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의 모스크바 탐방) 한달 전에 '고르비'가 잠든 노보데비치 묘원을 가다
(김원일의 모스크바 탐방) 한달 전에 '고르비'가 잠든 노보데비치 묘원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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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0.02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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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고르비'로 더 익숙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지난달 3일 모스크바의 '노보데비치 묘지'(Новоде́вичье кла́дбище, 원래는 노보데비치 수도원 소유 묘지다)에 묻혔다. 지난 1999년 백혈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라이사 여사의 옆자리다. 영정 사진 속 그의 모습은 1980년대 세계의 정치 지형도을 바꾼 '위대한 고르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무덤 위에 놓인 시들지 않는 꽃들은, 그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은 '최고 지도자'라는 사실을 웅변하는 듯하다.

부인 라이사 여사 옆에 안장된(위) 고르바초프

그가 안장된 지 한달이 채 못된 지난달 말, '고르비'가 잠들어있는 '노보데비치 묘지'를 찾았다. 16세기에 건축된 고풍스럽고 웅장한(?) '노보데비치 수도원' 남쪽 벽 옆에 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 열린 '루즈니키 올림픽 경기장' 맞은 편이어서 접근 교통로는 편리한 편이다.

노보데비치 수도원과 묘지는 지난 1995년 러시아의 건축 기념물로 지정된 데 이어 2004년에는 유네스코 문화 및 자연 유산 목록에 올랐다. 이후 노보데비치 주변은 유럽 여행객들의 주요 관광 코스에 포함됐고, 관광 안내소도 설치됐다.

여기에는 제정러시아 시절부터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분들이 잠들어 있다. 모두 2만6천여 기(基)에 이른다. 엄청난 규모다. 전체 면적이 7.5헥타르(㏊)로, 구 묘역(старое Новодевичье кладбище 섹션 1~4), 신 묘역(новое, 섹션 5~8), 최신 묘역(новейшее, 섹션 9~11)로 나뉠 정도다.

노보데비치 묘지를 품고 있는 노보데비치 수도원/사진 출처:위키피디아
노보데비치 묘지의 배치도. 왼쪽이 신 묘역, 오른쪽이 구 묘역, 위쪽이 최신 묘역이다/사진출처:위키피디아

'고르비'가 잠든 곳은 신 묘역이다. 그를 권좌에서 밀어낸 보리스 옐친 초대 러시아 대통령과 채 100m 떨어져 있지 않다. 구 소련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통령(고르비)과 러시아의 초대 대통령이 이웃한 모습에, 지난 20세기 말 격동의 세계사가 머릿 속에 떠오른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구 소련의 최고 지도자들중에는 고르비외에 흐루시초프 공산당 제 1서기가 이 곳에 잠들어 있다. 재임 중 경쟁자의 손에 의해 실각당한 '운명'이 닮았다. 흐루시초프 제1서기를 밀어낸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 등 소련의 최고 지도자들과 그 시대 최고 영웅(?)들은 붉은광장 레닌묘 뒷면의 크렘린 벽면 유골함 속에 들어 있다. 

노보데비치 신 묘역의 중앙 통로
묘지 뒤로 '노보데비치 수도원'의 첨탑들이 보인다

노보데비치 묘지를 가면 우리의 현충원이나 공공 묘원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거대한 묘지라기 보다는 '문화예술 전시장' 같은 느낌을 안겨준다. 우리도 이제는 '노보데비치 (공원) 묘원(墓園)' 바꿔불러야 할 것 같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개성 있는 '묘지 가꾸기'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예술 등 모든 분야의 유명 인사들이 묻혀 있다 보니, 당사자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조형물들이 각기 다를 뿐 아니라 특색도 있고, 흥미롭기까지 하다. 문화 예술가와 과학 기술자들의 묘가 더욱 그러하다. 이 또한, 문화와 예술 과학을 중시하는 러시아적인 문화를 반영하는 게 아닌가 싶다. 

글·사진:김원일 모스크바대 정치학박사, 전 민주평통 모스크바협의회장
 

고르바초프 부부를 참배하는 시민들
라이사 여사의 묘

 

러시아 '삼색기'를 조형화한 옐친 초대 대통령의 묘

 

실각한 흐루시초프 전 공산당 제1서기의 묘
4대 희곡을 남긴 러시아의 유명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년)
사회 풍자 소설로 인기를 끈 작가 니콜라이 고골(1809~18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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