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뒤집기) 미국 유력 언론의 러시아 동원령 무리수 폭로에 떠오르는 엉뚱한(?) 상상
우크라 뒤집기) 미국 유력 언론의 러시아 동원령 무리수 폭로에 떠오르는 엉뚱한(?) 상상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10.18 03: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언론을 대표하는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WP)와 뉴욕 타임스(NYT)가 16일 약속이나 한 듯 러시아 '부분 동원령'의 실행 과정에서 드러난 공권력의 각종 무리수와 동원된 병력의 무모한 죽음을 각각 폭로하는 기사를 실었다. WP는 길거리에서 동원 대상자로 보이는 남성들을 잡아가고 있으며, NYT는 그렇게 잡혀간 예비군들이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최전선으로 끌려가 목숨을 잃고 있다고 전했다.

두 매체가 기사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는, 미국의 무기들을 손에 넣은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작전에 허둥지둥하는 러시아 지도부를 비판하고,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기자회견하는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보도 타이밍도 절묘하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2주 내에 부분 동원이 완료될 수 있다"며 깔끔한(?) 마무리를 예고하자, 이를 반박하는 것 같다. 또 NYT의 기사는 "계획된 30만 명 중 22만 2천명은 이미 동원됐으며, 3만3천명은 부대에 배속됐고, 1만6천명은 전투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푸틴 대통령도 부분 동원령이 가진 사회적 폭발력이나 실행 과정의 혼란상을 모르는 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동원령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무려 1,100km에 이르는 (우크라이나군과의) 접촉선을 정규 군인들이 담당하기에는 너무 벅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남북이 대치한 '휴전선 155마일’(249㎞)의 4배가 넘는다니, 실감이 난다.

러시아는 이미 우크라이나 4개 주(州)의 상당 부분을 장악했다. 그리고 러시아와의 합병을 선언했다. 한국 면적의 90%나 되는 점령 영토를 방어, 혹은 실효지배하기 위해서는 1,000km가 넘는 전선에 군 병력을 배치하고 무기와 탄약, 보급품 등을 제공해야 한다. 또 점령지역 내에서 암약하는 반러 무장세력(러시아쪽에서는 게릴라 부대, 사보타주 부대)에 대비하고, 주민들의 안전과 사회 질서도 유지해야 한다. 훈련된 전투 병력은 아닐지라도, 머리수는 채워야 하는 게 현실이다.

러시아 연방에 편입된 우크라이나 4개주 개황. 위로부터 루간스크주(인구 220만명), 도네츠크주(400만), 자포로제주(160만) 헤르손주(100만). 총 인구 약 880만명. 4개 지역과 우크라이나 접촉면은 1,100km에 이른다/출처:리아노보스티 통신 텔레그램 

반격에 나선 우크라이나는 한결 병력 부담이 덜하다. 가용 가능한 병력과 화력을 특정 지역으로 모아 집중 공격을 가할 수가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주요 공략 목표로 삼은 하르코프(하르키우)와 헤르손 전선에는 수만명의 병력이 집결했다는 게 친러 지역 당국자의 주장이다. 그렇다 보니, 우크라이나군이 도네츠크주(州) 일부 지역(바흐무트 시市)에서는 러시아군의 공세에 밀려 퇴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길고 긴 전선에서 양측이 서로 밀고 당기는 혼전을 벌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동원령에 따라 징집된, 소위 '신병'들이 제대로 된 군사 훈련도 받지 않은 채 최전선에 배치되고, 그 결과 얼마 전까지 민간인이었던 젊은이들이 죽어나가고 있다'는 NYT의 분석 기사는 적확하다.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싸울 남자들을 거리에서 잡아간다'는 제목의 WP 기사도 사실이다. 정치권(의회)에서 논쟁을 벌일 만큼, 러시아 언론들도 많이 다룬 사인이기 때문이다.

훈련소에 입소한 동원 예비역들의 훈련 장면/사진출처:러시아 국방부 영상

러시아 언론을 중심으로 매일매일 그날의 주요 뉴스를 정리해온 '바이러시아'(buyrussia21.com)가 굳이 동원 과정의 문제점을 세세하게 전달하지 않은 것은 두가지 이유에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내려진 동원령이 그 넓은 러시아 땅에서 시행착오 없이, 큰 혼란없이 질서 정연하게 이뤄지리라고는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었다. 또 전쟁터에 나간 군인은, 잘 훈련된 전투병이든, 훈련이 덜 된 신병이든 똑같이 죽음 앞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여름철 숲 속으로 들어가면 모기와 같은 벌레들에게 노출될 수 밖에 없듯이 말이다. 

다만, 이런 상상을 가끔 해보기는 했다. 만약에, 진짜 만약에 북한군이 부분적으로 우리를 침공할 경우, 우리 정부가 예비군 동원명령을 내린다면 얼마나 많은 우리 동원예비군들이 거기에 응할까라는 상상이다. 그 상상은 동원 명령서가 해당 예비군들에게 제대로 전달이나 될까?라는 의문으로 넘어갔다. 혹시 서울의 젊은이들은 동원 명령서를 받지 않기 위해 아예 집을 비우고 잠적하지 않을까? 동원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부서(주민센터, 과거엔 동사무소)가 동원 명령서 전달을 위해 경찰에 협조를 요청하지 않을까? 이 모든 게 '전쟁'이라는 비상상황 하에서는 어디에서나 당연하지 않을까?

푸틴 대통령이 부분 동원령은 내린 것은 지난달 21일이다. 그가  22만2천명이 징집됐다고 말한 게 14일이니, 3주일여만에 동원 목표의 75%를 달성한 셈이다. 성과가 굳이 나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러시아 '사회여론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주변에서 불안하게 느낀다'고 응답한 사람이 67%에 이르니, 결코 적지 않다. 현지 매체 '로스발트'(rosbalt.ru)는 이같은 사회적 불안이 부분 동원령과 그에 따른 당국의 무리수, 사회적 혼란 등과 직결돼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경찰력을 동원한 '길거리 징집'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거세다.

버스에 탄 동원병의 애끓는 작별 인사

현지 언론에 따르면 모스크바 시의원인 키릴 쉬치코프는 그의 아들이 지하철역 입구에서 동원 소환장을 받았다고 분노하며 검찰청에 이의를 제기했다고 주장했다. 모스크바의 몇몇 지하철 역 주변에서 동원 연령대 남성들이 소환장을 받고 끌려가는 장면이 SNS에 영상으로 올라왔다. 러시아 집권여당 '통합러시아당' 출신의 안드레이 클리샤스 상원의원도 "불법적인 행동"이라고 반발할 정도다.

그는 "경찰력을 동원해 시민들을 징집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법"이라며 “길거리에서 무차별적으로 동원 연령대 남성들을 잡은 뒤, 그가 동원 기준에 맞는지 여부를 따져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동원 담당 부서로부터 먼저 서면 요청을 받고, 동원 대상자를 식별한 뒤 징집 장소로 데리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모스크바 소뱌닌 시장, 모스크바의 동원 가족들에 대한 추가 지원안 (행정명령)에 서명/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물론, 대도시 중심으로 늦어지는 동원 집행 속도를 질타하는 친정부 언론도 있다. 수도 모스크바의 경우, 동원 목표 달성률이 50% 안팎으로 저조하니 강제력을 동원할 수 밖에 없다. 모스크바 등 대도시 지자체들이 동원에 응하는 조건으로 제공하는 인센티브를 지방보다 더 많이 제시했지만, 도시 젊은이들의 마음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동원된 주민 4영이 우크라이나 특수 군사작전 중에 사망/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동원된 병력이 훈련소에서 자살하거나 지병으로 사망했다는 속보가 한동안 현지 언론을 장식하더니, 이제는 전장에 나가 전사한 동원병들의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시작은 첼랴빈스크 출신의 동원병들이 아닌가 싶다. 첼랴빈스크 주지사는 지난 13일 "지역 출신 동원병 5명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14일에는 크라스노야르스크 출신 4명도 전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전에는 가족과 주변 인물의 SNS를 통해 변호사나 지역 공무원이 동원 며칠만에 전장에서 사망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문제는 그들이 전투 현장에서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훈련을 받았느냐는 점이다. 푸틴 대통령은 "동원 예비역에 대한 1차 훈련은 5~10일, 2차 훈련은 소속 부대에서 5~15일, 혹은 더 추가될 수도 있다"고 했다. 언론에 보도되는 전사자들은 대충 5~10일 정도 기초훈련을 받은 뒤 소속 부대에서 2차 훈련도 받지 않고 전장으로 나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변호사가 전사했다고 올라온 텔레그램. 오른쪽은 9월 27일 훈련소 혹은 소속 부대에서 군복 차림으로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첼랴빈스크 출신 동원병의 장례식 모습
크라스노야르스크 출신 동원병에 대한 추모 모습

러시아에서는 동원된 날짜와 사망 날짜를 따져 단순히 '며칠 만에'라고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가까운 지역이라면 훈련소와 전선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그만큼 짧을 것이고, 극동 지역이라면, 전선으로 투입되는데 걸리는 시간만도 1주일 가까이 소요될 수 있다. 러시아는 우리가 상상하는 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넓다. 교통편도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다. 국내에 전해지는 WP, NYT와 같은 유력 신문의 보도라도, 우리의 좁은 땅덩어리 시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이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