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표준 선정 'ITU' 사무총장 선거서 러시아 후보가 미국에게 참패한 까닭
인터넷 표준 선정 'ITU' 사무총장 선거서 러시아 후보가 미국에게 참패한 까닭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10.03 05: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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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전기통신연합(ITU) 차기 지도부 선거서 보그단-마틴 후보 압도적 표차로 당선
중국에 이어 또 러시아에게 권한을 넘길 수 없다는 절박감에 서방 진영, 똘똘 뭉쳐

세계 인터넷 관련 기술의 표준을 만드는 유엔 산하 ICT 전문 국제기구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차기 사무총장(의장)에 미국의 도린 보그단-마틴 NTIA(National Telecommunications and Information Administration, 미 상무부 산하 기관)의 통신정책 국장이 당선됐다.

r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보그단-마틴은 지난달 말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ITU 총회에서 경쟁자인 러시아 출신 후보 라시드 이스마일로프 이통통신 빔펠콤(VimpelCom)사 대표를 압도적인 표차(139표 대 25표)로 물리치고 사무총장에 당선됐다. ITU 사상 첫 여성 최고지도자다. 뒤이어 사무차장과 사무국 국장 3명의 인선이 완료되면서 ITU는 내년 1월부터 4년간 새로운 집행부 체제로 글로벌 통신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집행한다.

ITU 사무총장에 첫 여성 후보 도린 보그단-마틴 당선/ITU 홈피 캡처
ITU의 차기 집행부 면면/캡처

1947년 유엔 산하 기구가 된 ITU는 전 세계의 무선 주파수와 위성 궤도 배정, 통신기술 표준 등에 대한 승인권을 갖고 글로벌 통신 네트워크 및 서비스를 조정한다. 회원국은 193개국.

이번 총회에서 ITU의 '2인자'인 사무차장에는 리투아니아 출신의 토마스 라마나우스카스(Tomas Lamanauskas)가, ITU 전파통신국장에는 마리오 마니에비츠(우루과이), 통신표준화 사무국장에는 오노에 세이조(일본), 통신개발국장에는 코스마스 자바자바(짐바브웨)가 각각 뽑혔다.

이번 차기 총장 선거의 최대 관심사는 미국과 러시아 후보의 맞대결이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보그단-마틴 후보 지지를 직접 호소할 정도로, 선거전은 뜨거웠다. 그 이유는 현재 중국이 맡고 있는 사무총장 자리를 비슷한 성향의 러시아에게 또 넘겨줄 수 없다는 것. 자유로운 인터넷 사용 등 소위 '디지털 자유'를 제한하는 중국과 러시아에게 글로벌 인터넷 정책의 방향설정을 맡길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다. 

현 사무총장은 중국의 통신정책 담당 공무원 출신인 자오허우린(趙厚麟)이다. 자오허우린 총장은 재임 기간 중 글로벌 표준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중국 기업에 매우 호의적이고, 적극 지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이 기간에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는 국제 통신 표준을 변경하기 위해 무려 2,000개에 이르는 제안서를 ITU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 등 서방 진영은 이번 선거에서 러시아 후보가 또 승리할 경우, 휴대폰에서 위성, 인터넷 등을 포괄하는 통신 기술의 글로벌 규칙및 표준이 개별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보그단-마틴 후보의 당선에 적극 협력해 왔다.

라시드 이스마일로프 러시아 후보/사진출처:digital.gov.ru

반면, 러시아 3대 이동통신 '비라인'(Beeline)을 운영하는 빔펠콤 대표를 맡고 있는 라시드 이스마일로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정치적 이유로 수세에 몰렸다. 통신 장비 제조업체인 노키아와 화웨이에서 고위직을 맡은 경력도 과거와는 달리 약점으로 부각됐다. 

두 후보는 모두 2030년까지 지구촌 모든 주민들이 인터넷과 이동통신을 자유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지만, 구체안에서는 서로 달랐다. 선거전에서 모두에게 안전하고 저렴하며 공정한 통신 연결을 주장한 보그단-마틴은 당선 후 "세계는 갈등 심화와 기후및 식량 안보 위기, 성적 차별 외에도 27억 명이 아직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는 현실 등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ITU가 이같은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마일로프는 ICT 기술 발전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과 지역별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등 인간 중심의 디지털 환경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위해 인터넷 규제를 위한 국제 플랫폼 구축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톰 휠러 전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 의장이 차기 사무총장 선거를 '개방된 인터넷과 러시아·중국처럼 국가가 통제하는 인터넷 사이에 앞날을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규정한 이유다.

보그단-마틴 후보의 당선으로 선진국들을 위한 '자유롭고 공정한 인터넷 사용 환경'은 보장되겠지만, 뒤처진 저개발 국가들에 대한 ITU 구조적인 배려는 기대하기 어렵게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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