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목의 가시' 같은 EU의 육로 운송 제재 - 리투아니아와 노르웨이가 풀어줄까?
(분석) '목의 가시' 같은 EU의 육로 운송 제재 - 리투아니아와 노르웨이가 풀어줄까?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7.03 0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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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해 '스발바르 제도'의 러시아 타운으로 가는 컨테이너, 노르웨이서 차단
리투아니아, 러시아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행 철도 화물 50%이상 운송 금지

러시아에게는 목에 작은 가시가 걸린 것 같다. 130일째를 맞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흐름을 바꿀 만큼 폭발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 성가시고 불편한 게 사실이다. 러시아 본토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역외영토 등으로 향하는 길목을 리투아니아와 노르웨이가 유럽연합(EU)의 대러 제재조치를 이유로 차단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가 러시아의 접근로를 막은 곳은 북극해의 '스발바르'(러시아명 '쉬피츠베르겐'·러시아어로는 Шпицберген 쉬삐쯔베르겐) 제도다. 지난 4월 스발바르 제도에서 일하고 있는 러시아인들에게 가는 화물 컨테이너 2개를 중간에서 차단한 것이다. 리투아니아도 지난달 중순(18일) 러시아 역외영토인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화물의 일부 품목 환승을 막았다. 

두 나라의 차단 근거는 러시아에 대한 EU의 제재조치다. EU는 지난 3월 중순 합의한 제5차 대러 제재조치를 통해 러시아의 육상 운송 루트를 차단하기로 했다. 물론 생필품과 의료, 농업 관련 품목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제외됐다.

러-노르웨이 국경검문소 '스토르스코그'/사진출처:위키피디아

그러나 노르웨이는 러-노르웨이간 유일한 육상 국경검문소인 '스토르스코그'를 아예 폐쇄하는 방법으로 '스발바르'행 화물 운송을 막았다. 러시아는 '스발바르 제도' 거주 자국민들에게 전달할 각종 생필품으로 가득 채운 콘테이너들을 이 검문소를 통해 노르웨이 북부 '트롬쇠' 항구로 옮긴 뒤 '스발바르'행 화물선에 선적하는데, 화물 트럭들이 검문소 앞에서 다시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스발바르 제도는 국제법상 노르웨이 영토로 간주되는 북극해에 있는 섬들이다. 그러나 러시아 등 북극해 연안 국가들은 1920년 '스발바르 조약'을 맺고, 섬과 인근 해역에서 자원 개발을 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국영 석탄 회사 '아르크틱우골'(Арктикуголь) 등이 현지에서 석탄 채굴 작업을 하고 있는 이유다. 

스발바르 제도의 항공사진/사진출처:위키피디아
스발바르 제도로 향하는 화물선/사진출처:러시아 '아르크틱우골' 홈페이지

노르웨이에게는 EU의 제재조치가 '스발바르 제도' 개발에서 러시아를 압박하는 뜻밖의 기회가 됐다. 본토로부터 필요한 물자를 제공받지 못할 경우, 스발바르 제도의 '러시아 타운'은 철수할 수 밖에 없다. '스토르스코그' 검문소 앞에는 러시아의 화물 컨테이너 2개가 통관을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 타운이 이 물품들의 전달없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그동안 노르웨이를 조용히 설득해온 러시아가 이 문제를 공론화한 것은 리투아니아의 철도 운송 차단이 직접 계기가 된 듯하다.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자존심도 발동했을 터. 노르웨이 측이 지난달 28일 러시아 화물의 검문소 통과 신청을 또다시 거부하자 이튿날인 29일 러시아 외무부는 주러 노르웨이 대사대리를 초치했다. 그리고 "스피츠베르겐(러시아 명칭) 제도에 있는 러시아 기업 '아르크틱우골'을 위한 화물 운송을 노르웨이 측이 차단한 사태가 용납될 수 없음을 통보했다"고 발표하며 문제를 공론화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스피츠베르겐 주재 러시아 총영사관 운영에 필요한 식료품·의료장비·건설자재·차량 부품 등의 물품들도 검문소에 묶여 있다"며 "러시아에 대한 비우호적 행동은 불가피한 대응 조치로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아직 이 차단 조치를 풀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아니켄 휘트펠트 노르웨이 외무장관은 즉각 “러시아 트럭이 EU 회원국 영토를 경유해 물품을 운송하는 것을 금지한 대러 제재에 근거한 정당한 조치”라며 “스발바르 제도는 러시아 국적 선박이 EU 회원국 영토에 기항할 수 없다는 제재에서도 면제된 곳이니, 해상으로 필요한 화물을 운송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러시아로서는 현지에서 겨울을 지낼 각종 물품을 제때 제공해야 하는데, 마음만 급한 상태다. '아르크틱우골' 측은 검문소에 막혀 있는 화물이 제때 전달되지 못할 경우, 스발바르 제도의 '러시아 타운'에는 올 겨울 비상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욱 현실적인 문제는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화물 열차의 일부 물품 차단이다. 구소련의 발트 3국중 하나인 리투아니아는 지난달 18일 자국 영토를 경유해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화물 운송을 대폭 제한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본토와 육로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 칼리닌그라드가 본토로부터 물자 공급을 받으려면, 해상이나 벨라루스~리투아니아를 통과하는 육로를 활용해야 하는데, 리투아니아가 육로의 숨통을 조인 것이다. 리투아니아가 운송을 제한한 품목은 철강, 콘크리트, 건설 자재, 금속 등 리투아니아 경유 전체 러시아 화물의 절반에 해당한다.

칼리닌그라드의 위치. 위쪽이 리투아니아, 아래쪽이 폴란드다. 두 나라와 접하고 있는 곳은 벨라루스/우크라이나군 텔레그램 캡처

칼리닌그라드는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소련이 독일인 거주자들을 추방하고 합병한 곳이다. 러시아에게는 현재 발트함대의 전진기지로, 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이스칸데르 미사일이 배치된 핵전략 기지로 지정학적 활용도가 높은 곳이기도 하다. 

인구 270만 명의 소국인 리투아니아는 지난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후 2004년 EU와 나토에 가입하는 등 반러시아 노선을 걸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다음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에 영국, 폴란드, 인근 발트해 연안국가들(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과 함께 대러 제재및 압박에 가장 적극적이다.

러시아의 반발은 '노르웨이 사태'보다 직접적이고, 거셌다. 러시아 외무부는 주러 리투아니아 대사 대리를 불러 "칼리닌그라드로의 화물 운송을 즉각적으로 복원할 것을 요구했다”며 “그렇지 않으면 대응 조치가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발트해에서 군사력 시위에 들어갔다.

또다른 한편으론 발트해를 통해 해상 운송을 확대할 준비를 시작했다. 안톤 알리하노프 칼리닌그라드 주지사는 최근 "발트 항로를 통한 화물 운송은 이뤄지고 있다"며 불안한 주민들을 달래기도 했다. 

그러나 리투아니아 측도 러시아의 협박을 별로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러시아엔 보복 수단이 별로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러시아측의 군사행동도 나토 회원국이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왔다.

칼리닌그라드  철도역/사진출처:@칼리닌그라드 vk계정

그렇다고 러시아가 군사력을 동원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최악의 경우, 러시아가 군사력을 동원해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수왈키 회랑지대'를 확보할 것이라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수왈치 회랑'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접경지대로, 칼리닌그라드에서 벨라루스까지 연결되는 약 100km 길이의 육상 구간을 말한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나토와 EU에 가입한 2000년대 초, 러시아가 이 곳에 대한 군사 도발을 감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에 대한 꿈도 꾸기, 훨씬 전의 이야기다. 나토가 지난달 마드리드 정상회담에서 신속대응군의 규모를 늘리고, 미국 등이 폴란드와 발트 3국 등에 주둔군을 증강 배치하기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로이터 통신:리투아니아를 거쳐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화물) 환승, 며칠내 재개/얀덱스 캡처
독일 주간지 슈피겔:독일, 리투아니아에 칼리닌그라드 화물 운송 차단 해제를 요청/얀덱스 캡처

다행히 한동안 강경 대치하던 칼리닌그라드 화물 운송 문제는 EU가 중재에 나서 타협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뜩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 대륙의 긴장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발트해 주변에서 또다시 러시아와 '강대(對)강'으로 대치하는 국면을 피하기 위해서다. 특히 독일이 리투아니아 측에 '차단 해제'를 적극 설득중이라고 한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EU는 지난달 29일 칼리닌그라드행 화물 중 철강 등 일부 핵심 산업 자재를 대러 제재 품목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자리에서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국 내 물자 수송으로 보고, EU 제재에서 제외해야 한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양보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고 한다.

외신의 전망대로라면, EU가 중재한 협상안이 조만간 타결되고, 수일 내 화물 운송이 다시 정상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리투아니아 측도 “EU와 제재 관련 협의를 지속하겠다”며 “변경된 제재를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리투아니아가 화물 운송 부문에서 양보하면, 노르웨이도 그 뒤를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막판 줄다리기만 남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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