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뒤집기) 우크라 전쟁 포로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책임 공방의 끝은 부메랑?
(우크라 뒤집기) 우크라 전쟁 포로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책임 공방의 끝은 부메랑?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07.31 13: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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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등 서방 진영과 외신의 일방적인 지원을 업고 러시아군의 비인간적 군사 활동을 마음껏 공격했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질 위기에 처했다. 전쟁 초기의 '최대 격전지'인 도네츠크주(州)의 마리우폴 '아조프스탈' 제철·금속 공장에서 항복한 우크라이나군 포로들이 200명 가까이 수감된 구치 시설에 미사일이 떨어지면서 러시아와 '책임 공방'이 벌어졌는데, 이번에는 우크라이나가 궁지로 몰릴 가능성이 커졌다.

자칫하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그동안 그렇게 욕했던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이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세찬 비난이 국제사회에서 쏟아질 판이다. 

옐레노프카 구치소의 모습/현지 매체 리아노보스티 통신 영상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유엔은 미사일 폭격으로 우크라이나군 포로들이 50여명이나 사망한 도네츠크주 옐레노프카 구치소 폭격 사건에 대한 공식 조사를 당사자들에게 제안했다고 파르한 하크 유엔 부대변인이 30일 밝혔다. 하크 부대변인은 “당사자들의 허가를 받아 옐레노프카 구치소의 비극적인 사건을 조사할 수 있는 전문가 그룹을 현지로 파견할 준비가 돼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도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이번 폭격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유엔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전문가들을 공식 초청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측은 사건 발생 직후 여론전에 선점이라도 하듯, "러시아가 또다시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며 유엔과 ICRC의 조사를 요청한 바 있다. 당사자들이 대외적으로 국제기구의 공식 조사를 요청한 만큼, 특별 조사단의 현장 파견및 조사를 막을 명분은 일단 사라졌다.  

러시아 국방부, 엘레노프카 구치소서 사망한 우크라이나군 포로들의 명단 공개/얀덱스 캡처

도네츠크주에 나가 있는 ICRC 측은 "부상자들의 후송에 도움을 주고 있다"며 "포로들은 국제법에 따라 어떤 공격도 받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 곳은 도네츠크주 주도인 도네츠크시에서 20Km 정도 떨어진 옐레노프카에 있는 수용시설이다. 모두가 잠든 29일 새벽 2시경(현지 시간) 이 곳으로 미사일이 날아왔다. 러시아 국방부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다연장로켓시스템 '하이마스'(HIMARS) 로켓의 파편을 현장에서 확보했다고 현지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전했다. 그 중에는 제작 일련번호가 적힌 파편도 있다고 한다. 

옐레노프카 수용 시설의 폭격 후 장면/현지 매체 리아노보스티 영상 캡처

수용 시설을 관리하는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측과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군이 '하이마스'로 옐레노프카의 구치소를 공격했다고 29일 공식 발표했다. 이튿날에는 50여명의 사망자 명단까지 공개했다.

데니스 푸실린 DPR 수장은 "포로가 된 아조프(아조우) 연대 소속 부대원들이 (그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시작하자, 우크라이나측이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새벽에 폭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의장 뱌체슬라프 볼로딘은 "제 2의 뉘른베르크 재판이 이뤄지는 것은 막기 위해 아조프 연대 조직원들을 사전에 제거한 것"이라며 "워싱턴과 키예프가 미국과 유럽의 일반 국민들이 (우크라이나에) 등을 돌리지 않도록,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를 계속 공급할 수 있도록, 범죄자들을 치워버린 것"이라고 미국을 겨냥했다. 

이 곳에 수감된 포로들은 지난 5월 '아조프스탈'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다가 항복한 1천여 우크라이나 병력중 190여명으로, 나치 성향의 '아조프 연대' 조직원들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국방부가 서둘러 사망자 명단을 공개하고, 이즈베스티야 등 현지 언론이 생존자들의 '탈출기'를 전하는 것 등은 러시아가 이번 폭격과는 무관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폭격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우크라이나군 포로/현지 매체 영상 캡처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전쟁범죄 혐의를 씌우고, 포로 고문 및 처형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저지른 범죄 행위"라고 반박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영상 연설에서 "비극적인 사건 보고를 받았다"며 "러시아군이 또다시 전쟁범죄을 저질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제기구의 조사가 시작되면, 객관적인 정황으로는 우크라이나 측이 크게 불리해 보인다. 우선 이번 사건은 자신들의 관활권하에서 조사가 벌어졌던 다른 폭발 사건들과는 다르다. 사건 현장이 러시아·DPR 측에 있고, 외신 보도도 우크라이나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했던 과거와는 달리, 반신반의하고 있다.

상식적, 논리적으로도 러시아·DPR 측이 자신의 손에 들어와 있는 포로들을 굳이 죽일 이유를 찾기 힘들다. 앞으로 그들의 쓰임새를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베르만 전 주러 프랑스대사, 수감자들을 죽일 이유가 없다고 말해/얀덱스 캡처 

지난 2017~2019년 주러 프랑스 대사를 지낸 실비-아녜스 베르만은 30일 프랑스 BFM TV와의 회견에서 "포로들에 대해 최고 사형 선고까지 가능한데, DPR 측이 옐레노프카 구치소를 야밤에 폭격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녀와 회견 자리를 함께 한 전직 프랑스 해병 대령 미셸 고야는 "우크라이나 군내에 '나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폭로하려는 그들(DPR 민병대)이 중요한 증인들을 왜 죽이겠느냐? 그럴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고 우크라이나측 주장에 의문을 표시했다.

유엔과 국제적십자사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예레노프카 조사'에 나설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만의 하나, 우크라이나 진영에서 날아온 '하이마스' 로켓이 수용 시설을 때렸다면,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는 예기치 못한 곤경에 처할 수 밖에 없다. 사건 초기에 신중히 대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할 지도 모른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측에 '하이마스'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이라면, 우크라이나는 자국군의 포로들이 수용된 시설을, 그것도 새벽 2시에 공격했으니,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판이다. 

우크라이나는 또 지난 3월 말 이스탄불에서 열린 러시아와의 평화 협상에서 돈바스 지역 양보 가능성까지 제시했으나, 때마침 불거진 '부차 민간인 학살 사건'으로 러시아를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나토(NATO)로부터 본격적으로 무기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4개월여가 흐른 지금, 제공받은 나토 무기로 자국의 전쟁 포로를 50여명이나 죽인 파렴치한 공격이 사실로 드러나면, 미국과 유럽 국민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 수도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으로서는 너무 서둘러 러시아 범죄 프레임을 하나 더 만들려다가, 스스로 그 프레임을 뒤집어쓰는 결과를 맞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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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2022-08-01 21:21:11
안녕하세요.. 관활권(X) -> 관할권(管轄權) 입니다.
< 자신들의 관활권하에서 조사가 벌어졌던 > 을 <자신들의 관할권하에서 조사가 벌어졌던 > 으로 수정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