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데사항 미사일 공격을 당당하게(?) 밝힌 러시아, 그 속에 숨은 뜻은?
오데사항 미사일 공격을 당당하게(?) 밝힌 러시아, 그 속에 숨은 뜻은?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7.25 0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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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를 통해 우크라이나 곡물을 수출하기로 합의한 항구 3곳 중 하나인 오데사항에 대한 미사일 공격은 러시아군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확인됐다. 러시아 국방부와 외무부는 24일 대변인 발표 등을 통해 전날의 미사일 공격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그 뉘앙스는 '4자 합의안 파기'와는 결이 크게 달라 보인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고리 코나셴코프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해상 발사 고정밀 장거리 미사일로 오데사항 선박수리 공장의 우크라이나 군함과 미국이 제공한 지대함미사일 '하푼'을 파괴했다"며 "우크라이나 해군 함정 수리·정비 시설들도 파손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 (미사일 공격으로) 오데사항 미사일 창고와 군함을 파괴/얀덱스 캡처

앞서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도 텔레그램을 통해 "칼리브르 순항 미사일들이 오데사항의 군사 기반시설을 파괴했다"고 전했다. 그녀는 오데사항 피격으로 '러시아와의 대화를 지지하기가 더 어렵게 됐다'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논평하며 이같이 밝혔다.

전날까지만 해도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위한 러-우크라-터키-유엔 '4자 합의안'에 서명한 튀르키예(터키)의 훌루시 아카르 국방장관의 입을 통해 "오데사항 공격과는 무관하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그러나 '철저하게 조사하겠다'더니, 그 결과는 '종전 입장'을 뒤집는 꼴이 됐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의외로(?) 당당하다. 이집트를 방문중인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흑해 곡물 수출 합의안을 아예 '4자 합의문'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러-터키-유엔간에 서명된 '3자 합의문'이라고 했다. 실제로는 맞는 말이다. 러시아는 4자 합의문에 서명한 적이 없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각각 터키-유엔과의 '3자 합의문'에 따로따로 서명했을 뿐이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텔레그램 캡처

라브로프 장관은 또 합의문 내용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곡물 선적 선박을 영해 밖으로 인도하면, 이후 (공해상에서는) 러시아와 터키, 또다른 국가의 해군이 선박의 안전 항해를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 3의 국가'의 존재가 그의 입에서 처음 나왔다. 우크라이나 해군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합의안 내용이 완전히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곡물 선적 선박에 대한 안전 항해를 보장하기로 했다. 선박의 항로 주변 몇 해리까지는 군함이나 드론 등 군사 장비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로서는 이번 오데사항 미사일 공격이 선박의 안전 항로를 위협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됐다. 아직 곡물 운송 선박이 특정된 것도 아닌 상태다.

 

러시아군의 오데사항 미사일 공격 후 모습. 맨 아래쪽 오데사항 사진과 비교하면 곡물 저장고와는 멀리 떨어진(?) 컨테이너 저장시설 뒤쪽을 공격한 것으로 추정된다/사진출처:텔레그램 영상 캡처

현지 영상과 사진을 보면 러시아 순항 미사일이 타격한 곳은 오데사항의 곡물 저장창고(사일로)와는 동떨어져 있다. 적재된 컨테이너 등이 일부 보이지만, 정확히 어떤 시설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러시아가 '하푼 미사일' 저장 시설과 군함 수리 시설을 공격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측도 곡물 저장시설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터키-유엔과 '3자 합의서'에 서명한 올렉산드르 쿠브라코프 우크라이나 인프라 장관도 터키 국방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부정적인 결과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곡물 수출을 위한 준비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러시아 미사일이 우크라이나 곡물 저장소나 민간 선박을 때린 것은 아닌 게 분명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데사항 피격만으로도 대외적으로 러시아를 비난하기에 충분했고, 이를 십분 활용했다.

전쟁 당사자들이 서로 총구를 겨눈 상태에서 특정 부분(곡물 수출)에서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실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합의 내용을 교전 상황과 명확하게 분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오데사항에 흑해상의 러시아 군함을 타격할 하푼 미사일이 실제로 배치되고 있다면, 러시아군이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러시아는 오데사항을 통해 서방 무기가 우크라이나로 반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흑해 진출입 곡물 선적 선박을 철저하게 검사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고, 이를 관철시켰다. 러시아로서는 앞으로 한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니, 오데사항 공격도 그 일환이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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