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통령이 합병 4개 지역에 계엄령을 도입한 '숨은 의도'는?
푸틴 대통령이 합병 4개 지역에 계엄령을 도입한 '숨은 의도'는?
  • 이진희 기자
  • jhman4u@buyrussia21.com
  • 승인 2022.10.20 0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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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체 영토가 '계엄령'하에 들어가 -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월 발령
주목받는 '헤르손 대첩' - 계엄령으로 일사분란한 대응 태세 준비, 주민 이주도 영향

푸틴 대통령이 19일 돈바스 지역(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과 자포로제(자포리자), 헤르손주 등 최근 러시아 연방에 편입된 4개 지역에 계엄령(военное положение)을 선포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미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 개시와 함께 계엄령을 도입, 우크라이나 영토 전체가 계엄령 하에 들어갔다. 

계엄령은 전시 등 국가 비상사태 발생 시 국가의 안녕과 공공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헌법 효력을 일부 중지하고, 군사 지휘권을 발동해 치안을 유지하도록 한 국가 권한이라는 게 사전적 의미다. 러시아어 'военное положение' 의미로는 우크라이나 전체가 '전쟁 상태'에 돌입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모스크바 등 우크라이나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 주민들도 '러시아는 전쟁중'이라는 현실을 실감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발령된 부분 동원령이 대상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전달된 '전쟁 공포'라면, 앞으로는 보다 광범위하게 전쟁 분위기가 러시아 사회에 퍼질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 합병 4개 지역에 '전쟁 상태'(계엄령) 도입 발표/젠(dzen.ru) 노보스티 캡처

r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계엄령의 구체적인 조치로 △미하일 미슈스틴 총리에게 4개 지역을 총괄할 특별위원회(무기와 군사 및 특수 장비 제공, 자재 확보, 의료 및 위생 서비스, 수리 및 복원, 물류 등 모든 분야 조정 권한)를 구성하고 △ 4개 지역 수반에게는 지역 안보 확보를 위한 추가 권한을 부여하고, '영토 방어 본부'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또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에게 '영토 방어본부' 문제를 현지와 조정하는 역할을 맡기고(소뱌닌의 역할 확대), △연방 정부와 국방부, 다른 중앙 부처들도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도록 했다. 

계엄령은 지역별로 몇 단계로 나눠졌다. 우선 우크라이나 4개 합병 지역에는 '(계엄의) 최고(Максимальный) 대응 태세'가, 2014년 병합된 크림반도와 세바스토폴,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인 크라스노다르, 벨로고로드, 브랸스크, 보로네즈, 쿠르스크, 로스토프주(州)에는 '중간(Средний) 대응 태세', 중부및 남부권의 기타 지역에는 '최고 준비(Повышенной готовности)태세', 나머지 모든 지역에는 '기본 준비(Базовой готовности) 태세'가 도입된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계엄 조치로 지역의 안보 확보는 물론이고, 경제및 산업 분야의 안정성과 동원 지원 활동 제고, 각 지역의 민방위 활동, 군사적 부가 지원 조치 등이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연방에 편입된 우크라이나 4개주 개황. 위로부터 루간스크주(인구 220만명), 도네츠크주(400만), 자포로제주(160만) 헤르손주(100만). 총 인구 약 880만명. 4개 지역과 우크라이나 접촉면은 1,100km에 이른다/출처:리아노보스티 통신 텔레그램 

러시아의 계엄령 도입이 우크라이나군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수세에 몰린 푸틴 대통령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부분 동원령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시행착오와 실수, 혼란 등을 극복하고, 전국민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라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동원 업무를 각 지역에 맡겼더니, 중구난방이었다는 반성에서다.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은 이날 "(계엄령으로) 정상적인 생활 리듬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가 도입되지 않을 것"이라며 "일상생활에는 달라질 게 없다"고 주민들을 다독였다. 우크라이나 매체인 '스트라나.ua'는 "러시아 병합 4개 지역에 도입된 조치들은 이미 시행되고 있다"며 "계엄령으로 사실상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지적했다. 

주목할 곳은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대충돌이 예상되는 헤르손 지역이다. 친러 헤르손 주지사 대행은 “주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드네프로강 서쪽 지역 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됐다"며 “앞으로 6일간 매일 약 만 명씩 점진적으로 현 거주지를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군은 헤르손에 계속 주둔하며, 주민 이동은 우리 군이 더욱 단호하게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군 기갑부대/텔레그램 캡처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주의 주도인 헤르손시(市) 탈환을 위해 수만명의 병력을 집결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헤르손시는 이제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게 '정치적으로 승리'를 상징하는 곳이 됐다는 게 현지 군사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이 시작되자, 즉각 "헤르손시를 방어하는 정치적인 승리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희생)가 너무 크다"며 드네프로강 동쪽으로 병력을 철수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군 지휘부는 이를 일축했다.

새로 특수 군사작전 총지휘권을 넘겨받은 세르게이 수로비킨 장군은 현지에서 상황 판단을 다시 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전날 방송을 통해 "헤르손 지역은 긴박한 상황이며, 어려운 결정을 할 수도 있다"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군사 전략상 드네프로강을 중심으로 방어진지를 구축한다면, 우크라이나군의 총공세를 손쉽게 막아낼 수 있다. 동시에 베리슬라프 구역 등 드네프로강 서쪽 주민들을 동쪽으로 대거 이주시킨다면, 하르코프(하르키우)에서와 같은 협력 주민들(친러 부역자)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라도, '제 2의 하르코프 사태'는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친러 헤르손 주당국이 주민 대피를 추진하고 있는 베리슬라프 구역(표시 부분), 그 왼쪽에 스니기료프카, 아래쪽에 수력발전소가 있는 노바야 카호프카가 있고, 노바야 카호프가 왼쪽으로, 즉 드네프르 강 아래쪽에 주도인 헤르손시가 보인다/얀덱스 지도 캡처

동시에 민간인의 헤르손시 진입이 7일간 금지했다. 가능하면 민간인의 피해를 막겠다는 뜻이겠지만, 친우크라이나 주민들의 이동을 막아 내부에서 군사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우크라이나측의 반응이 재미있다. 러시아 계엄령에 대해 미하일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우크라이나 재산의 약탈에 대한 '가짜 합법화'"라고 비난했고, 친우크라이나 헤르손 주지사는 주민 대피를 “주민을 겁주려는 쇼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뒤집어 말하면, 러시아는 계엄령을 통해 헤르손 지역 등 합병 지역의 실효 지배를 더욱 강화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소위 '헤르손 대첩'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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