 유럽연합(EU)는 지난달 초 러시아 정부가 3월 9일 이전에 발행한 유로본드의 (이자및 원리금) 상환은 대러 금융제재에서 제외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EU에서 탈퇴한 금융대국 영국도 지난 4월 1일 러시아가 최소한 6월 30일까지는 자국 금융 인프라를 통해 외채를 상환하는 것을 허용했다.

영국을 통해 이자를 상환한 경험도 있다. 러시아는 지난 4월 초로 지불 기한이 돌아온 유로본드의 이자 약 6억 5,000만 달러(약 8,200억 원)를 뒤늦게 (4월 29일) 시티은행 런던지점을 통해 외화로 지불한 바 있다. 당시 러시아 측은 유로본드의 발행 대행사인 JP모건체이스 측에 이자 지급을 요구했으나, JP모건이 미 재무부로부터 달러의 출금및 사용 승인을 얻지 못해 이자 지급을 포기했다. 러시아 측은 발끈했지만, 어쩔 수 없이 시티은행 런던지점으로 외화를 보내 이자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JP모건체이스/사진출처:위키피디아

또 다른 방법은 루블화 상환 방안이다. 러시아 재무부는 미 재무부의 제재 유예 연장 불허 결정이 내려진 이튿날(25일) "러시아 재무부는 책임 있는 채무자로서 모든 외채의 변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임을 확인한다"며 "(미국의 불허 조치로) 달러화로 이자 상환이 불가능한 점을 고려해 러시아 루블화로 상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채권자는 (루블화로 받은 이자를) 연방증권예탁결제원(NSD)에서 외화로 바꿔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EU와 같은 비우호적 국가(모두 48개국)의 비거주자는 이론적으로 러시아 재무부 산하 특별 투자 소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루블을 달러로 바꿀 수 있다. 실제로 바꿔줄 지 여부는 순전히 재무부 소위원회에 달렸다. 재무부가 환전을 보증한다면 실제로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모스크바에 있는 NSD의 위치와 건물/얀덱스 지도 캡처

그러나 미국 투자자들은 본국의 허락없이는 러시아 재무부와 거래할 수 없다. NSD에서 루블을 달러로 바꿔갈 수 없다는 뜻이다. 미국을 제외한 유럽의 투자자들은 이자를 루블을 받아 NSD를 통해 달러로 교환 가능하다. 그럴 경우, 디폴트를 선언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지난 4월 초에는 러시아가 왜 이 방법을 쓰지 않았을까? 외국인 투자자들이 NSD에서 루블을 달러로 교환하고, 러시아에서 인출해 갈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아예 신청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러시아는 이같은 루블화 상환 방식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지난 30일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이 직접 나섰다. 그리고 그 원리와 절차를 설명했다. 투자자는 러시아 은행에 외화와 루블화 계좌를 각각 개설한 뒤 상환을 신청한다. 러시아 측은 유로본드 이자를 루블로 따져 투자자의 루블화 계좌로 우선 입금하고, 달러화로 바꾼 뒤 투자자의 외화 계좌에 입금시켜 준다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 방식은 러시아가 비우호국가들에게 가스 대금의 루블화 결제를 요구하면서 제시한 그 방법이다. 루블화와 외화의 입금 선후가 바뀌었을 뿐이다. 가스 대금의 루블화 결제의 경우, 외국의 가스 수입업자들이 러시아 에너지 업체 '가스프롬'의 자회사인 가스프롬방크에 개설한 외화 계좌에 가스 대금을 외화로 입금하면, 루블화로 바꿔 수입업자의 루블화 계좌→가스프롬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r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실루아노프 장관도 "루블화 이자 지급 방식이 가스 대금의 루블화 결제 방식과 유사하다"며 "좀 더 정교한 메커니즘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는 (6월) 23일을 기한이 돌아오는 유로본드 2건의 이자 2,350만 달러를 지급할 때 이 방식을 본격적으로 가동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가 6월에 지급해야 할 국채 이자는 3억9,420만 달러에 달한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러시아, 가스 대금의 루블화 결제 방식으로 국채 (이자)를 (루블화로) 지급/얀덱스 캡처

투자자들이 이 방식마저 거부할 경우, 러시아는 법률적으로 다툴 계획으로 알려졌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NSD가 서방의 제재로 유로본드의 이자를 투자자들에게 외화로 지급하지 못하더라도, 러시아가 디폴트를 피할 수 있는 길은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발행 유로본드에는 '러시아가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약정한 통화의 지급이 어려울 경우 다른 통화로 지급할 수 있다'는 조항이 붙어 있다는 것이다. 

현지 매체 rbc는 지난 27일 '미국의 라이센스(허가) 없이도 디폴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이 부분을 보다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했다. 우선, 러시아가 지난 2018년 이후 발행한 유로본드에는 NYT가 지적한 "다른 통화로 상환한다"는 조항(통화 배상 조항)이 붙어 있다고 확인했다. 미국의 제재조치로 상환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은 '러시아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으니, 루블로 상환하겠다는 주장을 펼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유로본드/사진출처:moneyinvesto.com
유로본드/사진출처:moneyinvesto.com

'통화 배상 조항'에 따르면 러시아가 법원의 결정을 받아 이자를 루블화로 지불하고, 투자자가 그 다음날 달러로 교환할 수 있다면 지불 의무가 이행된 것으로 간주된다. 달러로 교환시 표시된 금액에 모자라는 경우, 러시아는 부족분을 보전해주는 것은 물론, 관련 거래 비용까지 보상해야 한다.

문제는 미국의 대러 제재에 의한 일련의 상황을 '통화배상 조항'을 적용할 조건이 되느냐 여부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미국 정부와 미국의 주요 국제신용평가기관은 이를 배척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러시아의 디폴트 규모가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2~3%에 이를 것으로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추산했다. 장기적으로 러시아의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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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도 2022-06-01 16:0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