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뒤집기) 서방의 가혹한 제재에도 아직 끄떡없는 러시아의 힘은 어디서?
(우크라 뒤집기) 서방의 가혹한 제재에도 아직 끄떡없는 러시아의 힘은 어디서?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7.1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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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을 구성하는 두개의 주(州), 즉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가운데 루간스크주를 '해방한' 러시아의 기세가 등등하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7일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에서 아직 아무 것도 (제대로) 시작하지 않았다"고 큰소리치고,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는 (사실상)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서방 진영에서도 비슷한 진단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 블룸버그 통신은 6일 미국 최대 투자은행 JP모건(JPmorgan Chase & Co)의 분석을 인용, "러시아는 서방 분석가와 경제학자들이 예측한 최악의 경기 침체 시나리오를 피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특수 군사작전에 나선 러시아의 힘(경제력)을 빼기 위해 서방측이 취한 각종 제재로 '러시아가 최악의 경제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예측이 빗나갔다는 뜻이다.

JP모건이 러시아의 올해 GDP 성장률을 당초 마이너스(-) 7%에서 -3.5%로, 시티그룹(은행)이 마이너스 9.6%에서 -5.5%로 수정한 게 대표적이다. 3~4개월만에 성장률 하락을 절반 가까이 줄인 것이다. 

블룸버그통신:러시아 석유 덕분에 깊은(최악의) 경기 침체를 피해/얀덱스 캡처 

경기 침체 극복의 1등 공신은, 역설적이게도 서방의 대러 제재다. 서방 측이 러시아의 막대한 국가 수입을 막기 위해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분야를 제재했는데, 오히려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면서 러시아에 더 많은 수익을 안겨다준 것이다. 여기에 루블화 안정에 모든 것을 희생한(?) 러시아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도 시기적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러시아 산업 전반이 서방측의 제재로 심각한 침체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지난 5월 러시아의 자동차 생산량은 97%나 줄어들면서 거의 '제로'로 떨어졌다. 경제 각 분야를 미시적으로 파악한 게 아니라, 거시경제적 분석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다고 뜻으로 JP모건 등의 보고서를 해석해야 옳다.

그렇더라도 러시아로부터 전쟁을 계속할 힘을 빼고자 했던 서방측으로서는 사실상 실패한 제재에 가깝다. 제재에 나선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월 8%에 이르는 '살인적인 물가'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르 피가로, 러시아 루블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통화라고 보도/얀덱스 캡처

러시아의 대처가 가장 돋보인 부분은 루블화 환율 관리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지는 6일 "러시아 루블화는 연초와 비교하면, 달러와 유로화에 대해 45~50% 강세를 보인다"며 "올해 가장 성공적인 통화로 꼽힌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경제 침체 국면에서 달러화의 강세에 맞선 거의 유일한 통화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엔화는 물론이고, 유로화의 가치마저 달러화와 거의 1대1로 떨어진 상황에서 루블화의 초강세는 이례적이다.

그 바탕에는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의 과거 경험과 추진력 등이 깔려 있다고 르 피가로는 분석했다. 나비울리나 총재는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에 따른 서방의 대러 제재와 루블화 위기를 직접 관리한 '학습 효과'를 이번에 결정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위)와 중앙은행/사진출처:위키피디아, 중앙은행 홈피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이면에서 벌어진 러시아와 유럽(EU)간의 '경제전쟁'(통화전쟁) 1차전에서 러시아가 승리한 것으로 본다. 루블화의 초강세와 유로화 하락이 실물경제에 몰고온 영향 때문이다. 유럽이 '환율의 덫'에 빠졌다는 분석도 있다. 유로화 가치가 1% 하락하면 수입품의 가격 상승이 소비자 물가지수를 연 0.3%나 올려놓기 때문이다.

두어달 전만 해도 이같은 시나리오는 상상조차 못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5월 19일 "러시아 경제가 겉으로는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환율 등이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 중병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방측 경제 전문가들의 견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루블화 안정과 무역흑자 증가 등을 이유로 서방의 경제제재를 이겨내고 있다고 공식 발표한데 대해 반응이었다.

러시아 루블화와 달러화/사진출처:pxhere.com

전문가들은 △기준금리를 연 20%로 급격하게 인상하고 △에너지 등 수출대금의 80%를 의무적으로 루블화로 환전하며 △외화 송금을 사실상 금지하는 등의 '비상조치'로 급한 불을 껐지만, 실제로는 '경제의 속병'만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러시아 주요 은행들을 국제결제망스위프트(SWIFT)에서 퇴출하고 러시아에 핵심 기술및 부품 공급을 차단한 것 등이 러시아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했다'는 블룸버그 통신의 6일 보도는 이같은 주장이 틀렸다는 '반성'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러시아 재무부와 중앙은행은 잇따라 금융정상화의 길로 돌아서고 있다. 금리를 지난 6월 전쟁 이전 상태(연 9.5%)로 내렸고, 수출 대금의 루블화 의무 환전과 외화 송금 제한 조치를 대폭 완화했다. 지난 7일에는 러시아 재무부가 기업들을 대상으로 외국계 은행의 (외화) 차입금을 20% 이상 상환할 경우, 오는 9월 1일까지 조기상환할 수 있도록 했다. 외화 사용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사용을 부추기는 조치다. 그만큼 보유 외화가 풍부하다는 뜻이다.

러시아 재무부, 기업들에 대해 외국계 은행 채무의 조기 상환 허용/얀덱스 캡처

지난 달 말(26일)까지만 해도 러시아가 볼셰비키 혁명 이후 104년 만에 국가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졌다는 등 (외신이) 난리를 친 것과 비교하면 몇주만에 확인하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그때도 외화(유로본드 2건의 이자 1억달러)가 없어서 못갚은 게 아니라, 미국 등 유럽이 러시아를 강제로 '디폴트'로 빠뜨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제재를 동원했기 때문이다. 또 디폴트가 났으면 국제 금융시장에서 폭발음(?)이 들려야 하는데, 의외로 조용했다. 시장은 그 전후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서방의 가혹한 경제제재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경제분석기관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러시아 전문가인 스콧 존슨은 "제재가 현실화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러시아 경제는 그 타격에서 피해갈 수 없다"며 "더 느리고 불확실하게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의 경제전문가이자 연방 회계감사원장인 알렉세이 쿠드린도 지난 5월 "새로운 도전(서방 제재)과 관련된 러시아 경제의 구조 조정에는 1.5~2년이 걸릴 것"이라며 "이 기간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거쳐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보다 근본적인 구조조정에는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며 개별 산업의 투자 주기를 들어 5~10년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7일에는 "제재의 영향으로 러시아의 실질 소득이 올해 7~8%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서방의 제재는 러시아 경제 전반에 걸쳐 길고 꾸준하게 피해를 안겨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상대(유럽)는 어떨까? 

리아 노보스티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영국의 데일리 익스프레스지는 4일 킬리 비즈니스 스쿨(경영대학원) 사미르 다니 부학장을 인용, 유럽은 'Catch-22'의 함정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캐취-22'는 원래 미국 작가 조지프 헬러의 소설 제목이지만, '진퇴양난의 상황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 유럽은 러시아 경제를 옭죄기 위해 석유 금수조치까지 취했는데, 거꾸로 에너지 가격의 폭등을 불러일으키면서 최악의 에너지난 해소를 위해 '화석 연료' 사용에 나서야 하는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뜻이다.

경제 제재의 '부메랑' 효과를 애써 무시한 서방의 대러 제재는 어차피 '시간의 싸움'으로 끝이 날텐데, 루간스크주 무력 해방을 계기로 그 시간은 러시아쪽으로 천천히 옮겨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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