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막오른 러-유럽 '석유 전쟁' - 하늘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분석) 막오른 러-유럽 '석유 전쟁' - 하늘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6.01 08: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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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금수 제재를 버텨낼까? EU가 고유가 인플레이션 속 단합을 유지할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기어코 러-유럽간의 '석유 전쟁'으로 번질 조짐이다. 유럽연합(EU)의 러시아 석유 수입금지(금수) 조치로 수입이 줄어든 러시아가 먼저 손을 들 것인지, 고유가와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사회적 민생 불안에 시달린 유럽이 서둘러 대안을 모색할지 관심이다. 바다 건너 이를 지켜보는 미국은 일단 느긋해 보인다. 

하지만, '석유 전쟁'은 그 특성상 한 대륙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 세계가 그 영향권 속으로 빨려들면서 '고유가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EU외 다른 국가들도 대비책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의장:EU, 러시아 석유 수입의 3분2를 금지하기로 합의/얀덱스 캡처
샤를 미셸 의장의 기자회견. 올해말까지 러시아 석유 수입의 90% 가량이 금지될 것이라는 자막이 떠 있다/현지 TV매체 동영상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벨기에 브뤼셀에 모인 EU 27개국 정상들은 30일 "러시아산 원유 수입의 3분의 2를 차단하는 석유 금수 조치를 포함한 제 6차 대러 제재안에 합의했다"고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의장이 발표했다. 또 "올해 말까지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량의 90%를 감축할 수 있다"고 했다. 제재안에는 러시아의 국민은행격인 스베르방크의 국제공동결제망 '스위프트'(SWIFT) 배제와 3개 러시아 국영방송의 수신 금지, 러시아 기업인들에 대한 제재 목록 확대 등이 포함됐다. 

6차 제재안의 핵심은 지난 한달 가까이 진통을 겪어온 러시아 석유 금수조치다. EU 정상들은 지금부터 해상 수송(유조선)을 통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줄이기 시작해 6개월 후에는 완전히 금지(석유류 제품은 8개월 시한으로)하기로 했다. 그러나 송유관을 통한 원유 수입은 막지 않기로 했다. 헝가리 등 일부 회원국들의 강력한 반대에 '정치적 타협'으로 마련한 절충안이다.

현지 인터넷 매체 rbc에 따르면 유럽은 전체 원유및 석유제품 수요의 28%(2021년 기준)를 러시아에서 수입하는데, 이 중 3분의 2를 해상으로, 나머지를 송유관으로 들여온다. 이를 위해 EU가 지난해 러시아에 지불하는 돈은 708억 유로. 해상 수송을 금지하기로 했으니, 수입의 3분의 2가 차단된다는 뜻이다. 

미셸 의장은 나아가 "독일과 폴란드가 이미 송유관을 통한 러시아 석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축소할 것이라고 약속했다"며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90%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관세청에 따르면 러시아의 지난해 원유및 석유제품 수출은 1,800억 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37%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천연 가스의 수출은 640억 달러로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EU가 러시아산 원유및 석유제품의 수입을 90% 감축한다면 러시아의 타격은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몇개월 후 현실화된다면 러시아에게는 '가장 가혹한 경제적 형벌'(미 뉴욕타임스지 평가)이 될 게 틀림없다. 

EU, 러시아 원유의 부분 금수조치에 합의. 무엇을 뜻하나?/현지 매체 rbc 웹페이지 캡처

설사 러시아가 유럽으로 향하던 원유를 아시아 등 다른 곳으로 돌린다고 해도, '반쪽 짜리'에 불과하다는 이번 제재에 따른 손실만도 연간 최대 100억달러(약 12조4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블룸버그 통신은 추산했다. 지난해만 해도 러시아 수출 원유의 약 60%가 유럽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로 EU 회원국)로, 20%가 중국으로 갔기 때문이다. 미셸 의장이 이번 제재 조치를 통해 “러시아가 전쟁 무기의 비용을 대는 막대한 돈줄을 차단하겠다”고 큰소리를 칠 만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러시아는 막대한 전비를 부담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국제 유가의 향후 흐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EU의 금수 조치로 국제 유가가 추가 상승한다면, 러시아는 수출 물량 부족에 따른 손실을 고유가로 메울 수 있다. EU의 금수 조치 합의가 발표된 뒤 북해산 브렌트유는 지난 3월 9일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20달러(7월 인도분 31일 장중 124달러 기록)를 넘어섰다. 유가가 배럴당 110~120달러선에서 움직인다면 러시아가 '크게 비명을 지를 일'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하로 떨어진다면 생각을 달리해야 할 지도 모른다.

러시아는 세계 3대 산유국 중 하나다. 지난 2021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산유국의 원유 생산량을 통제하는 'OPEC+ 체제'(오펙 플러스, OPEC+비OPEC 9개국)를 만들고 주도해 왔다. 유가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다. OPEC+ 회원국들은 지난 5월 초 원유 생산량을 하루 43만2.000배럴 늘리기로 결정했다. 차기 회의는 6월 2일 열린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 1월 러시아는 하루 1,130만 배럴을 생산해 780만 배럴 정도를 해외로 수출했다. 러시아로서는 EU의 금수조치로 남아도는 원유를 어디로 보낼 것인지가 고민이다. 인도와 중국 등에는 이미 파격적인 가격(30% 이상 인하)으로 원유 공급을 늘린 상태다. 

에너지 정보 분석업체인 케플러(Kpler)는 EU의 금수 조치로 러시아 원유 생산량이 10% 가량, 하루 100만 배럴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이번 금수조치가 러시아의 원유 생산 잠재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면서 "OPEC의 일부 회원국이 러시아를 'OPEC+' 회의에서 잠정적으로 배체시킬 가능성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OPEC 일부 회원국들이 원유 생산 쿼터(결정)에 러시아 참여를 중지시키는방안을 논의/얀덱스 캡처

OPEC가 러시아와의 연대를 끊고 미국 등 서방진영의 요구대로 국제 유가를 낮추기 위해 원유 증산에 나선다면, 러시아는 EU의 금수 조치 이상의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OPEC를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서방의 대러 제재에 여전히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에너지 담당 고위 관리들이 잇따라 사우디를 방문하고 있지만, 사우디의 태도를 바꾸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해야 할 것은, 역시 차기 OPEC+ 회의다.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인한 원유 부족을 메우기 위해 산유국들에게 생산량을 대폭 늘릴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OPEC+ 회원국들은 단합된 모습을 보여왔다. '반러시아' 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기는 쉽지 않다.

모하메드 바르킨도 OPEC 사무총장은 EU의 금수조치 움직임에 대해 "러시아의 수출 부족분은 에너지 시장에서 바로 드러날 것이며, 다른 산유국들이 이를 보충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OPEC+'는 '포스트 코로나'와 여름철 수요 증가에 맞춰 7월 생산량을 어느 정도 늘리기로 잠정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EU의 금수조치에 따른 대응 증산은 예상되지 않고 있다.

금수조치로 유럽이 치러야할 희생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금수조치 합의후 “EU가 하나임이 증명됐다”고 환영했지만, 다가올 경제적 후폭풍이 걱정이다. OPEC+가 차기 회의에서 대폭 증산을 결정하지 않는다면 국제유가 상승은 필연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수석경제학자인 파티 비롤은 최근 독일 슈피겔과의 회견에서 "현재의 글로벌 에너지 위기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석유 위기보다 훨씬 크고 더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며 "여름철이 되면 수요 증가로 유럽의 원유 시장은 큰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원유 전문 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도 "유럽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전면 금지하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선에 근접했던 2008년 수준까지 뛰면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관건은 EU 회원국들이 고유가와 그에 따른 물가 상승을 언제까지 버텨 낼 수 있느냐다. EU 통계청(Eurostat)에 따르면 EU의 인플레이션은 지난 4월(7.4%)에 이어 5월에도 사상 최고치인 8.1%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상징하는 EU 이미지/사진출처:EU 홈페이지
러시아의 송유관 모습. EU의 러시아 원유 부분 금수에 합의했다는 현지 TV채널 장면/캡처

고유가가 계속되면 EU의 회원국간 갈등 표출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번 금수조치에서 제외된 육상 수송(송유관)에 대한 불만이 일부 국가들에서 터져나오면서다.

육상 수송은 러시아에서 벨라루스를 거쳐 남북 유럽으로 가는 '드루즈바(러시아어로 '우정'이라는 뜻) 송유관'을 통해 이뤄진다. 벨라루스를 기점으로 북부 라인은 독일과 폴란드로, 남부 라인은 우크라이나를 거쳐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체코로 이어진다.

북부 라인은 이미 단계적으로 금수하기로 약속했지만, 남부 라인이 러시아 원유를 계속 수입하면서 갈등의 불씨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독일과 벨기에, 네덜란드 등 해상으로 러시아 원유를 수입한 나라들은 비싼 값으로 대체 공급처(주로 브렌트유)를 구해야 하지만, 헝가리 등은 저렴한 러시아 우랄산 원유를 계속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아예 우랄산 원유를 아시아 지역에 30% 이상 할인한 '싼 값'으로 제공하고 있다. '드루즈바 송유관'을 통한 원유도 값싸게 공급하려고 하지 않을까? 

알렉산드르 드 크루 벨기에 총리는 EU 정상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EU 집행위원회는 헝가리에 대한 면제 조치가 언제까지 유효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고, 체코도 그 혜택을 볼 것"이라며 "헝가리가 빨리 우랄산 전용의 정유 시설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수 조치에 빨리 동참하라는 요구나 다름없다.

유가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재 조치의 불공평함에 대한 일부 회원국의 불만이 EU를 엄청난 갈등 속으로 빠뜨릴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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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시아 2022-06-03 04:20:53
OPEC+는 2일 각료회의에서 오는 7∼8월 각각 하루 64만8천 배럴씩 증산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는 기존보다 50%가량 많은 양으로, 석유 소비가 늘어나는 계절적 요인과 EU의 대러 제재 등 감안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5월에 결정된 6월의 증산 규모는 하루 43만2천 배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