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푸틴, 우크라 돈바스 등 4개주 합병 - 8년 전 크림반도 합병 때와는 진짜 다를까?
(진단) 푸틴, 우크라 돈바스 등 4개주 합병 - 8년 전 크림반도 합병 때와는 진짜 다를까?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10.01 0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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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과 판박이다. 2014년 3월 18일 모스크바 크렘린의 '게오르기에프스키 홀'(Гео́ргиевский зал, 성 게오르그 홀)에서는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지도부가 '합병 협정안'에 서명했다. 8년 6개월여가 흐른 (9월) 30일, 같은 장소에서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군이 통제하는 우크라이나 4개주(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 자포로제, 헤르손) 지도부 간에 유사한 협정이 체결됐다.

푸틴 대통령, 해방된 4개주를 러시아에 편입하는 협정안에 서명/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r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에 4개 주가 새로 생겼다"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 땅을 지킬 것"이라고 약속했다. 서명이 끝난 후 푸틴 대통령과 4개 주 수반들은 손을 맞잡고 “러시아, 러시아, 러시아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서명식에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 안보회의 부의장(전 대통령)과 키릴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람잔 카디로프 체첸 공화국 수반, 국가두마(하원) 의원 등 여론 지도층 인사 800여 명이 참석했다.

기존의 친러 정권 지역인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와 7개월여에 걸친 특수 군사작전으로 점령한 자포로제, 헤르손 주의 러시아 연방 편입은, 단번에 '우크라이나 분쟁'의 판을 또 한번 뒤바꾸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푸틴 대통령이 슬슬 '끝내기' 포석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크림반도를 전격 합병한 뒤 지금까지 '실효 지배'하고 있듯이, 현재의 공격적 특수 군사작전을 단계적으로 '방어 전략'으로 바꿔 새로 편입한 4개 주에 대한 '실효 지배'를 굳히겠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 '부분 동원령'으로 소집된 예비 병력을 4개 주 통제및 방어 업무에 우선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전투 병력은 현재 60% 가량 장악한 도네츠크주로 돌려 '돈바스 지역'만큼은 완전히 해방(?)할 것(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4개주의 합병 협정서에 서명(아래)한 뒤 대표들과 손을 맞잡은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이같은 계획이 러시아의 의도대로 성공할지 여부는 두고볼 일이다. 서방 전문가들은 4개주 상황이 총 한발 쏘지 않고 집어삼켰던 '크림반도 합병'때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4개주 실효지배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분명한 것은 그때,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 상황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는 점이다.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 분리주의자들과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던 중이었다. 지금은 4개주 모두에서 전투중이다. 군사적 승패가 '실효 지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서방 일각에서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진영의 대러 제재 조치가 8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다는 점도 '실효 지배'의 변수로 꼽는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제 기초 체력도 그 때에 비하면 '강철 체력'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글로벌 경제 지형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내 코가 석자여서 남의 일(우크라이나 사태)에 관여하고 싶지 않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유로존(유로 사용국가)의 물가상승률이 1997년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월 10% 안팎으로 폭등하면서 '민생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언어 사용자 비율로 본 우크라이나 주별 인구구성 분포도. 진녹색(위로부터 루간스크주와 도네츠크주, 크림반도) 지역에선 러시아어 사용자가 압도적으로 많고, 초록색(위로부터 하르코프주와 자포로제주, 왼쪽은 몰도바 동부) 지역에선 러시아어 사용자가 상대적으로(43~46%) 적고, 나머지 황색 지역에선 러시아어 사용자가 압도적으로 적다. 합병 4개주에 속한 헤르손주는 우크라이나어 사용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곳이고, 우크라이나어 사용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하르코프주는 이번 합병에서 빠졌다.

돈바스나 자포로제, 헤르손주는 우크라이나의 서쪽 지역과는 달리, 러시아계 주민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또 전통적으로 산업 중심 지역인 데다 러시아 본토와 흑해 전략 요충지 '크림반도'를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맡고 있어 러시아로서는 탐을 낼 수 밖에 없는 땅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계 출신이 상대적으로 많은 하르코프(하르키우)주를 포기하고, 우크라이나계 주민이 압도적으로 많은 헤르손주를 합병에 포함한 이유다.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4개 주의 향후 러시아 편입 일정은 8년 전과 다를 바 없다. 크림반도가 러시아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3월 19일)→하원 비준(20일)→상원 비준(21일)→푸틴 서명(21일)→크림 연방관구 설치 순으로 사실상 러시아 땅이 됐듯이, 이번에도 주말을 지낸 뒤 10월 3일 하원 비준, 4일 상원 비준및 푸틴 서명으로 4개주 합병이 완성된다. 다만, 4개 주를 크림반도가 포함된 기존의 남부 연방관구에 편입할지, 크림연방관구를 새로 만들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게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의 전언이다. 아마 주말 사이에 푸틴 대통령이 최종 결심을 하지 않을까 싶다.

우크라이나 4개주 연방 편입 축하 콘서트에서 연설하는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주 4개주 합병에 대한 우크라이나와 서방 진영의 반응은 '사생 결단'에 가깝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리는 러시아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다른 러시아 대통령과만 대화할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과 협상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동시에 나토(NATO) 가입 절차의 신속한 진행을 촉구하면서 나토 가입을 위한 패스트트랙 신청서에 서명했다고도 밝혔다. 그렇다고 러시아의 4개주 '실효 지배'를 깨뜨릴 만한 힘을 우크라이나가 가질 수 있을까? 나토군이 직접 러시아를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 

서방 진영은 추가 대러 제재안을 내놓거나 제재 방침을 발표했다. 비록 제재 강도에서 차이가 나긴 하지만, 8년 전에도 미국과 유럽 등은 '사생결단하듯' 러시아에 각종 제재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그 제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실상 유야무야됐다. 일부 조치는 아직도 6개월 단위로 연장되고 있지만, 지난 2월 러시아의 군사작전 개시 이전까지 그걸로 러-유럽 관계가 흔들린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물론, 러-서방 간에 '신냉전' 기류가 확대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는 평가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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